말로하는 격투게임! 역전재판 3!

바람의별 wingzc01@naver.com

이번에는 법정에서 배틀이다
2001년 10월 12일, 기발한 외도를 즐겨하는 제작사 캡콤에 의해 '법정 배틀'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였다. 그 주인공은 올해로 시리즈 3편째를 맞이하는 역전재판이다. 아무리 유저에게 어필하기 위한 신장르 창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해도, 법정 배틀이라 는 장르와 그에 맞춘 듯한 역전재판이라는 제목은 적잖이 생소하고, 위화감마저 준다. 조심스럽게 그 내용을 짐작해 보는 당신, 어쩌면 그 추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졌을 지도 모른다. 당신은 이 게임에서 '변호사'가 되어 억울한 의뢰인의 입장을 대변하고, 무죄 판결을 받아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참고인의 '모순'을 파헤치는 논리력 뿐이다!

명탐정, 아니 명변호사가 되는 길
게임의 진행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탐정 파트'와 '법정 파트'가 그것이다.

탐정 파트에서는 사건 현장에서 증거물을 찾거나 관계된 사람들을 만나고, 형무소에서 피고와 면회를 하기도 한다. '조사하다(調べる)'와 '이동하다(移動する)', '이야기하다(話す)'와 '제시하다(つきつける)'의 커맨드를 사용할 수 있다. '조사하다'는 그 장소에 있는 여러 가지 증거품을 조사하는 데 쓰이는 커맨드이다. 방향키로 조작하면 손가락이 움직이며, 손가락이 까딱거리는 곳에서는 무언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재판에 요긴하게 쓰일 증거품을 얻을 수도 있는가 하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항일 수도 있다. 가끔 장소가 넓어 두 화면으로 이루어진 경우, L버튼을 누르면 다른 쪽으로 화면이 전환된다. '이동하다'는 말 그대로 다른 장소로 옮기는 커맨드이다. '이야기하다'와 '제시하다'는 그 장소에 다른 사람이 있을 경우에만 사용 가능하다. '이야기하다'로 사건에 관련하여 묻고 싶은 여러 가지를 질문할 수 있다. '제시하다'는 증거품 혹은 인물 파일을 제시하는 것으로, 상대방으로부터 그에 관한 견해를 들을 수 있다.

탐정 파트에는 시간의 제한은 없으며, 모든 필요한 증거물과 정보를 확보했을 때 비로소 다음으로 넘어가 법정 파트를 플레이 할 수 있다. 따라서 탐정 파트는 법정 파트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한다. 자칫하면 이것이 게임을 진행함에 있어서 지루함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였는지, 시리즈 2편부터는 '사이코 록(심리 자물쇠)'라는 새로운 요소가 도입되어, 상대방이 무언가를 숨기고 말해주지 않을 때 사이코 록을 해제하여야 진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해제에 실패할 경우 페널티를 받게 되어 이전에는 무미건조했던 탐정 모드에서도 나름대로 긴장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 셈이다.

법정 파트는 여타 추리 게임에는 없는, 역전재판만의 묘미라고 할 수 있고, 바로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이 게임의 장르는 '법정 배틀'이라 명명된다. 여기서 플레이어가 할 일은 검사가 불러내는 참고인들의 증언을 듣고 그것을 심문하는 일이다. 심문시에는 L버튼으로 추궁(ゆさぶる), R버튼으로 각종 데이터를 제시(つきつける)하며 모순에 반론하는데, 실수할 경우 재판장에게 페널티를 얻게 된다. 페널티가 누적되어 기회 게이지가 전부 소모되면 게임 오버된다. 1편에서는 기회가 '느낌표(!)' 모양의 기호로 표기되어 에피소드당 다섯 번의 기회가 주어졌으나, 2편 이후로는 표시 방법이 게이지로 바뀜에 따라 20%, 30%부터 50%, 100%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페널티율(率)이 적용되어, 플레이어를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데 일조한다. 아래는 심문을 하나씩 클리어 해가는 요령을 예시로 보여준다. 1편의 사진이므로 오해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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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기발한 스토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역전재판 시리즈의 가장 독특한 특징의 하나이다. 혹자는 워크잼에서 제작한 PS판 추리게임 '크로스 탐정 이야기(クロス探偵物語)'와의 비교를 통해 역전재판은 그 세계관이나 배경 등이 최초부터 개그의 컨셉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있는데, 지당한 말이다.

