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비니티 시리즈의 새로운 도전, 드래곤 커맨더
스마트폰 게임과 온라인 게임의 강세로 인해 존재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축소 되어 있는 국내 PC 및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는 신작 출시가 그리 활발하지 않은 편이며, 특히 한글화되어 출시되는 게임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편이다. 때문에 한글화 게임을 적극적으로 출시하는 퍼블리셔는 게임의 재미 여부와 상관없이 대인배 소리를 들으며 칭송을 받고 있으며, 아마추어 한글화 팀의 활약에 따라 게임 판매량이 좌지우지 되는 웃지 못할 현상도 자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퍼블리셔에서 한글화까지 해서 출시한 PC 게임이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조용히 출시됐다. 문명을 시작으로 적극적인 한글화 정책을 펼치고 있는 H2 인터렉티브에서 출시한 라리안스튜디오의 디비니티 : 드래곤 커맨더(이하 드래곤 커맨더)가 그 주인공이다.
드래곤 커맨더는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높지는 않지만 해외에서는 뛰어난 스토리로 유명한 액션RPG 디비니티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시리즈인 만큼 당연히 액션RPG 장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여러 장르가 짬뽕처럼 섞인 문명'같은 게임이다. 턴제 시뮬레이션을 하다가, 실시간 전략을 하고, 카드 플레잉, 3인칭 액션, 연애 시뮬레이션(?)까지.. 복합 장르의 게임들이 대부분 그렇듯 완성도 측면에서는 의문부호가 생길 수 밖에 없지만, 검증된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택한 라리안스튜디오의 도전정신은 높게 평가할 만 하다.
게임 설치 후 첫인상은 매우 깔끔한 편이다. 단순한 동영상이 아니라 인형극을 보는 듯한 오프닝을 시작으로, 적절하게 잘 배치된 인터페이스, 깔끔한 그래픽, 보기 편한 한글 폰트가 좋은 인상을 준다. 특히 한글화 덕분에 드래곤의 피가 흐르는 사생아인 주인공이 제국통일을 위해 같은 피가 흐르는 다른 형제자매들과 경쟁을 펼치는 게임 스토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어 더욱 호감을 느끼게 된다. 어차피 싸우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내용을 알고 싸우는 것과 모르고 싸우는 것은 동기부여 측면에서 상당히 다르다.
게임 플레이는 턴 방식의 전략 시뮬레이션 방식을 기본으로 하며 , 다른 게임과 거의 유사하게 자원 관리, 유닛 구매, 건물 건설 그리고 적대 세력과의 점령전으로 이어지는 형태다. 아마 '문명'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연구 점수를 쌓아서 상위 유닛의 잠금 해제와 유닛을 강화하는 연구를 하거나, 직접 전투에서 벌어지는 드래곤의 다양한 스킬들을 습득 할 수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전투 발생 시 전투 지휘자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금화를 사용하여 장군이 지휘할 경우에는 '슈퍼파워2'와 유사하게 유닛의 상성과 전투,방어력 수치 및 확률로 자동 전투가 이루어지며, 플레이어가 직접 전장에 참여할 경우에는 실시간 전략 게임으로 진입하게 된다. 여기서 플레이어가 보유한 카드를 사용하여 변칙적인 진행도 할 수 있다.
플레이어의 직접 지휘 모드에서는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처럼 거점을 점령하여 병력을 생산, 관리하며 적을 궤멸시키는게 목표다. 여기서 플레이어가 일정 자원을 소비하여 강력한 드래곤으로 변신 후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 할 수 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불리한 상황에서도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전략을 펼칠 수 있다.
전투 외적인 측면에서는 사용자의 지휘 통제소인 '함교'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게임에 등장하는 5가지 종족들과의 우호관계를 '동성결혼', '학교체벌'등 국가의 여러가지 정책 발의를 통해 조정할 수 있다.
종족과의 우호도는 게임의 자원 습득과 플레잉 카드 등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되기 때문에, 각 종족을 대표하는 NPC들과 대화를 나누며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게다가 결혼 시스템이 있어 플레이어가 선호하는 종족의 여성 캐릭터와 결혼하여 신부의 뜬금없는 부탁을 들어주거나 거절하여 나름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을 즐기는 듯한 기분도 맛볼 수 있다.
추가로 게임에 등장하는 장군들 또한 대화와 선택지를 통하여 장군들간의 불화를 화해 시키는 등의 부탁을 들어주면 자동 전투 진행에 관련한 스킬들을 습득시켜 게임 진행을 좀 더 매끄럽게 할 수도 있다.
워낙 많은 장르가 합쳐져 있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해보이지만 게임 플레이 도중 특정 상황이 되면 튜토리얼이 하나씩 해제되며 게임플레이에 도움되는 정보를 제공해준다. 물론 대부분의 게임들이 그렇듯 튜토리얼에서는 기초적인 상식만 전해줄 뿐 카드 플레잉과 유닛 간의 상성 등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으며,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기능들을 하나씩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니 지나치게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렇듯 드래곤 커맨더는 다양한 장르가 합쳐지면서 여러 게임에서 즐길 수 있었던 재미를 한번에 느낄 수 있는 게임이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복합 장르 특유의 한계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각각의 게임 진행 모드들이 전체적으로 매우 어설프고, 특히 실시간 전투 모드에서 컴퓨터의 인공 지능이 매우 단순하여 자동 전투로는 99%로 플레이어가 반드시 패배하는 상황도, 인공 지능을 악용한 필승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또한 이런 게임일수록 각 유닛간의 상성과 밸런스를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데, 상성이 뚜렷하지 않아 특정 유닛의 머릿수 만으로 인해전술을 펼치는 등, 게임을 조금만 플레이해보면 말도 안되는 전술을 구사하여 게임의 재미가 반감되는 부분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게임의 플레이 타임 또한 편차가 굉장히 큰데, 3인칭 액션과 실시간 전략 전투를 벌이는 모드가 플레이를 할 수록 지루해지며 게임의 진행 또한 굉장히 느려져 점점 몰입이 되지 않는 역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명'처럼 타국과의 외교를 통한 불가침이나 동맹 시스템이 없어 게임 초반에 잘못된 선택으로 진행이 꼬여버리면 이를 풀어내기가 상당히 힘들어진다.
이런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게임이 플레이할 필요가 없는 값어치 없는 게임인 것은 아니다. 디비니티:드래곤 커맨더는 국내 정식발매가격이 3만 5천원정도로 다른 메이저 게임들보다 비교적 저렴한 편이며, 한글화 덕분에 게임이 추구하는 재미를 놓치는 바 없이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을 좀 더 손 보고, 게임 진행의 완성도를 높이며, 구체적인 게임 정보 제공 등 사용자에 대한 배려와 같은 몇몇 부분만 조금 더 보완하면 재미있고 훌륭한 게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