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도 높아진 호러게임, 사일런트 힐 다운푸어

자욱이 깔린 안개 속에 삼켜진 마을을 배경으로 사방이 조여 오는 듯한 심리적인 압박감을 선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명작 호러어드벤처 사일런트 힐의 최신작이 발매됐다. 이번에 발매된 사일런트 힐 다운포어는 기존의 사일런트 힐 시리즈에 비하여 오픈월드의 성향이 강해져 조금은 자유로운 느낌을 맛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언제나 방문시에 오싹함과 짜릿함을 선사했던 마을 사일런트 힐. 사일런트 힐 다운포어(이하 다운포어)에서 그려지는 이면의 마을 사일런트 힐 관광은 어떨지 한 번 살펴보자.

괜찮은 느낌의 그래픽과 연출. 화면끊김은 아쉽다
사일런트 힐이란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현실의 세계와 이면의 세계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의 표현이다. 일상적인 공간이 순식간에 처참한 지옥과 같은 광경으로 변하며 풍기는 분위기는 사일런트 힐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은 다운포어에서도 게임의 초반부터 잘 표현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난 사고로 사일런트 힐 마을에 낙오하게 되고 살 길을 찾아 떠나려는 게이머에게 아찔한 상황의 공포를 체험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긴장과 공포의 요소는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에 지속적으로 게이머를 자극시킨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공포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게임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다양한 환경과 상황을 체험하는 재미에 빠질 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픽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요즘 나오는 게임과 비교했을 때 월등하지는 않지만 사일런트 힐이 추구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살리는데 중점을 둔 느낌이다. 다소 지저분해보이는 캐릭터나 배경의 모델링을 보면서 "그래픽 정말 안좋네"라는 느낌보다는 "뭔가 분위기가 있어 보인다" 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좋지 않은 그래픽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다만 이런 느낌이 게임 끝날 때까지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는 불안한 프레임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다운포어는 일정 지점을 지나면 자동으로 저장되는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는데 이때에 게임이 끊어지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세이브구간이 아닌 부분에서는 크게 거슬리지 않을 정도라고는 해도 세이브 지점에서는 갑자기 캐릭터가 워프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런 부분은 게임에 몰입을 하고 있다가도 사일런트 힐의 세계에서 튕겨져 나오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탐험은 잘 살아 있으나 다소 불친절한 게임진행 및 언어가 걸림돌
다운포어는 메인스토리 외에도 다양한 사이드퀘스트를 준비한 만큼 곳곳을 누비며 다양한 상황을 즐기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이런 재미를 느끼는 과정이 그리 친절하지는 않다. 처음 사일런트 힐 마을에 들어섰을 때 아무런 힌트도 없이 넓은 마을에 혼자 내팽개쳐진 느낌을 받게 된다. 넓은 마을에 들어왔는데 별다른 힌트가 없으니 "뭘 해야 하지?" 하며 약간의 공황상태에 빠진다.

높은 자유도를 추구하는 오픈 월드 게임들도 대부분 게임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기간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처음부터 지도를 보고 마을 구석구석을 직접 다니다보면 사이드 퀘스트나 본 스토리의 시작점을 발견해야 하고, 그것을 기점으로 사건의 실마리나 퍼즐을 풀면서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이렇게 직접 돌아다니면서 단서를 찾는 진행은 탐험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첫 시작 시점부터 아무것도 안내해주지 않는 것은 자유도가 아니라 불친절로 보이기 충분하다.

