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ORPG의 꽃’ ‘PvP의 정점’, 그 이름 바로 ‘공성전’
‘성이나 요새를 빼앗기 위하여 벌이는 싸움’을 뜻하는 공성전. 언제부터인가 한국형 MMORPG의 필수 요소로 꼽히기 시작했고, 이제는 MMORPG 마니아들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성을 차지하기 위해 과거에는 길드가 모여 있는 PC방의 인터넷을 절단하거나 특정 길드에 몇 개월 전부터 스파이를 심는 등 게임의 전쟁이 현실로 이어지면서 사회문제가 발생할 정도였다. 그만큼 MMORPG의 공성전은 치열하고 격렬해 승자에게는 더 없는 쾌감을 패자에게는 크나큰 아쉬움을 남기는 요소다.
한국 MMORPG에서 공성전의 시작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의 공성전의 기틀을 잡은 게임은 바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다. 당시의 공성전은 특정 시간 내에 성주를 죽이면 되는 간단한 룰에서 출발했다.
그렇다보니 버그를 사용해 성의 입구를 막거나 몬스터를 성 근처로 몰고 오는 등 공성을 방해할 수 있는 행동까지 진행됐다. 이렇다보니 공성측은 수성 길드가 모여 있는 PC방을 찾아내 빈틈을 만드는가 하면, 특정 길드에 스파이를 심어 수성의 허술한 위치나 정보를 빼내는 일도 빈번하게 이뤄졌다.
공성전을 위해 게임 내 고수나 특정 캐릭터가 용병으로 고용되어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도 생겨났다. 공성전에는 특수한 능력을 보유한 캐릭터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었다.
공성전이 ‘PvP의 정점’으로 불리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혼자가 아닌 다수의 인원들과 함께 대규모 전쟁을 치르다보니 MMORPG의 본질인 ‘역할 분담’이 철저하게 이뤄진다. 탱커와 딜러가 철저하게 구분되고 이를 위한 서포터를 필요로 한다. 철저하게 밸런스가 유지되어야만 전선이 버틸 수 있기 때문에 호흡과 협동, 그리고 단결력을 필요로 한다.
솔로 플레이를 위한 캐릭터가 아닌 약점을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능력에 특화된 캐릭터가 공성전에서 화려한 빛을 발한다. 예를 들어 방어력이 약하지만 공격에 특화된 캐릭터는 필드에서 혼자 PvP를 할 때는 약하지만 서포터로 힐러 캐릭터가 함께 있으면 두 명 이상의 캐릭터를 잡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이치다. 힐러 역시 마찬가지다. 혼자서는 사냥이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딜러 캐릭터와 함께 있으면 무한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명 한명이 떨어져 있을 때는 약하지만 이들이 뭉치면 어중간한 캐릭터 몇 명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발한다.
때문에 공성전이 치러지면 이러한 캐릭터들로 구성된 인원들이 공성, 수성에 참여하게 된다. 역할 분담이 이뤄진 상태에서 길드간의 진검 승부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길드간의 협동과 단결력, 그리고 빠른 상황 판단이 공성전의 승패를 가늠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공성전을 진행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길드나 인원들은 긴밀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게 되고 더욱 끈끈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보이스 채팅이 없던 시절 한 개의 PC방에 모이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현재는 보이스 채팅이 일반화 되어 전국 어디서든 길드가 같이 움직일 수 있지만, 그래도 같은 곳에서 작전을 짜고 행동을 같이 하는 것과는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용자들이 이렇게 공성전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하나의 목적을 위해 협동해서 얻는 성취감도 있겠지만 게임 내에서 크나큰 이득과 명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MMORPG에서 성을 보유하게 되면 특정 지역의 세금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약을 상인에게서 구입할 때 일정 금액을 성을 가진 길드가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악덕 군주가 성을 획득하게 되면 세율을 올리는 일도 발생한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 물약을 사와서 게임을 즐길 수 있지만 시간이 바로 돈으로 이어지는 게임에서 그 정도의 불편함 대신 약간의 돈을 더 지불하는 사용자들은 많다.
