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는 힙합만 하나, 게임계에서 살펴보는 디스의 역사
난데없이 전국이 디스 열풍에 후끈거리고 있다. 힙합 씬의 이야기다. 스윙스, 이센스, 개코 등의 랩퍼들이 펼치고 있는 서로를 향한 독설에 힙합 팬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은 물론, 힙합에 큰 관심이 없던 이들까지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다.
음악의 힘을 빌어 라임을 맞추고 플로우를 맞춘다는 점이 힙합의 디스 문화가 지니고 있는 특징이지만, 사실 특정 대상을 향한 독설이 대중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각기 다른 성향과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세상이기에 상대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것은 자연스러우며, 이러한 마찰이 외부로 표출되는 것 역시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임업계에서도 이러한 디스의 흔적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과연 게임 업계에서 펼쳐진 대표적인 디스는 무엇이 있을까?
< 내가 싫어하는 게임 5개? 철권 1, 2, 3, 4, 5>
데드오어얼라이브 시리즈와 닌자 가이덴 시리즈로 유명한 개발자 이타가키 토모노부(사진 맨왼쪽)는 디스 혹은 독설에 대해서는 게임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뛰어난 개발실력만큼이나 확고한 개발철학을 지니고 있으며 그에 못지 않은 자기 실력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이타가키는 타 게임에 대한 쓴소리를 함에 있어 주저함이 없다. 오죽하면 게이머들이 그의 이름을 빗대어 '이빨까기'라는 별명을 붙여줬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특히나 자신이 개발한 게임의 경쟁작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발언을 하기로 유명한데, 닌자 가이덴과 함께 액션 게임을 대표하는 게임인 데빌메이크라이에 대해서는 '가벼운 게임'이라고 폄하하기도 했으며, 데드오어얼라이브3를 발매했을 당시에는 버추어파이터는 낡았고 철권은 쓰레기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철권에 대한 이타가키 토모노부의 발언이다. 남코 측에서 데드오어얼라이브 시리즈를 폄하하자 이에 대한 반발심을 드러낸 것이라 평가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게임 5개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철권 시리즈 1편부터 5편까지를 꼽은 것은 게임 업계의 역대급 인터뷰로 꼽힐 정도의 임팩트를 남겼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발언을 한 이타가키 토모노부와 철권의 개발자인 하라다 카츠히로의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타가키는 "철권은 싫어하지만 개발자인 하라다는 존경한다"고 말한 바 있으며, 하라다 역시 이타가키의 디스를 듣고도 "이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면 철권이 더 유명해지겠구나" 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 일본게임은 X같다고 말한 인디 개발자 필 피쉬>
미국의 인디게임 개발자인 필 피쉬는 근래에 가장 유명한 게임계 '독설가'라 할 수 있다. 페즈(FEZ)라는 게임을 출시하며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그는 지난해 개최된 게임개발자 컨퍼런스인 GDC 2012에서 일본게임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는 일본인 개발자의 질문에 이러한 대답을 했다. "일본 게임은 X같다"
일본인 개발자의 발언을 빈정거리는 모습까지 보인 그의 태도에 많은 이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발언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너무나 무례한 태도였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다시 한 번 빈정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미안 일본인들아! 내가 좀 거칠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너희들 게임은 전부 끔찍하다"고 말한 것이다.
사실 그는 일본 게임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 이전부터 독설로 나름대로 명성을 얻은 인물이었다. 게이머는 인간들 중 최악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게임인 페즈의 출시 후 세이브 관련 버그가 발생하자 '전체 이용자 중에 1%만 겪는 버그'라며 버그에 대한 비판을 하는 이들을 무시하기도 했다.
또한 패치가 필요한 시점이 되자 업데이트 비용이 비싸다고 MS를 비판했다. 재미있는 것은 MS가 이에 대해 비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공동 작업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이에 대해서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자신의 게임이 스팀에서 인디게임 순위 1위를 차지하자 자신의 안티들에게 '아직도 스팀 1위다. 더 열심히 보이콧해라 멍청이들아'라며 빈정거렸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게임에 대한 비판을 하는 평론가와의 말다툼 중에 흥분을 이기지 못 하고 자신이 개발 중이던 페즈2의 개발을 취소하겠다고 자신의 게임을 인질로 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북미 비디오게임 시장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조금씩 하락하고 있지만, 시장 규모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 2010년의 미국 비디오게임 시장 규모는 166억 달러로 2009년의 177억 달러에 비해 6.2% 가량 하락했지만 2011년에는 다시 170억 달러 규모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업계에서는 미국 비디오게임 시장 규모가 향우 170억 달러 선에서 유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비디오게임 시장의 생명력이 끝났다는 일각의 평가와는 상반된 모습인 것을 알 수 있다.
< 온라인게임의 아버지. 콘솔 시장을 저격하다>
국내 게임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디스 사례라면 지난 2012년 3월에 있었던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의 콘솔 시장에 대한 발언을 꼽을 수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진행된 4차 곽승준의 미래토크에 패널로 참석한 송재경 대표는 특강을 통해 특강을 통해 자신이 처음으로 접했던 게임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게임을 개발하면서 있었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더 많은 ‘게임장인’이 등장하기를 바란다고 청중석의 게임 개발자 지망생들과 게임 마니아들에게 당부했다.
여기까지는 훈훈했다. 하지만 콘솔 시장에 대한 견해를 묻는 한 청취자의 질문에 답한 송재경 대표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화제가 됐다. “콘솔 게임을 만들지 말고 온라인게임을 개발하라. 콘솔 게임은 곧 사라질 시장인데 왜 그 시장에 목을 매는가?”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송대표는 자신의 이러한 발언의 이유로 콘솔 플랫폼 제조사인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부진과 신형 기기가 빠르게 출시되면서도 게임 콘텐츠가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는 스마트폰, 타블랫 기기 시장의 확대를 꼽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송재경 대표의 이러한 발언 이후 콘솔시장은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아쉽게도 콘솔 시장의 몰락을 목격하는 데에는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