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다음은 문화와 외교. 문명5 브레이브 뉴 월드
"문명하셨습니다"라는 말로 한동안 게임 시장에 광풍을 몰고 온 문명5. 이미 출시된지 2년이 넘어 예전만큼의 기세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동안 세종대왕 DLC부터 첫번째 확장팩 갓&킹즈를 선보이면서 꾸준한 인기를 이어왔으며, 최근에 두번째 확장팩인 브레이브 뉴 월드로 다시 한번 즐거웠던 기억을 상기시키고 있다.
첫번째 확장팩인 갓&킹즈에서 종교라는 새로운 콘텐츠로 전투 외에 세계정복을 향한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한데 이어, 이번 브레이브 뉴 월드에서는 문화와 외교를 핵심으로 내세웠다. DLC 하나도 허술하게 만들지 않는 파이락시스답게, 기존까지 익숙했던 게임의 흐름을 완벽하게 바꾼 것으로, 세계정복으로 도달하는 길을 더욱 다양하게 만들어 게이머들에게 더 많은 선택의 즐거움을 주는 듯한 느낌이다.
브레이브 뉴 월드에서 새롭게 만나볼 수 있는 콘텐츠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문화 승리다. 브레이브 뉴 월드에서는 굳이 전투를 하지 않아도 타 국가보다 선진 문화를 발전시켜 영향을 끼친다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실제로 현실에서도 미국이 헐리우드 영화를 앞세워 전세계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문명5 원본에서도 문화 승리가 있긴 있었다. 하지만, 사회정책 5개를 모두 채택한 후 유토피아 프로젝트를 완성하면 달성되는 단순한 조건이었기 때문에 이번 확장팩에서의 문화 승리에 비해 현실성이 떨어졌다.
문화 승리로 가는 방법은 타 국가보다 더 빠르게 문명을 발전시켜 오페라하우스, 박물관 등 문화 기념물들을 짓고, 작곡가, 화가 등 위인들을 생산해서 문화 점수를 빠르게 쌓는 것이다. 문화점수를 많이 쌓아 일정 수 이상의 타 국가들이 자국의 문화에 영향을 받게 되면 승리하게 된다. 말은 참 쉽지만 타 국가들도 만만치 않은 발전 속도를 자랑하며, 문화 발전에만 치중할 경우 타국가의 군사도발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없는 경우도 생기니 여러가지 상황을 모두 대처하면서 플레이를 해야 한다.
문화 승리를 원한다면 이번에 추가된 세계회의를 통해 타 국가와 외교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세계회의는 지도에 존재하는 모든 문명을 만난 국가가 문명을 인쇄술까지 발전시키면 소집할 수 있으며, 각 국가마다 영향력에 따라 투표권을 배정받게 된다.
세계회의에서 다뤄지는 것은 세계 종교 제정, 무역 활성화, 특정 국가와의 통상 금지 등 현실세계에서도 늘 발생하고 있는 국제 관계에 관련된 전반적인 내용들이다. 세계회의를 잘 활용하면 전세계를 평화롭게도, 아니면 마음에 안드는 국가를 왕따시킬 수도 있다.
세계회의를 마음껏 활용하기 위해서는 투표권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국의 힘을 키워야 하며(세계의회 개최국은 타 국가보다 많은 투표권을 가지고 시작하게 된다), 타 국가와의 외교에도 신경을 써서 자국을 지지해줄 수 있는 우호국을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타 국가 수도에 스파이를 보낼 경우 외교관으로 변신해 활동을 하게 되며, 세계 회의 때 투표권을 두고 거래도 할 수 있다.
세계회의가 타 국가와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방법이라면 새롭게 강화된 타 국가와의 교역 시스템은 국가의 발전을 가속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타 국가에 대상을 보내면 문명 발전에 필요한 자원들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으며, 자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도 한다.
이렇듯 브레이브 뉴 월드에 새롭게 추가된 요소들은 세계 정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을 더욱 다채롭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바꿔주고 있다. 물론 이전 원본에서도 문화 승리, 외교 승리, 과학 승리 등 다양한 조건은 있었지만 이 조건들을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전쟁을 피할 수가 없었다. 말이 문화 승리이지 사실상 군사력의 승리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번 브레이브 뉴 월드의 승리 조건은 현실을 상당히 반영한 복잡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세계회의를 통해 강대국을 견제하고,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세계 여론을 이끌어가는 것은 현실 세계의 UN을 보는 것 같아 매우 흥미진진하다.
다만, 현실성을 더 많이 반영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굉장히 복잡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게임 플레이의 난이도가 올라갔다는 말과도 동일하다. 이전과 달리 신경써야 할 것이 많아지면서 한 턴을 넘기는데 걸리는 시간이 대폭 증가했으며, 이는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이전처럼 열중하면서 무의식적으로 턴을 넘기다 정신을 차려보면 아침해가 떠오르는 것은 이번 확장팩에서는 경험하기 힘들다. 원본을 너무 많이 플레이해서 이제 지겨워진 마니아들에게는 다시 한번 불타오르게 만드는 동기 부여가 될 수도 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기에는 게임이 많이 무거워졌다.
물론 복잡해졌을 뿐 게임이 재미없어진 것은 아니다. 문명5가 처음 나왔을 때 미친듯이 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플레이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테니 다시 붙잡는다면 예전 기분을 떠올리면서 다시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다. "문명하셨습니다"라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타임머신 기능은 여전히 강력하다. 현실에 좀 더 가까워진 복잡함을 즐길 마음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