이렇게 얻은 게임머니는 아이템거래 사이트를 통해 현금화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과거 공성전의 성공은 바로 현금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천만 원 단위까지 이르며 수성측은 수십만 원을 지불하면서 다른 캐릭터를 아르바이트로 고용하는 경우도 생겼다. 반면 악덕 군주가 되면 공성전의 목적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때문에 성을 가진 길드의 적대 세력이 커지는 요소가 된다. 이 또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나 사용자들의 유대를 강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또한 공성전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게임의 경제는 활성화 되는 장점을 가진다. 보다 좋은 무기나 방어구, 그리고 물약 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게임 내 경제가 침체기가 발생하다가도 공성전으로 인해 장비나 물약 등의 거래가 활발해진다. 자연스럽게 공성전에 참여하지 않는 사용자들도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된다. 상인 캐릭터는 아이템을 보다 많이 판매할 수 있고 아이템 제작 캐릭터 역시 이 때 보다 많은 물건을 팔 수 있다.
때문에 공성전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해당 서버의 경제는 안정화 된다. 물론 특정 아이템이 보다 고가에 거래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겠지만 몇몇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물약, 음식 등의 소모품들이 빠르게 소모되기 때문에 경제 활동은 활발해져 물가가 안정되는 효과도 있다.
그렇다보니 한국형 MMORPG를 꿈꾸는 게임이나 리니지 이후의 정통 MMORPG를 표방하는 게임들은 공성전 콘텐츠를 핵심으로 내걸게 됐다. 리니지 이후 리니지2, 아이온에 이르기까지 성공한 MMORPG들은 기본 이상의 PvP 콘텐츠를 기반으로 공성전이 진행됐다.
최근 몇몇 게임은 PvP에 대한 부정적인 사용자가 늘어나 논PK 서버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결국 MMORPG의 최종 엔드 콘텐츠를 공성전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용자들이 많아 논PK서버는 장기적으로 흥행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블레이드앤소울이 오픈 이후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지만 공성전 콘텐츠가 게임에 녹아들기 어려워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의견도 있다.
반면 최근 다소 주춤한 엑스엘게임즈의 아키에이지는 오는 24일 공성전 업데이트를 통해 최근 부진을 만회한다는 입장이다. 과거 테스트를 통해 기존 MMORPG들에 비해 더욱 많은 변수를 녹여낸 아키에이지의 공성전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될 예정이다.
아키에이지 공성전은 기존 게임들처럼 성이 존재하지 않아 특정 길드가 성을 구축하는 것부터가 공성전 전략의 시작이다. 보다 단단한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성의 모양과 크기 구조를 결정하는 것부터 공성전의 기반이 마련된다. 지난 4, 5차 비공개 테스트에서 진행됐던 공성전에서는 성벽 앞에 나무를 빼곡히 심는다던가 가까이 있으면 잠시 기절을 하는 소똥을 흩뿌려 성을 수비하는 다채롭고 창의적인 유저들의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공격도 기존 공성전 형태의 공성전보다 다소 진화된 형태로 가능하다. 성문만이 유일한 출입구가 아니라 날틀 등의 도구를 이용해 하늘을 통한 성으로의 진입이 가능하고 사다리차 등의 공성 무기를 제작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공성을 할 수 있다. 여기에 유저라는 공성전의 가장 핵심 요소를 포함한 크고 작은 변수들로 인해 아키에이지에서는 다양한 공성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성이 입구만 지켜야 하는 것과 달리 아키에이지는 하늘을 통한 진입이 가능하고 제작 가능한 다양한 공성 무기가 게임에 등장하는 만큼 공성 인원이 다양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기존 공성전의 형태 보다 다소 진화된 형태의 공성전의 모습을 전망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성전은 작은 변수 하나로도 다양한 형태의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MMORPG 공성전의 역사는 길도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다소 단조로울 수 있는 구조지만 사용자들에 의해 다양한 재미와 변화를 만들어왔고 최고 수준의 몰입도를 구현했다. 아직 새로운 형태의 공성전은 등장하지 않았으나 MMORPG의 변화가 진행되고 게임성의 진화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차세대 MMORPG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공성전이나 PvP의 모습이 등장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