나중에 언급할 캡콤의 일러스트레이터의 스에카네 씨가 창조해 낸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과장된 표정 및 행동, 그리고 절제되다가도 순간순간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재빠른 상황 연출 등은, "캡콤이기에 가능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웃고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더더욱 '캡콤이기 때문에' 강하게 드러나는 복고적인 감동 또한 놓칠 수가 없는 요소이니 역전재판의 스토리라인은 그야말로 흥미롭다고 밖에는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대단원에 해당하는 에피소드들의 경우는 스케일을 키우는 데 치중한 나머지 스토리가 너무 꼬였다는 지적도 있지만, 순수한 재미 앞에 리얼리티의 부재(不在)는 생각만큼 큰 문제를 안겨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 게임의 최대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캐릭터에 대해 잠시 짤막하게 소개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플레이어의 대리인 역할을 할, 주인공 변호사의 이름은 나루호도 류이치(成步堂龍一). 일본어로 '과연'을 뜻하는 'なるほど'와 음이 비슷한 탓에 놀림을 받는 삐죽머리 캐릭터이다. 나루호도의 상사인 아야사토 치히로(綾里 千尋) 사망 이후, 나루호도의 조수로서 사무소에 머무르는 영매사 수험생 아야사토 마요이(綾里 眞宵)는 현재로서는 히로인에 가장 가까운 캐릭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설정의 비현실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으로서, 빙의를 통해 사자(死者)인 치히로 소장의 조언을 얻기도 한다. 로리콘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마요이의 사촌동생 하루미(春美) 또한 2편 이후 계속 등장하고 있다. 나루호도의 호적수이자 동반자이기도 한 천재검사 미츠루기 레이지(御劍 怜侍)도 잊지 말자. 3편에서도 나루호도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사람 냄새 듬뿍 풍기는 이토노코기리 케이스케(?鋸圭介) 형사도 함께. 뿐만 아니라 최초의 에피소드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건에 휘말려온 나루호도의 악우(惡友) 야하리 마사시(矢張 政志)도 건재하다.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주적, 정체불명의 검사 고도(ゴド?) 또한, 눈여겨 봐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X-Men의 사이클롭스를 닮았다고 일컬어지는 그 바이저 아래 숨겨진 얼굴의 정체는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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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편에 대해서 이의 있음!
역전재판은 2001년 10월 첫 시리즈가 등장한 이래, 2002년 12월, 2004년 1월 각각 속편이 발매되었다. 1년 남짓의 간격으로 발매되었으니 연례로 나오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당연히 매 에피소드의 스토리는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기존의 팬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시리즈 사이의 시간 간격도 1년 정도를 유지하여,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그야말로 착실하게 그려 오고 있다(모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의외인 부분이겠는데, 역전재판 1편의 배경은 2016년으로서, 엄밀히 말하면 근미래다). 따라서 속편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전작의 스토리를 숙지하는 것은 필수요건에 가깝다고 할 수 있고, 이러한 특징이 시리즈를 갈수록 매니악하게 만든다는 점은 다소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전작을 해보지 않았으면 모를 부분에 대해서는 중간중간 부연 설명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또한 계속 시리즈를 이끌어 오면서 눈에 띄는 변화가 드러나지 않았던 점도 사실 안타까운 부분이다. 디스크에 비해 용량이 그다지 크지 않은 GBA의 카트리지에 억지로 구겨넣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그래픽과 사운드에서는 거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캐릭터별 그래픽의 추가 및 BGM의 편곡 정도는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이루어졌지만, 그것만으로는 팬들의 갈증을 채우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게다가 '역전을 통해 이긴다'는 발상의 스토리가 반복되는 데도 문제가 있었다. 매 사건이 결국 비슷한 방향으로 전개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고, 2편이 발매되었을 때는 필자를 포함하여 더 이상의 속편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도 몇 있었다. 그나마 매 시리즈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허를 찌르는 반전이 존재하여 플레이어들을 놀라게 하였으나, 그것도 그 순간 뿐이었다. 그럼에도 시리즈 마지막을 표방하고 등장한 3편의 시나리오는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적어도 전작들을 즐겨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만 없이 할 만 하다.

우리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은 에뮬레이터 한글화 팀의 자발적인 한글화 등에 의해 국내에서도 상당히 알려진 게임에 속하게 된 역전재판이지만, 한 때는 이 게임도 마이너 게임의 반열에 끼어 있었고(물론 국내에서),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아는 게임이었다. 사실 공식 홈페이지에 연재된 개발자 컬럼을 읽어 보면, 그 개발 과정 또한 순탄치는 않았던 것이 느껴진다. 관록 있는 제작사인 캡콤이었기에 당연한 것이었지만, 리스크가 큰 신작인 역전재판의 개발팀은 7인의 소규모 팀으로 시작하였고, 바이오해저드 팀에 있던 사람이 겸임이라는 형태로 옮겨 왔을 때는 그 이유를 '무서워서' 묻지 못할 만큼 역전재판 팀은 영세한 규모에 속하였다. 그나마 '사립 저스티스 학원'의 캐릭터 일러스트를 맡았던 스에카네 씨가 역전재판 팀에 있었다는 점은, 이 게임의 흥행에 있어 매우 큰 호재로 작용했다고 개인적으로는 판단하고 있다.

과연 후속작은 나올 수 있을까?
기존 팬들의 기대 속에 발매된 역전재판3는 이전 시리즈의 의문사항과 수수께끼, 특히 다른 게임과 구별되는 특성이라고도 볼 수 있을 아야사토 가문의 영력과 영매에 관한 부분을 해석하는 데 상당히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그러한 노력의 성과로, 이번 작품을 통해 시리즈의 결말을 지어낸다는 당초의 임무는 훌륭하게 수행해 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시리즈에서 특별하게 다루고 싶은 부분은, 다섯 개의 에피소드(전작들에 비해 에피소드의 개수가 하나 많다) 가운데 두 개가 과거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통해 치히로 소장과 나루호도의 진정한 첫 만남과 함께, 그보다 앞선 시기의 어떠한 사건에 대해 알 수 있게 된다. 전작들과 잘 융합하면서도 그 의문을 효과적으로 해소하는 데 일조한 역전재판3는, 캡콤이 마무리를 의도하고 발매한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그 목적에 부합하며, 그렇기에 눈부시게 빛난다.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바라는 것이었지만, 역전재판 시리즈는 타 기종으로의 이식이 실현되지 않았고, 게임상의 CG를 다시 볼 수 있는 오마케 모드 등 시스템적인 개선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전재판 시리즈는 다른 게임에서 찾을 수 없는 그 독특함과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 매력적인 캐릭터로 말미암아 저예산 마이너 게임으로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상당한 인기몰이를 하였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많은 이들이 타 기종 이식을 바랐다는 것은 그러한 인기의 반증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필자 또한, 가능성은 적다고 하여도 아직 그러한 재등장을 고대하고 있으며,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될 때에는 시스템 면에서 더욱 다듬어져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있다. 일본 현지에서는 이 작품이 국내 이상의 인기를 얻고 있다고 전제할 때, 그러한 희망도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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