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준 기자의 놈놈놈] 모두의 마블
보드게임과는 담을 쌓고 산다는 이들도 부루마불은 한 번 정도는 즐겨봤을 것이다. 한정된 땅에서 경쟁자들과 투자 경쟁을 펼치며, 종국에는 경쟁자를 재기하지도 못 할 정도로 파산시키는 것이 목표인 무지막지한 현실을 보드게임으로 아주 ‘라이트’하게 옮겨 보드게임 말이다.
본 기자 역시 남들과 마찬가지로 부루마불을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많은 추억이 있다. 어린 시절 친척 동생들과 둘러 앉아 부루마불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군대 시절에는 선임들과 라면을 걸고 부루마불로 내기를 하다가, 효율적인 분산투자로 선임들의 라면을 싹 쓸어버리며 ‘투자의 귀재’로 자리잡기도 했다. 통계자료가 없기는 하지만, 아마 부루마불은 적어도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보드게임일 것이다.
CJ E&M 넷마블은 이런 부루마불을 온라인으로 옮겨왔다. 모두의 마블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한때나마 국내 PC방 인기순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모두의 마블은 시대가 지나도 부루마불은 시장에서 통하는 콘텐츠라는 것을 증명했고 이러한 인기는 모바일로도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 게임하기를 통해 모두의 마블이 모바일 버전으로도 출시됐으니까.
김한준 기자(이하 까는 놈): 우리나라가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것이 속설이 게임으로도 증명이 되다니…
김형근 기자(이하 달래는 놈): 무슨 소리야?
까는 놈: 부동산 투기 영재교육 게임인 부루마불이 보드게임으로도 모자라서 온라인, 모바일로도 확장되고 있어. 으으으. 나라의 미래가…
달래는 놈: 아니… 이거 그런 게임 아니거든 -_-;
까는 놈: 왜 나는 시작만 하면 ‘더블-8’ 이러면서 무인도로 직행이야!;; 왜 자꾸 무인도로 들어가는 거야!!!
조영준 기자(이하 모르는 놈): 진정하세요! 그냥 게임이잖아요!
까는 놈: 너 지금 나 동정해?!; 으아!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야! 이거 조작 아니야?!
모르는 놈: 무슨 소리입니까 그건;;
까는 놈: 이거 나만 사람이고 전부 NPC 아니야 NPC?;; 사람인 척 하면서 주사위 조작해서 나를 지금 파멸로 이끄는 거 아니냐고!;;
모르는 놈: …큰일입니다; 한준 선배가 이성을 잃었습니다; 음모론을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달래는 놈: …저 정도로 몰두하게 되는 게임이지. 모두의 마블은 -_-; 보드게임의 매력은 참 대단해. 단순한 룰로도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부루마불의 매력이 제대로 옮겨진 것 같네.
<게임성: 세월이 증명한 재미 vs 그건 원작이나 온라인 버전 이야기고 -_->
모르는 놈: 이 게임은 어르신들도 종종 하시더라구요.
달래는 놈: 워낙에 잘 알려진 게임이니까. 씨앗사에서 부루마불을 출시한 게 1982년, 그러니까 31년 전이네. 그 당시에 30살이었던
사람이 지금은 61살이 됐을 테니, 중장년층이 이 게임을 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잘 알고 있는 게임이기에 적응도 쉬울테고.
오랜 기간에 걸쳐 증명된 게임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온라인과 모바일로 ‘이식’된 셈이니, 재미도 확실하고. 모두의 마블이 출시하자마자 큰 인기를 얻은 건 다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이야. ‘31년의 내공이 쌓인 신작게임’이니까. 모두의 마블을 비판하는 건 어찌보면 ‘31년간의 역사’에 도전하는 셈이기도 해.
까는 놈: 네 말대로 부루마불 자체의 재미는 확실해. 이건 뭐 거의 술래잡기, 얼음땡, 구슬치기처럼 보드게임을 넘어 하나의 놀이문화의 범주에 들어가는 게임이 됐으니까. 나도 그 31년 역사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니가 말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온라인과 모바일로 ‘이식’ 됐다는 이야기는 사실과 달라. 마치 예전 메가드라이브나 슈퍼패미컴 같은 16비트 게임기 시절에나 통용되던 ‘다운이식’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게 모두의 마블 모바일 버전이야. 뭐, 온라인버전은 보드게임 원작과 동일하지만… 모바일 버전에는 아쉬움이 남아.
모르는 놈: 게임이 달라진 건 없지 않습니까? 주사위를 굴리고, 땅을 사고, 건물을 사고, 상대방이 투자한 땅에 들어가게 되면 통행료를 내고, 매매할 수 없는 대신에 특수한 기능을 제공하는 지역이 있고… 게임의 룰이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요.
