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준 기자의 놈놈놈] 영웅의 군단 편
과거 이야기는 때로는 믿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그것이 사실이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 먼 과거의 이야기도 아닌데 이를 믿지 못 하는 이들을 보면 '세대차이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특히나 발전히 대단히 빠른 산업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이러한 느낌을 더욱 강하게 받게 된다. '15년 전에는 모니터가 LCD가 아닌 CRT였고, 비율도 지금처럼 16:9가 아니라 4:3이었단다'라는 말을 하면 'CRT가 뭐에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식이다. '플레이스테이션의 CD 뒷면이 검은색이었다'고 이야기하면 '검은 CD가 어디 있음?'하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플레이스테이션 CD 이이갸는 본 기자가 실제로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90년대 이후 태생의 게이머들에게 생소한 이야기를 해보자. 지금이야 실시간 개념이 도입된 게임들이 보편화 되어 있지만 한때 게임시장을 턴제 SRPG가 쥐락펴락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인공지능과 내가 한 턴씩 번갈아가며 유닛을 이동시키고 행동을 하며 전투에서 승리한다는 방식의 턴제 SRPG 특유의 게임성은 충분히 매력적이긴 했지만 하드웨어 성능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 했던 시절이기에 실시간 전투를 구현한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어려웠던 시기다.
김한준 기자(이하 까는 놈): 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이런 턴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이 많았지. 사실 나는 이런 방식이 너무 익숙해서 그런지 나중에 나오는 RTS 게임들은 적응하기 어려웠어. 스타크래프트를 바둑이나 장기 두듯이 했다니까? -_-;
조영준 기자(이하 편드는 놈): 그건 그냥 한 번에 여러 일을 못 하는 뇌 구조 때문인 것 같은데요 -_-;
조광민 기자(이하 말리는 놈):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 전혀 다르긴 해요.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행동을 해야 하는 RTS에서는 느긋한 맛은 사실
찾을 수 없죠. 반대로 SRPG로 대변되는 턴제 게임에서는 속도감을 찾기 어렵구요.
까는 놈: 요즘 시류에는 확실히 실시간 진행이 유행인 것 같아. 같은 시간 흐름 속에서 상대와 내가 동시에 행동을 한다는 것은 다양한 변수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턴제 게임이 완전 종말을 고한 것은 아니지. 콘솔만 봐도 슈퍼로봇대전 같은 게임이 꾸준하게 인기를 얻고 있잖아.
말리는 놈: 보아하니 오늘은 영웅의 군단 이야기 하려고 하시는군요.
편드는 놈: 뻔하죠. 한준 선배의 패턴을 파악했습니다.
말리는 놈: 알기 쉬운 사람이라 다행이네요. 후후후.
편드는 놈: 그러게 말입니다. 후후후.
까는 놈: ...너희들 도대체 콘셉트를 어떻게 잡은 거냐 -_-;;
<엔도어즈의 노하우가 집대성 된 게임 VS 자기복제가 강렬한 것 아닌가>
편드는 놈: 국내 MMORPG에서 최초로 턴제 전투를 시도한 아틀란티카, 이러한 시류를 모바일 플랫폼으로 옮겨오는 모험을 한 삼국지를 품다. 이 게임을 하다 보면 아틀란티카와 삼국지를 품다를 통해 쌓아올린 턴제 SRPG의 노하우가 집약된 게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까는 놈: 개인적으로 김태곤 PD는 국내 개발자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야. 특히 새로운 시도를 자꾸 한다는 점에서 말이지.
말리는 놈: 왠일로 이번 작품은 실존했던 역사를 게임에 녹여내지 않았네요.
편드는 놈: 무슨 말입니까?
말리는 놈: 별 의미는 없어요. 말 그대로 김태곤 PD는 그동안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을 많이 만들었다는 이야기죠. 충무공전이 그랬고 임진록이 그랬습니다. 아틀란티카는 실존 역사는 아니었지만 전설 속에 전해져 내려오는 아틀란티스 대륙을 게임의 소재로 삼았던 작품이고, 가장 최신작인 삼국지를 품다 역시 실존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이었죠.
사람들에게 친숙한 소재,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던 소재를 게임 속에 담아내는 사례가 많았던 인물이지만,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환타지 세계관의 게임을 출시했다는 게 흥미롭다는 말이에요.
까는 놈: 뭐. 김태곤 PD의 팬에게는 신선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네. 게임 시장의 전반적인 흐름에서 보면 놀라울 것은 없지만.
편드는 놈: 역사물은 아니지만, 턴제 게임을 꾸준히 만들면서 집약된 노하우는 이 게임에 잘 녹아들어 있어요. 하나의 전투를 4개의 스테이지로
구성해서 게이머가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구성한 점이 특히 마음에 듭니다.
말리는 놈: 확실히 여타 SRPG는 스테이지 하나를 두고 오랜 시간 게임을 해야 해서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죠. 그게 매력이라고는
하지만... 짧게 짧게 게임을 즐기는 모바일게이머들의 플레이 특성을 고려하면 이러한 판단은 적절했다고 생각돼요. 덕분에 턴제 게임의 고질적인
단점인 늘어지는 느낌이 덜 합니다.
