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애니메이션과 콘서트의 만남 '애니 사운드 페스티벌'

게임과 애니메이션은 늘 이슈가 되는 소재다. 청소년 층이 가장 좋아하는 콘텐츠이기도 하고, 늘 놀이의 트렌드를 선도해 매니아들을 설레게 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이러한 게임과 애니메이션이 콘서트와 융합되면 어떤 느낌일까. 지난 13일 초청을 받고 찾아간 홍대의 V홀에서, 홍대의 인디 사운드 문화에 뿌리깊게 융합된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주제로 콘서트를 여는 애니 사운드 페스티벌(이하 애사페), 올해로 8회째를 맞는 이 행사는 필자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 충분히 준비된 전문가들의 향연>

이곳에 처음 가서 느낀 것은 '장난이 아닌데?'라는 느낌이었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의 주제가를 다룬다기에 가볍게 생각했는데 그 규모나 수준은 아마추어의 것이 아니었다.

우선 행사가 열린 V홀의 퀄리티가 높았다. V홀은 홍대에 있는 콘서트 홀 중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수준의 콘서트 공간으로, 부활, 노라조,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프로 그룹 외에도 허경영 등의 유명인사가 찾았던 장소라고 한다. 이러한 장소에, 실제 유명 게임에서 봄직한 퀄리티 높은 홍보 포스터는 아마추어 적인 느낌을 완전히 배제시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무대에서 웅장한 사운드와 조명,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그룹들의 퍼포먼스가 시작되자 광분에 가까운 관객들의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 그룹의 연주 및 노래 실력은 자칫 장난처럼 이곳을 찾아온 본인을 반성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곳에 참여한 그룹은 고잉메리(Goinmerry)와 엘리스노트(AliceNote), 네이브(KNAVE)와 블랙바드(Black Bard), 그리고 글로네스(GLONASS)의 5개 그룹으로, 이들 또한 양질의 콘서트를 위해 오디션을 보고 엄선해서 뽑힌 그룹이라고 한다.

< 그룹들의 실력, '명불허전'>




처음 스타트를 끊은 것은 고잉메리였다. 고잉메리는 코스프레를 하던 인원들이 모여 만든 그룹으로, 구성원들이 다양한 연령대를 가진 것이 특징이었다. 고잉메리는 기동전사 건담 OO 2기 Ash like snow를 시작으로 은혼의 워아이니, 그리고 원피스의 런런런! 등의 인기 곡들을 소화했고 조용했던 무대를 화끈하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두 번째로 자리잡은 네이브 또한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한다는 소개처럼 뜨거운 무대를 연출했다. 음악에 맞춘 메인 보컬의 힘찬 동작, 그리고 GTO의 주제가인 '드라이버즈 하이'와 같은 빠른 선곡은 관객들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그룹은 최근 새로운 음반을 내며 프로에 진입했다고 자신들을 소개했으며, 에사페에 첫 출연한 이후 애니메이션 매니아들 사이에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었다.


세 번째는 그동안 메인을 맡았던 엘리스노트의 무대였다. 노래가 시작되자 몸집이 작은 여성 보컬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로 큰 성량을 뿜어내며 무대를 압도했다. 한창 무대가 무르익었고 관객들은 땀을 흘리면서도 지칠 줄 모르고 손을 뻗으며 흔들어댔다. 유명 가수 그룹의 일반적인 콘서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압도적인 무대 연출력이 돋보였다.


네 번째인 블랙바드는 노래 부를 때와 멘트를 할 때의 메인 보컬의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중저음으로 노래를 부르면서도 멘트를 할 때는 개그섞인 투의 모습을 연출한 보컬의 모습은 그 동안의 콘서트 홀에서 느껴보지 못한 강한 개성을 느끼게 했다. 노래 자체는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를 보이려는 듯 강렬한 비트로 이루어진 것들이 많았고 팀의 복장도 비슷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마지막으로 메인 엔딩을 맡은 글로네스는 4시간 여에 걸친 콘서트를 정리하려는 듯 강렬하고 통합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유명 RPG 이스 시리즈의 테마곡이 흘러 나오자 관객들은 다 닳아서 깜박거리는 형광봉을 일제히 들어올렸고 모두 하나가 된 듯이 뛰었다. 빠른 곡과 느린 곡을 적절히 조율하는 팀의 리듬감과 무대를 장악하는 능력 또한 일품이었다. 그렇게 에사페는 글로네스의 마무리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애니메이션의 숨겨진 문화, 현실과 융합하다>

이번 애사페 참관은 평소와는 다른 세상을 엿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어떻게 보면 아련한 느낌까지도 받게 했다. 30년 가까이 전이지만, 한 때 필자도 만화영화 주제가를 부르며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던 시기가 있었다. TV를 못 보게 하는 어머니와 실랑이를 하며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하고 싶다며 졸랐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런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대한 열정이 세대를 거쳐 이어진 것일까. 3시간 여 지난 시점에서 아픈 다리를 두드리며 '10대 20대 젊은이들은 이렇게 노는구나'하고 되내었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환경과 만나 이렇게 전문적인 문화까지 잉태했다는 사실이 개인적인 시야를 넓혀주는 계기로 느껴지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아직까지도 국내에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은 '숨겨진 문화'다. 어른들은 무조건 나쁜 것으로 치부하며 아이들이 못하게 하기에 급급하다. 그런 사회적 비주류 문화에서 이런 문화가 생겨난 것은 바로 콘텐츠의 우수성 때문일 것이다.

'놀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문화 비평가가 했던 말이다. 그 말처럼 애니메이션이나 게임도 국내의 어떤 박해에도 끝까지 남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점점 주류 문화가 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예상을 뛰어넘는 콘서트 무대와 열광하는 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씁쓸한 점은, 어찌되었든 이들의 노래가 대부분 일본에서 넘어온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한류 붐이 일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국내의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대한 핍박과 압박 속에 한국의 젊은이들은 일본의 문화를 외치고 또 열광하고 있었다. 이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어른들이 바로 잡아야 할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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