특히나 다운포어는 게임 속 언어가 영어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더욱 더 큰 걸림돌이 될 확률이 높다. 게임 속 퍼즐을 풀기 위해서는 노트에 메모된 내용을 기반으로 추리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진행에 도움이 되는 부분은 다 기록되는데 정작 영어를 모르면 도움이 되지 못한다. 특히나 사이드퀘스트를 즐길 때 사일런트 힐에서 일어난 의문의 사건사고의 전말이나 상황을 알게 되면 좀 더 몰입할 수 있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도 단서는 대부분 근처에 있다!
다운포어가 게임진행에 친절하지 못하다고는 했지만 막히는 부분이나 퍼즐이 등장할 시에 주변을 조금만 신경 써서 둘러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게 구성돼 있다. 요즘은 공략이 필요없을 정도로 친절하게 진행포인트를 알려주는 게임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사일런트 힐 같은 정통적인 어드벤처의 느낌을 고수하는 게임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게임이기에 게이머가 조금만 생각해보고 주위를 살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니 포기는 금물! 처음에는 다소 막막할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에 힌트가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으면 실마리를 찾아가는 재미가 극대화 된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반드시 그 전에 상황을 타개할 아이템을 얻었을 것이고, 아무런 단서가 없다면 주변을 살펴보면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이 보인다. 다운포어를 즐기는 묘미는 바로 이런 단서를 찾아가며 게임의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재미가 아닐까?!

단조로운 전투가 공포요소로?
다운포어에서는 사일런트 힐을 탐험하는 도중에 게이머를 습격해오는 다양한 무리들을 만나게 된다. 먼저 공격을 해오는 포악한 성격이기 때문에 전투를 언제까지 회피만 할 수 없는 노릇인데 이게 좀 답답하다. 방어와 공격의 두 가지 동작으로만 진행되고, 이는 초반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 액션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화려한 콤보나 회피동작이 없는 부분이 이해가 되긴 하지만 사납게 달려드는 적을 보고 있으면, 좀 더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럴 수 없으니... 주변에 있는 다양한 사물(도끼, 막대기, 의자, 총 등)마다 내구성이나 공격력이 달라서 여러 가지 무기를 공수해서 싸우는 부분이 흥미롭긴 하지만 다양한 무기에 비해서 공격패턴은 동일한 것이 아쉽다.

그런데 이렇게 답답한 마음을 주는 전투요소가 어떤 면에서는 공포적인 요소를 극대화시키는 부분으로 작용하는 것이 다소 아이러니 하다면 아이러니 하다. 아무래도 공격패턴이나 움직임에 제한이 있다 보니 빠르게 움직이는 적들을 보면 심적으로 부담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긴장과 공포로 이어진다. 물론 단순한 짜증이 될 수도 있는데 전투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처음부터 난이도 설정을 낮추고 시작하자. 그러면 조금이나마 전투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플레이할 수 있다.

멀티엔딩으로 여러 번 즐기는 재미
사일런트 힐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멀티엔딩을 채용하고 있는데 다운포어 역시 마찬가지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선택한 선택지나 적에게 마무리공격을 한 횟수 등으로 다양한 엔딩이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처음에 게임을 시작할 때에 퍼즐 및 전투의 난이도를 설정할 수 있는데 이 설정에 따라서 전투와 퍼즐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쉬움 난이도에서 느끼지 못했던 재미를 보통 난이도에서 느낄 수 있다. 예를 들면 3자리의 암호가 4자리가 되고, 물건의 배치를 바꾸는 부분은 또 한 가지 더 신경 써야 할 물건이 추가되는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마니아가 아닌 이상 전투의 난이도를 높이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정통 호러어드벤처의 공포를 맛보고 싶다면
사일런트 힐 다운푸어는 해외웹진에서 전작들보다 낮은 점수를 기록하여 걱정을 했지만 직접 즐겨보니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어드벤처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국내정식발매임에도 한글화가 되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전체적으로 프레임문제만 제외하면 전체적인 게임완성도는 뛰어나다. 안개와 비가 내리는 사일런트 힐을 잘 표현했고 이에 걸맞은 분위기와 공포, 탐험의 요소가 어우러져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무서운 것을 싫어하고 직선적인 스타일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겠지만, 기존의 사일런트 힐 시리즈를 재미있게 즐겼고 호러어드벤처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꽤 괜찮은 게임이 될 것이다. 주인공 머피가 되어 사일런트 힐을 돌아다니는 재미를 느껴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