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전설의 암살자, 히트맨 앱솔루션
뒤통수에 바코드가 찍힌 민머리, 검은색 수트와 가죽장갑, 빨간색 넥타이, 그리고 쌍권총 실버볼러. 언제나 포커페이스로 목표물을 반드시 제거하는 히트맨 에이전트 47이 6년 만에 돌아왔다. 잠입 액션 게임 중에서 암살 게임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히트맨 시리즈의 최신작 히트맨: 앱솔루션(이하 앱솔루션)과 함께 말이다. 2000년부터 시작한 이 히트맨 시리즈를 말할 것 같으면 게임 진행의 수단에 그치던 암살을 게임의 정체성으로 끌어올려 잠입 액션 게임의 새 경지를 열은 명작 시리즈이다.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암살의 가능성과 그 연구 과정. 단순히 몰래 접근해 교살하는 것부터 위기탈출 넘버원에서나 볼 법한 사고사를 위장한 암살까지 게이머의 뜻대로 암살 과정을 연구하고 그 과정을 성공할 때까지 도전 또 도전하는 재미가 히트맨 시리즈의 아이덴티티이다. 이렇게 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목표물만 정확히 제거하고 유유히 빠져나갈 때 얻는 게임 내 최고의 암살 칭호 사일런트 어새신이 히트맨 시리즈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그럼 히트맨 시리즈의 최신작인 앱솔루션이 “원조 히트맨, 사상 최고의 살상 무기가 되어 돌아오다”(by OFFICIAL PLAYSTATION MAGAZINE)란 평가를 받은 비결은? 6년의 시간을 거쳐 돌아온 앱솔루션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는데 우선 시리즈에서 처음 선보인 직감 모드가 그 일등 공신이다. 직감 미터를 채워서 직감 모드를 사용하면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보거나, 목표를 찾거나, 변장 상태에서 적의 의심 상태 해소, 적의 이동 경로 예측, 적을 순식간에 제압하는 지정 사격 등 특수 유전자를 보유한 초인 에이전트 47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한다(덕분에 직접 실험하고 연구하지 않아도 적들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므로 히트맨 시리즈에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들를 위해 진입장벽을 낮추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
동시에 엄폐 시스템 도입으로 쉬워진 은밀 행동이 주변 사물들을 활용하는 이번 앱솔루션의 특징과 맞물려 현존 최고의 위험인물 에이전트 47의 종횡무진 활약상을 돕는다. 주위를 알려주는 레이더의 도입으로 실시간 상황 파악이 용이해지고 근접 액션 추가로 수 틀리면 힘으로 적들을 제압해나가면서 상대할 수도 있으니 이만하면 역대 에이전트 47 중 최고의 살상 무기란 칭호가 아깝지 않다. 그렇다고 에이던트 47이 압도적인 초월자가 됐느냐면 그건 아니라서 적들도 이젠 같은 직종(경호원이면 경호원, 잡부면 잡부 등등)이면 직감 모드를 사용하지 않은 에이전트 47의 변장을 알아보고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상호작용에 더 예민해져서 에이전트 47를 질기게 쫓아오는 등 나름대로 밸런스를 맞췄다.
