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표류하는 한국 e스포츠, 위기인가? 기회인가?
혹자는 한국 e스포츠가 위기라고 말한다. 또 다른 이는 지금이 한국 e스포츠가 새롭게 도약할 시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e스포츠는 어떤 상황일까? 프로리그가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비시즌을 앞두고 있는 e스포츠의 현주소에 대해 생각해 봤다.
2011년은 향후 한국 e스포츠 역사에 많은 것을 남길 해로 기억될 것이다. e스포츠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고, 블리자드와 지적재산권 분쟁이 발생했으며, 많은 게임단이 해체될 위기에 놓여있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최악의 상황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하나의 사건이 터지고, 사건이 미처 마무리되기도 전에 다른 사건들이 발생했다. 마치 모래성이 우르르 무너지듯 10년 넘게 쌓아온 국내 e스포츠의 기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이제는 짜릿한 역전승이 나와도 승부조작을 의심하는 눈초리가 생겼고, e스포츠팬들이 좋아하는 프로게이머들이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하지 못하고 길거리도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확실히 이러한 내용만 본다면 한국 e스포츠는 위기라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위의 사건들로 인해 많은 e스포츠팬들이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현장을 찾는 팬들은 여전히 사랑을 보내주고 있지만, 조용히 한국 e스포츠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던 수많은 팬들이 TV 앞으로 모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위기론의 근원이다.
과거 양대 게임방송사는 결승전이나 빅매치 이후에 시청률을 발표해왔는데, 최근에는 그 비중이 눈에 띄게 줄었다. 과거 케이블TV에서 대박이라 불렸던 1% 이상의 시청률은 커녕, 그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과거보다 TV로 e스포츠를 즐기고 있는 팬들이 줄었다는 반증이다. 시청률이 급감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팬층이 많이 약해졌다는 사실만은 명확하다.
프로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포츠를 보고 응원해주는 팬들인데, 그 기반이 서서히 약해진다는 것은 더 이상 프로로서의 가치가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스폰서들은 더 이상 e스포츠에 후원할 가치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리그의 존속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최근 개인리그들이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리그의 개막이 미뤄졌던 사실만 보아도 이런 위기설은 우려나 기우가 아닌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그렇다면 정말 한국 e스포츠는 그 존속이 위험해 진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아니다. 물론 변화가 필요하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국내 e스포츠가 칠흑 같은 암흑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우선 현재의 스타크래프트2 리그와 스페셜포스2 리그를 보면 어느 정도의 해답은 나온다. 시대의 흐름에 맞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타크래프트1을 스타크래프트2로 종목을 변경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미 국내에는 스타크래프트1을 지지해주는 팬들이 충분히 많이 있고, 그 팬들이 중장년층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상, 무리한 종목변경은 더욱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다만 현재 가진 리그의 방식이나 경기 룰을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미다.
위메이드와 MBC게임 등의 게임단들이 해체를 앞두고 있는 만큼 프로리그 2012 시즌은 팀당 경기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난해 8개월 동안 진행했던 리그의 호흡이 짧아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리그의 일정을 조정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현재의 주5일, 1년 단위의 리그가 꼭 필요한지 재고해볼 필요성이 있다. 또한 7전4선승제 역시 반드시 고수해야할 것인지도 논의해 봐야한다.
리그의 정통성과 과거 리그 규칙의 통일성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스포츠와 달리 변화와 시대의 흐름에 민감한 e스포츠라면 유연한 룰의 변경은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곰TV는 스타크래프트2 리그를 1년 정도 진행해 왔지만, 변화에 맞춰 리그의 일정을 조정하고 규칙을 변경하면서 그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때문에 국내 선수들이 해외 리그에 참여하고, 해외선수들이 국내 리그에 참여하는 자연스러운 글로벌화기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단순히 위기가 오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느긋하고 막연한 자세가 아닌, 철저한 준비와 계산이 있어야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시간은 부족하고 갈 길은 멀다. 신임 4기 협회는 지금 어떤 문제가 선결되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반이 부실하면 다시 이러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기반을 새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적극적이고 과감한 결단력도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e스포츠를 사랑하는 팬들이 있음을 인지하고, 입이 아닌 가슴으로 팬들을 위한 리그를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예전과 같은 부흥은 어려울 수 있지만, 수많은 e스포츠 팬들과 그동안의 저력은 e스포츠에 끝없는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제 곰곰이 변화와 유연성을 갖춰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