까는 놈: 룰은 달라진 게 없지. 하지만 모두의 마블 모바일 버전은 모바일 환경에 맞게 개발되면서 한 가지 요소를 약화시켰어. ‘매매할 수 있는 땅’의 수를 줄였지. 쉽게 말해서 게임판이 작아졌다는 거야. 원작과 온라인 버전은 한 라인이 10칸으로 구성되지만 모바일 버전은 8칸으로 구성돼.
물론 이 덕분에 게임 진행이 더 빨라진 것은 사실이야. 한 게임을 즐기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도록 구성하는 것이 모바일게임 시장의 필수요소가 된 것 같은데, 이를 위해 사이즈를 희생하고 속도를 얻은 거야. 칸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각 칸과 아이콘의 크기가 커져 가독성도 확보됐지.
달래는 놈: 매매할 수 있는 땅이 줄어들어서 투자, 육성의 재미가 줄어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독성과 빠른 게임 진행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야?
까는 놈: 아까도 말했듯이, 나 역시도 저런 선택 끝에 니가 말한 결과물을 얻은 걸 부정하지는 않아. 다만 아쉬운 것은 얻은 게 있는 만큼 잃은 것도 있다는 것이지. 칸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단순히 매매할 수 있는 땅의 개수가 줄어든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아. 여차하면 한 라인을 통째로 지나갈 수 있는 확률이 대폭 증가했고 반대로 원작에 비해 다른 사람의 땅에 걸려서 통행료를 지불할 확률은 낮아졌다는 이야기야.
상대가 투자한 땅에 걸려서 통행료 폭탄을 맞을 확률이 낮아졌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게임에서 역전극이 그려질 확률도 낮아졌다는 이야기거든. 즉, 초반에 세바퀴를 가장 빨리 돈 사람이 게임 내내 자신의 페이스를 유리하게 가져갈 수가 있어. 게임이 일방적으로 진행될 확률이 더 높아졌다는 이야기야. 개인적으로는 ‘속도감을 얻고 쪼이는 맛을 잃었다’고 느껴져.
<게임성 이외의 요소: 지인들과 함께 즐기는 재미 vs 부루마불 재미의 8할은 대화인데…>
모르는 놈: 그래도 카카오톡에 연동되면서 지인들과 쉽게 부루마불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달래는 놈: 확실히 편하긴 하지. 사람들을 모아서 자리를 마련하고, 일일이 게임판을 정리하고, 게임하는 내내 돈을 주고받고 정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이 일사천리로 게임을 즐길 수 있어.
까는 놈: 하지만 채팅 시스템의 부재는 아쉬워. 모두의 마블 모바일 버전에서는 자신의 감정표현을 할 수 있는 간단한 이모티콘 몇 가지를 제공하는데, 사실 이 정도로는 부루마불 특유의 ‘대화하는 재미’는 구현하지 못 하지.
물론, 이건 욕심에 가깝다는 걸 알아. 모바일 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게임 중에 상대방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부루마불을 하면서 상대를 놀리고, 이를 맞받아치면서 시끌시끌, 와글와글 게임을 즐기던 분위기가 그리워지는 것도 사실이더라구. 음성채팅은 말도 안되는 바람이겠지만, 적어도 문자채팅을 지원하거나 아니면 감정표현을 할 수 있는 이모티콘의 종류가 더욱 많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기분이 들어.
모르는 놈: 확실히 팀전을 할 때, 우리 편이 사면 안 되는 땅을 사서 망해가는 상대방을 기사회생 시켜주는 걸 보면 속이 터지긴 해요. 그거 사지 말라고 말을 하고 싶어도 말하기도 쉽지 않고 -_-;;
까는 놈: 그리고 채팅 기능이 있으면… 또 하나의 장점이 있거든.
달래는 놈: 무슨 장점?
까는 놈: 대화를 걸어서 나랑 같이 게임을 하는 사람이 정말 사람인지…아니면 NPC인지 알아낼 수 있으니까!! 야! 할 때마다 ‘더블-8-무인도’에 걸리는 게 말이 돼?!!;;
모르는 놈: 잠잠한가 싶더니만 다시 미쳤나봅니다!;
달래는 놈: 아오! 이 인간 진짜 뒤끝 장난 아니야!!;;;
- 모두의 마블은?
온라인게임 시장에서도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더니,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는 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CJ E&M 넷마블은 보드게임.
여기서의 마블이 부루마블의 마블을 뜻하는지, 넷마블의 마블을 뜻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확실한 건, 잘 나가는 콘텐츠는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흥한다는 걸 증명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주사위를 굴릴 때마다 무인도로 들어가 문명과 단절되는 바람에 짜증을 진심으로 낸 몇 안 되는
게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