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문화로 만드는 이들]② 소통과 노력이 게임을 문화로 만든다

지난 1월 19일, 국내 게임업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전시회가 진행됐다. 바로 넥슨의 신설 실험 프로젝트인 NX Art Lab(엔엑스 아트 랩)의 첫 행보였던 'BORDERLESS' 기획전이 펼쳐진 것이다.

NX Art Lab과 ‘313 ART PROJECT’가 기획하고 엔엑스씨가 후원하는 이 기획전에는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 영웅전’의 전 총괄 디렉터인 이은석 실장을 비롯해 김호용, 한아름, 이진훈, 김범, 이근우 등 넥슨의 게임 아티스트 6인이 참여했다.

'경계가 없는'이라는 전시회의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이 기획전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를 허물고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이 출품됐다는 것에서 의미를 지녔다. 또한 게임이 단순히 게임에 머물지 않고 다른 문화로도 파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업계 관계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미 반 년 전에 실시됐던 전시회였지만, 'BORDERLESS'는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게이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게임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행보를, 전형적인 예술가들이 아닌 게임 개발사에 몸 담고 있는 게임 아티스트들이 실천했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임동아는 이번 '게임은 문화다' 기획의 말미를 장식하기 위해 'BORDERLESS' 기획전을 담당하고 있는 넥슨의 이진훈 파트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부득이하게 서면으로 진행된 인터뷰였지만,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이진훈 파트장은 자신의 의견을 충실히 담아 답변을 남겼다.

질: ‘BORDERLESS’ 전시회에서 어떤 부분을 담당하셨나요?
답: 보더리스 전시회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감성을 융합하는 미디어아트를 담당했습니다. 관련 작품으로 마비노기의 ‘캠프파이어’ 콘텐츠를 재해석한 와 한아름 작가와 공동작업한 , 가 있습니다.

[작품설명]
1) Campfire, Video Art Installation (55” LCDx5 / 22” 1/3 LCDx6), 520x520x200cm, 2012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 내에서 캠프파이어라는 콘텐츠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의식들이 아바타로 캠프파이어 앞에 모여 감성적으로 교감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모습을 형상화 했다. 이는 디지털적인 플랫폼 내에서 이뤄지는 아날로그적인 경험을 의미하며, 인간의 의식을 담는 틀이 어떠한 공간에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든 실제적인 경험으로써 기억됨을 역설한다.

2) Virtual Hand, Oil on canvas (feat. HAN AHREUM & Video Art Installation (Transparent Display, Oil canvas), 17 x37 x31cm, 2012
가상 현실의 이미지인 ‘Computer Graphic(CG)’을 사람이 작업하던 것을 뒤엎어, 실존하는 캔버스 작품을 가상의 손이 작업하는 것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현실 세계의 캔버스와 가상 세계의 캔버스는 매체만 다를 뿐 같은 노력과 같은 시간이 걸리는 예술 작품이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전달한다.

3) Brilliance, Oil on canvas, Projector (feat. Lee JINHOON), 150X120cm, 2012
한아름, 이진훈의 공동작품 에서는 전통적 캔버스 위에 오브젝트의 명암을 표현하고, 여기에 프로젝터를 통해 실제의 빛을 더함으로써 디지털 혹은 아날로그 한가지 매체로만은 담아낼 수 없는 확장된 표현을 시도한다.

질: ‘BORDERLESS’라는 전시회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답: ‘게임’을 소재로 전시회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회사의 제안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전시회에 참여한 작가들과 모여 의논한 결과, 게임회사 직원들이 하는 전시회가 보통의 순수 미술을 테마로 잡는다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수 미술에서도 디지털의 세계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데 애초에 저희는 디지털 영역에서 일하는 만큼 굳이 아날로그로 한정 짓고 작업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비노기' 시리즈를 소재로 잡고, ‘가상과 현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는 뜻인 'borderless'를 테마로 설정했습니다.

질: 1월 전시 당시에 적지 않은 수의 내부 직원들이 참여했습니다. 업무와 작품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당시 직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답: 사실 맨 처음 전시회에 참여하겠다는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했습니다.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지원도 해 주고 팀에서도 여러 가지로 배려해 주었지만, 게임 개발 역시 우리들에게는 ‘작품’이고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집중력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여기에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장르라는 점도 부담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호기심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도전적이고 재미있는 기회라는 점은 모두가 동의 했습니다. 그것이 여러 부담이 있어도 보더리스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업무와 작품을 병행하기가 쉽진 않았지만 전시회를 치르고 나서, 다들 작품을 만들고 참여하며 새로운 것,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경험하며 오히려 생활에 신선한 활력이 되었습니다. 다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진행하며 보다 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질: ‘BORDERLESS’에 대한 내부의 평가는 어땠습니까?
답: 전시회에 다녀가신 많은 동료 분들이 ‘지금까지 시도 하지 않았던 색다른 전시’다. ‘신선하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작품을 만들어 전시회에 나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들도 여럿 계셨고 이번에 참여한 작가들 외에도 많은 회사 분들이 ‘보더리스’ 같은 기획전 등의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고 얘기 하셨습니다.

질: 전시 작품의 수가 많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이제껏 해왔던 방식을 고수하거나 사유나 고민 없이 자신이 정말 전하고 싶은 것에 대해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한 과정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구상부터 작품을 실제 제작하는 총 기간이 게임을 만드는 기간에 비해 결코 적은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진실된 작품을 완성하기에는 오히려 짧은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질: 이러한 종류의 전시회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인가요?
답: 예, 이번 전시를 치르고 사내에서 아티스트 직군은 물론 다양한 구성원들이 자신 안의 예술적 감성을 키우고 재충전의 기회로 삼기 위해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들었습니다. 또한 넥슨은 ‘보더리스’ 같은 전시회를 꾸준히 진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더리스’는 사내 실험 프로젝트팀 ‘NX Art Lab’ 1기의 전시회로, 앞으로 2기, 3기 등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전시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개인적으로 기회가 계속 주어진다면 다음 번에는 더욱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 전시해 보고 싶습니다.

질: 게임 콘텐츠를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해외에서도 그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외국인들과의 협력 작업도 고려하고 계신가요?
답: 같은 생각 같은 노력을 하고 있는 외국인들과 작업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경험 자체가 좋은 도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어 보이는 기회는 놓치지 않는 성격이라 기회가 주어진다면 일단은 한다고 얘기할 거 같습니다.

질: 게임을 단순히 저급 문화, 유흥 문화의 일부로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런 통념을 깨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답: 무엇이든지 갇힌 틀에서 혼자 즐기기만 하면 어떤 형식으로든 오해가 생기기 마련인데 게임 문화가 오랜 시간 동안 이런 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대중들은 게임이라는 장르에 대해 많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방송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에 대해 어필하고 소통할 수 있는 많은 장치도 있고요. 최근 게임을 소재로 하는 재미있는 작품들은 뉴스의 문화코너에서 종종 발견 할 수도 있어요.

게임과 예술의 접목을 시도한 보더리스 전시회는 새로운 예술의 장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게임 문화가 성숙해져 가고 있고 얼마든지 자신감을 갖고 즐길 수 있는 창의적인 문화임을 보여주는데 큰 의미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남을 시선을 의식하기 전에 게임을 만들고 즐기는 문화의 주체가 건강하고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좀더 인내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많은 대중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모두에게 인정 받을 수 있는 멋진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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