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향기가 너무 짙은 프로야구2K의 1차 CBT
90년대부터 하드볼, 트리플플레이 같은 PC 야구게임을 꾸준히 즐겨온 이들이라면 “이 게임에 데이터만 한국 프로야구팀으로 교체해서 게임 하나 나왔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해 봤던 적이 있을 것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런 생각은 이제 현실이 됐다. 지난 11월 11일 막을 내린 지스타2012에서 공개되기도 했던 그 게임. 프로야구2K가 15일부터 1차 비공개테스트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비디오게임 팬들에게는 꽤나 익숙한 개발사인 2K스포츠와 넥슨이 공동으로 개발한 이 작품은 비디오게임 야구게임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MLB2K 시리즈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비디오게임(혹은 PC게임)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은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엔트리브소프트의 MVP베이스볼 온라인을 연상케 한다. 이 작품 역시 야구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인 일렉트로닉아츠(EA)의 야구게임 MVP베이스볼 시리즈의 엔진을 차용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같이 타 기종의 엔진을 활용해 개발된 온라인게임임에도 두 작품이 전달하는 느낌은 꽤나 다르다. '다른 작품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단순히 두 원작이 갖고 있는 게임성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느낌이 아니다.
원작의 엔진을 활용하되 최대한 온라인게임 환경에 맞게, 정확히는 국내 온라인게임 이용자들의 입맛에 맞게 리모델링을 한 타 작품과는 달리 프로야구2K는 원작의 엔진을 최대한 살리는 데 주력한 느낌이다. 게임의 조작법을 온라인 환경에 맞게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키보드를 활용해 어떻게든 원작의 조작법을 그대로 옮겨오기 위해 노력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바꿔 말하면 온라인게임 환경에 맞게 완전히 새롭게 개발된 게임이 아니라, 비디오게임을 기반으로 하는 원작의 인터페이스를 조금 변경하고 거기에 온라인 모듈이 얹어진 느낌이 전해진다는 이야기다.
특히 타격과 투구, 수비와 주루 등 게임의 조작 전반에서 이러한 느낌이 강하게 전달된다. 기존 온라인야구게임들은 공이 날아오는 지점으로 마우스 커서를 옮겨 버튼을 클릭하면 되는 포인트&클릭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프로야구2K는 온라인게임보다는 PC패키지 게임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었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W, A, S, D키를 이용해 공이 날아오는 지점을 정하고, 타이밍에 맞춰 키패드의 8을 눌러 일반타격을, 2와 8을 번갈아 눌러 힘있는 타격을 실행하는 조작방식은 온라인게임 환경에서는 꽤나 신선하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MLB2K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 투구 제스쳐 시스템도 게임에 그대로 도입됐다. 자신이 원하는 구종을 던지기 위해서는 정확한 타이밍에 각 구종의 커맨드를 입력해야 하는 이 방식은 분명히 기존의 야구게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NBA2K 시리즈와 MLB2K 시리즈를 통해 새로운 조작방식을 탐구해 온 2K 스포츠의 개발철학이 프로야구2K에서도 발현된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도가 신선함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게이머들에게 난해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야구 온라인게임을 주로 즐기던 이들마저 조작법이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 야구게임을 처음 접하는 이들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다. 조작법의 완성도가 낮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프로야구2K의 조작법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타 게임의 조작법에 비하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고, 컨트롤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완성도 높은 조작법이다.
하지만 완성도 높은 조작법이 '편리한 조작', '익숙한 조작'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완성도는 높지만 불편한 조작을 갖춘 게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게이머들이 프로야구2K를 접하고 난 후에 갖게 될 인상이다.
프로야구2K보다 조금 더 까다로운 조작법과 깐깐한 판정을 지니고 있는 원작 MLB2K의 경우는 이러한 조작법에 의한 허들을 낮추기 위해 전통적인 버튼 인터페이스도 지원한다. 자신들이 새롭게 만들어 낸 제스쳐 시스템 이외에도 버튼을 누르는 것 만으로도 공을 던지고 칠 수 있는 전형적인 야구게임의 조작법을 게임에 적용해 많은 이들이 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자신들의 독창적인 조작법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일반적인 조작환경에 익숙한 이들을 위한조작법도 지원했던 2K스포츠이기에 복잡한 타격, 투구방식만을 강요할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최초 테스트인 이번 테스트 이후에는 조금 더 편리한 조작방식을 게이머들에게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원작의 감각을 살리기 위해서만 중점을 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은 조작법 이외에 게임의 구성요소에서도 느껴진다. 특히 게임의 핵심 콘텐츠라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기능에서 말이다.
