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이도에 대한 게이머와 개발사의 '동상이몽'

"너무 쉬워서 못하겠어요"

포커스 그룹 테스트에 참가했던 한 사용자가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이 사용자는 출시를 준비 중인 한 게임의 포커스 그룹 테스트에 부푼 마음에 참가했지만 생각보다 쉬운 난이도에 실망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게이머들의 플레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개발자들은 그제서야 한시름 놨다는 표정이다. 자칫 자신들이 생각한 것보다 게임이 어려우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 어느 정도 게임에 자신 있는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난이도에 대한 고민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동상이몽'(同床異夢)은 같은 잠자리에서 다른 꿈을 꾼다는 고사성어로 서로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도 생각이나 이상이 다르거나, 함께 행동은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뜻한다. 꼭 요즘 게임 사용자와 개발사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최근 외산 온라인 게임들이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 내 많아지면서 난이도에 대한 논쟁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외산 MMORPG들이 잇따른 성공과 액션이나 FPS 게임들의 성공작이 줄어들면서 쉬운 게임이 대세라는 의견과 아타리 쇼크처럼 게임 본연의 재미의 질이 하락되면서 일제히 붕괴될 수 있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 게임 속은 바글바글, 게시판은 시끌시끌>

이들의 논쟁의 중심은 게임이 쉬우면 재미 없다는 것, 반대로 어려우면 재미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논쟁은 게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필수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보다 온라인 게임이 더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특정 플랫폼을 가진 게이머들이 아닌 컴퓨터만 허락한다면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이기 때문이다.

최근 서비스를 시작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세븐소울즈'와 '일검향' '적벽'은 세 개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무협이라는 점과 두 번째 성인 남성들을 타깃으로 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편의성을 강화해 누구나 쉽게 게임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이 두 게임은 2~5만 명 사이의 동시접속자를 기록했으며, 최근까지도 많은 게이머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같은 특징은 최근 국내에서 불고 있는 외산 MMORPG 열풍에도 한몫하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간단한 튜토리얼만 따라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한 편의 기능과 게임성은 최근 개발자들에게는 성공을 위한 코드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다. 신작들이 MMORPG 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점도 어떻게 보면 이런 시장의 반응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들의 게시판에는 게임을 즐긴 후 '실망했다'는 의견을 내놓은 게이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막상 화제가 돼 게임을 해봤지만 게임의 재미가 부족하다는 것. 특히 이런 글은 게이머들이 몰리는 공개 서비스 첫 날이나 그 주에 많이 나온다. 막상 안에 있는 게이머들은 별 거부 반응 없이 즐기고 있는데 유독 게시판만 시끄럽다.

< 게임성 하락이 가져올 문제는 의외로 많다>

이 같은 상황은 게임은 쉬워야 성공한다는 일종의 공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물론 시장 내 다양한 게임들이 성공을 거둬야 하는 점이 게임을 대중 문화로 이끌어내는 척도이긴 하지만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는 생각보다 많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게임성의 한계로 인한 주도권 박탈이다. 그 동안 한국 온라인 게임들은 전 세계 시장에서 1위를 달려왔다. 개성 넘치는 게임도 많았고 타국에서 볼 수 없던 색다른 온라인 게임도 많았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나 '에이지 오브 코난' 등 거창한 대작들과 겨룰만한 '테라'나 '아키에이지' 등의 게임들도 속속 등장 중이다.

하지만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강해지면서 개성 넘치는 게임들은 사라지고 이전 게임들의 성공 포인트를 답습하는 게임들이 늘어나면서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에 평가는 계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게임 장르가 한계가 있다는 언론의 의견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라인 게임에도 벌써 한계가 나오지는 않았을 터. 그러나 1~3년 사이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 내 성공한 게임들은 몇 개의 특정 장르 밖에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다 보니 게임의 발달은 그래픽 수준 정도로 한정적이고 게임을 즐긴 하드코어 게이머들은 하나 같이 "무슨 무슨 게임하고 똑같네"를 연발한다. 그래픽이 좋아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기존 게임들과 달라진 재미와 게임성도 신작이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니었을까? 이것이 국내 온라인 게임 중 이미 성공한 게임들을 제외하고 신작들의 평가가 한결 같은 이유다.

이 같은 평가가 이어지면서 현재 온라인 게임 시장의 주도권은 거의 중국에게 넘어간 상태다. 대규모 개발 인력을 바탕으로 국내 인기 온라인 게임을 베끼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중국 온라인 게임 시장은 2008~9년도를 기점으로 색다른 형태의 게임을 선보이면서 오히려 1위 시장을 달리고 있던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에 역으로 게임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중국 게임 유치해서 안 한다는 게이머들도 이제는 국적 불문하고 출시되면 일단 해보자고 말할 정도다. 퍼블리셔들도 어차피 비슷한 돈을 주고 게임을 서비스 해야 한다면 국산 게임보다는 외산 게임에 더 주력하고 있다. 가격도 가격이고 확실한 콘텐츠가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산 온라인 게임들은 조금씩 주도권을 빼앗기도 있다.


< 게임성 하락? 쉬운 게임도 충분히 재미있고 대중화는 성공의 발판이다>

그러나 개발사 입장에서는 게임의 재미는 대중들이 얼마나 느끼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게임 마니아들의 입장에 맞추는 것은 대중 문화를 노리는 게임 시장에 좋은 역할을 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국내 전체 인구 중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은 1천만 명 수준이다. 전체 인구가 약 5천 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못해도 5명 중 한 명은 온라인 게임을 즐기거나 해봤다는 것이다. 그만큼 게임의 대중화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상태다. 간단히 비교하면 국내 영화 인구는 3명당 1명이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마니아성보다는 자연스럽게 손쉬운 게임성을 강조하는 게임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고 이런 게임들의 성공이 자연스럽게 게임 인구, 대중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개발사가 단순히 수익만 보고 움직이는 형태라기보다는 전체적인 시장의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내다볼 수 있다. 작품성보다는 CG와 볼거리 위주의 영화가 늘어나는 이유와 같다.

물론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게임성 하락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지만 영화 '아바타'가 국내 게임 시장 내에서 1천3백만 명이 관람을 했다는 결과나 '세븐소울즈'와 '일검향' '적벽'이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 내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이 길이 꼭 틀렸다고 지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무엇이 옳은 것일까? 게임성을 잡으면서도 대중적인 게임이 나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로 봐야 하는 것인가. 여전히 이에 대한 논쟁은 계속적으로 생겨날 것이고, 게임에 대한 기대감과 실망감은 시시각각 변하게 된다. 그렇다면 개발사와 게이머는 무엇을 생각하고 게임이라는 문화에 빠져 들어야 하는가. 개발사와 게이머의 '동상이몽'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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