편드는 놈: 모바일 디바이스의 조작환경을 감안하면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게임보다는 이런 턴제 게임이 더욱 적절했다고 봐요. 터치 인터페이스에서는 아무래도 화면이 손으로 계속해서 가려지기 때문에, '지속적인 조작'은 게임 진행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거든요.
여유를 갖고 상황을 주시하면서 원하는 행동만 딱딱 짚어주는 것이 좀 더 쾌적한 게임 플레이를 돕게 되는 것이죠.
까는 놈: 엔도어즈는 '턴제 게임은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지침서를 만들어도 될 정도로, 턴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그런 사람들이 만들었으니 그 완성도도 의심할 바 없어. '믿고 한다'는 말을 해도 좋을 정도야.
삼국지를 품다는 성적 면에서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번 작품에도 영향을 주고 있지. 개인적으로는 삼국지를 품다는 '모바일 턴제 SRPG'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레퍼런스 모델이었다고 보고 있지만... 여튼 삼국지를 품다를 거치면서 엔도어즈는 'SRPG를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 시키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아.
영웅의 군단은 익숙함과 참신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어. 새로운 시도가 보인다기 보다는 기존 PC, 비디오게임에서 느꼈던 친숙한 즐거움을 모바일 환경에서 구현하는데 집중한 느낌이야. 이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긴 해. 굉장한 일이지. 오락실에서 즐기던 게임을 집에서 즐기는 것에 큰 기치를 두던 시절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러한 시도는 분명히 가치가 있어.
하지만 너무 자기복제가 심한 것은 아닌가하는 아쉬움은 남아. 턴제 게임 특유의 특징이랄까 단점이랄가. 뭐 그런 점들은 여전히 남아 있거든. 이벤트와 전투가 일어나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필드에서 별도의 액션을 할 수 없다는 것도 그렇고.
편드는 놈: 모바일게임에서 너무 많은 걸 기대하시는 거 아닙니까?;
까는 놈: 모바일게임이라고 해서 다른 기종보다 유독 낮은 허들을 들이대는 것은 역차별이 아닐까 싶어. 네 말마따나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하긴. 이런 점까지 고치게 되면 아예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것과 다를 것이 없기는 하겠네. -_-;
<소소한 곳에서 느껴지는 세심함 VS 의욕 포인트 소모가 심한 것은 결제 유도를 위함인가>
말리는 놈: 지금까지의 이야기야 취향에 따라서 혹은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냐에 따라 갈릴 수 있는 부분이네요. 더 이상의 논쟁은 그만 하시는
것이 어떠실지.
까는 놈: 너 언제부터인가 자꾸 중재자 역할을 한다 -_-?
말리는 놈: 그냥 저는 균형의 수호자일 뿐입니다. 허허허.
편드는 놈: 게임 여기저기서 세심함이 느껴지는 것도 이 게임의 장점이에요.
까는 놈: ...그리고 저건 광민 기자가 말리면 바로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_-;
편드는 놈: 뽑기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유닛을 모으는 재미가 있죠. 이런 요소는 TCG나 CCG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부분이기에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만, 모든 일러스트가 마냥 예쁘게만 그려지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어요. 개성이 넘치거든요.
까는 놈: 아. 나도 그런 점은 마음에 들어. 사람들 웃겨. 성형미인들 다 똑같이 생겼다고 비아냥거리면서, 정작 게임 내 캐릭터들은 다 비슷하게 생겨도 뭐라고 하지를 않으니 말이지. 캐릭터의 개성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턴제 RPG에서 이러한 요소는 게임의 특성을 부각시켜주는 좋은 선택이야.
말리는 놈: 유닛 하나하나에 각자의 스토리가 부여된 것도 개발진의 정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네요. 덕분에 스토리 텔링이 더욱 힘을 얻었구요. 이 역시 SRPG의 특징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어요. 이야기를 보기 위해 유닛을 수집하고 싶어지기도 하구요.
까는 놈: 외모로만 승부하는 게 아니라 내실로도 승부를 한 셈이야. 풀보이스를 지원하는 사운드도 여타 모바일게임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좋은 판단이고. 덕분에 게임 용량이 커지기는 했다만, 이 정도 퀄리티를 위해서라면 감수해야 할 부분이지.
그런데 전투 한 번에 사용되는 의욕 포인트가 너무 많지 않아? 전투 2~3번이면 다 소모되는 것 같은데... 이벤트를 통해 다양한 경로로 의욕 포인트를 지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부분이 스트레스가 될 것도 같아.
삼국지를 품다의 경우는 ‘어떻게 수익을 내려고?’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을 영웅의 군단에서 이런 식으로 풀어낸 건 아닐까 싶어.
<영웅의 군단은?>
이름 그대로 영웅이 군단을 만드는 턴제 SRPG 게임. ‘for Kakao’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오지 않아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영웅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게임이기도 하다.
굉장히 다양한 특징을 지닌 유닛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에 자신의 입맛대로 군단을 꾸리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PvE 개념은 물론 군단과 군단이 힘을 겨루는 PvP 요소도 충실해, 게이머들에게 더 강한 군단을 육성하도록 하는 동기부여도 하고 있다.
기존 국내 모바일게임에서 접할 수 없었던 완성도를 보이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독창적인 시스템과 같은 특출난 필살기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수준 높은 기본기를 통해 게임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왠지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가 생각나는 부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