한편 에이전트 47만큼이나 눈부신 발전을 이룬 스토리 방식 역시 눈여겨 볼만하다. 전작들도 기본 스토리 진행과 흐름이 있었지만 앱솔루션은 플레이와 이벤트 영상의 연 리얼타임 CG와 컷신을 대량 투입하여 영화 보듯이 스토리와 플레이를 이었다. 그래서 스토리의 개연성이 확연히 드러나 플레이 동기를 부여하였고, 이것은 끈기를 가지고 집중해야 하는 잠입의 연속에서 게이머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도록 만든다. 앱솔루션의 내용상 결코 여건이 좋다 할 수 없는 사건과 위기의 연속이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게이머가 에이전트 47과 함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라인으로 이어지는 점수 경쟁이나 챌린지, 루트 변화를 파고드는 다회차 플레이도 비슷한 역할을 하겠지만 게이머의 진득한 플레이를 이끄는 것은 역시 몰입도 높은 본편의 스토리 진행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지금의 명성을 쌓아올린 히트맨 시리즈와는 거리가 멀고 방향성도 다르단 점이다. 명성 높은 시리즈 작품들이 언제나 마주하는 벽은 앱솔루션도 피할 수 없었다. 히트맨 시리즈가 자랑하는 수 십 가지의 암살 과정이나 연구가 앱솔루션의 본편에선 불가능에 가깝다. 저장을 액세스 포인트와 자동저장으로만 하기 때문에 세이브/로드 반복으로 잠입이나 암살 루트의 연구 및 실험을 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직감 모드로 적들의 정해진 패턴을 파악해나가면서 플레이하므로 자연스럽게 암살 과정이 몇 가지 루트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연구하려면 못 할 것도 없지만 매우 번거롭다). 당장 옆에 있는 사물들과 현지 조달하는 장비만으로 게임을 진행하니 암살 도구를 연구하는 재미는 아예 사라져버렸고. 많은 시리즈 작품들이 지금의 명성을 있게 해준 과거의 유산을 최대한 존중하거나 벗어나려고 과감한 실험을 하는데 앱솔루션은 후자에 가깝다 볼 수 있다.
대신 본편의 스테이지를 오픈월드처럼 재구성하여 게이머 자신이 조건, 방법, 목표를 설정하거나 다른 게이머들이 정한 환경 속에서 암살을 수행하는 컨트랙트 모드가 기존의 히트맨 시리즈 명맥을 이었다. 언뜻 보기엔 불가능한 조건에서도 어떻게든 시스템을 이용하고 숙련도를 올려서 거짓말처럼 암살 루트가 여는 그 쾌감이 기존 히트맨 시리즈의 그 재미와 판박이다. 그러나 본편에 비하자면 그런 것이지 “이래서 히트맨 시리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엔 조금 못 미더운 건 어쩔 수 없는 부분. 그리고 온라인에서 점수 경쟁에 매달리다보면 조건에 부합해야 점수가 올라가므로 암살의 경우의 수가 줄어드는 걸 피할 수 없다. 컨트랙트 모드가 제공하는 플레이 자체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나 본편에 빠진 기존 시리즈의 정체성을 보충해주기에는 자잘한 디테일이 아쉽다.
그래도 이번 앱솔루션이 재미있는 게임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재미만 따지면 잠입, 액션, 플레이 흐름, 사운드, 그래픽 뭐 하나 옥의 티 찾기가 어려운 수작이다. 끈기를 가지고 적들을 파악해 돌파구를 만들어나가는 재미와 여러 암살 방법으로 목표물을 제거하는 쾌감이 게이머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저 기존의 히트맨 시리즈와 전혀 다른 것을 추구하여 시리즈 내 괴리감이 커진 것일 뿐이다. 컨트랙트 모드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의 히트맨 시리즈처럼 못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히트맨 시리즈를 해보지 않았던 게이머라면 앞뒤 가릴 것 없이 추천할 명작이라 단언할 수 있다. 히트맨 시리즈를 경험했던 게이머라면 호불호가 갈릴 순 있어도 직접 플레이 해보고 앱솔루션을 이야기했으면 싶다. 아예 시리즈 정체성을 내친 것도 아니고 이만큼 해줬으면 게임의 가장 큰 목적인 재미와 시리즈의 정체성 사이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게이머 자신이 결정해야 하는 쪽이 이상적이라 본다.
참고로 앱솔루션을 하기로 마음먹은 게이머라면 기종에 따른 차이를 알아두면 더 좋다. 여유만 있으면 PC판 앱솔루션이 단연 최고지만 PS3와 XBOX 360에서 선택해야 할 경우 XBOX 360은 광원효과가 더 강하고 밀집한 관중들 같은 장소에서 디테일이 선명하며 PS3는 동영상 해상도가 높고 지원하는 음향효과가 더 많다(XBOX 360: Dolby Digital, PS3: Dolby Digital, DTS, 5.1LPCM, 7.1LPCM). 프레임이나 테더링은 세 기종 모두 거의 비슷하여 직접적인 플레이엔 차이가 없으니 게이머의 취향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를 감안하여 즐기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