프로야구2K가 게임의 가장 큰 특징으로 내세운 것이 시뮬레이션과 액션성을 모두 갖춘 게임이라는 것이었다. 스포츠 매니지먼트 게임처럼 시뮬레이션으로 경기 결과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시뮬레이션 중에 게이머가 직접 난입해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둘러 경기의 양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프로야구2K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이다.
이번 1차 비공개테스트에서 공개된 프로야구2K의 시뮬레이션은 원작에서 제공하는 매니지먼트 기능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게이머들은 매번 자신의 타순마다 작전을 걸 것인지, 강공으로 갈 것인지, 번트를 댈 것인지를 클릭해야 한다. 주자가 있을 경우엔 런앤히트를 걸 것인 것 도루를 할 것인지 더블스틸을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하며, 수비 시에는 유인구 위주로 갈 것인 것, 정면승부 할 것인지를 매 0.1이닝마다 설정을 해줘야 한다.
게임 중간에 직접 난입해 타격을 하고 공을 던지지 않아도 게이머가 경기 양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지가 지나치게 많은 셈이다.
게다가 매 순간마다 공을 던지고 치고 달리고 아쉬워하거나 기뻐하는 모습까지 게임에 드러나 버리니 결국 한 게임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0분 정도 소요되어, 게이머들에게 '늘어지는' 인상을 전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액션난입' 시스템을 통해 게이머가 공수전반에 걸쳐 20번이나 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두고 작전을 걸 수 있는 상황도 매 순간순간마다 제공을 하니 게임의 템포가 너무 늘어지게 된 것이다.
야구 매니지먼트 게임을 즐기는 이들의 대부분은 빠른 게임 진행에 익숙하다. 빠르게 게임이 진행되고 자신의 팀이 어떤 결과를 냈는가를 보고 싶어한다. 게임에 전술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지만 그 요구가 빠른 게임 진행을 원하는 요구보다 큰 것은 아니다. 비디오게임 원작의 요소를 온라인게임에 그대로 옮겨오지 말고 적절한 수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디오게임 버전의 특징을 온라인으로 거의 그대로 옮겨오면서 남는 아쉬움이 있지만, 비디오게임을 원작으로 하고, 비디오게임을 주로 개발해 온 이들이 개발한 덕분에 생긴 강점도 확실하다. 오히려 인터페이스, 조작법, 게임의 흐름 같은 점은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한 요소이기 때문에 추후 개선될 여지가 충분하며, 현 상황에서 게임이 갖추고 있는 강점들은 게임 서비스가 지속될 경우 이 작품의 강력한 경쟁력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게임에 구현된 선수들의 동작과 현장감이다. 동작의 경우 현역은 물론 은퇴선수까지 포함해 약 100여개의 동작이 구현되어 있다고 개발진은 밝힌 바 있다. 엔진에 기본적으로 담겨 있는 MLB 선수들의 동작을 이용한 경쟁작에 비해 앞서 있는 부분이다.
한국 프로야구 특유의 경기장 문화가 잘 살아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응원가가 흘러나오고, 특정 순간마다 터져나오는 관중석의 반응은 지금까지 공개된 야구 온라인게임 중에서 최고 수준으로 그려지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 특유의 분위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제작진의 노력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게임의 중계도 괜찮은 편이다. 중계 멘트가 나오는 빈도도 적절하지만 더욱 마음에 드는 것은 중계와 해설을 맡은 이기호 캐스터와 민훈기 해설위원의 발음과 연기력이다. '민재훈 해설위원이 MVP베이스볼 온라인에서 해설을 담당한 이병훈 해설위원보다 더빙 환경에 대한 거부감이 덜 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유있는 게임 내 해설을 확인할 수 있다.
프로야구2K가 어떤 콘텐츠를 전달한 것인가의 문제를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지향점은 물론게임의 특징으로 내세울 포인트가 명확하며, 게임 내에 갖춰진 콘텐츠의 완성도는 이미 빼어난 수준이다. 넥슨과 2K스포츠는은 어떻게 게이머들에게 접근할 것인가, 게이머들이 어떻게 게임을 편히 즐길 수 있게 만들 것인가를 2차 비공개테스트가 시작되기 이전까지 고민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