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준 기자의 놈놈놈] 타이탄폴 편

전장의 하늘이 열린다. 지면에 녹색 불빛이 번쩍이더니 이윽코 하늘에서 강철로 된 거인이 지면으로 낙하한다. 굉음이 일어나고, 소총을 맨 병사는 익숙한 자세로 강철거인의 품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거인은 묵직한 기계음을 내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타이탄폴 스크린샷
타이탄폴 스크린샷

지난 3월 11일 출시된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첫 작품. 타이탄폴의 이야기다. 타이탄폴은 비공개테스트에 200만 명의 테스터가 몰렸을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큰 기대를 받았던 작품. 벽을 타고 달리는가 하면, 2단 점프로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고, 이러한 움직임을 펼칠 수 있는 덕에 캐릭터의 동선이 여타 FPS에 비해 굉장히 다양해 입체적인 전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개발사인 리스폰 엔터테인먼트가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1, 2편을 개발한 이들이 주축이 되서 설립한 회사라는 점도 게이머들이 타이탄폴을 기대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밀리터리 FPS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다양한 FPS 게임에 영감을 준 모던워페어의 개발자들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였다.

김한준 기자(이하 까는 놈):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기대가 컸던 게임이다. 콜오브듀티: 고스트에 실망을 하고, 배틀필드 시리즈는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내 취향에 맞지 않아서 한동안 FPS 게임을 거의 안 했거든. 영상에서 공개된 속도감 있는 게임 진행도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로봇!! 로봇이 나온다! 쿵쾅쿵쾅, 철컹철컹하는 강철 거인과 함께 펼치는 전투! 기대를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있겠나? 영준이 너도 로봇 좋아하지?! 로봇 하면 어떤 게임이 떠오르냐!

조영준 기자(이하 편드는 놈): 슈퍼 로봇대전이요 --
까는 놈: ... FPS 얘기 하고 있는데 왠 SRPG 얘기를 하고 앉았어 -
-

조광민 기자(이하 말리는 놈): 그런데 로봇 나오는 FPS가 아예 없던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예 로봇과 로봇의 대전을 그린 FPS가 유행을 하던 시기도 있었구요.

까는 놈: 뭐 그건 그렇지. 로봇을 타고 전투를 벌이는 멕 워리어 시리즈도 있었고, 오래 전에 출시된 PC게임 중에 쇼고: 이동전투단 이라는 게임도 있었으니... 하지만 이런 게임들이 큰 인기를 얻었던 건 비교적 오래 된 이야기잖아. 그리고 타이탄폴이 영상을 통해 기대하게 만들었던 '속도감 있는 대전'과는 거리가 멀었고. 멕 워리어는 로봇 특유의 묵직함은 살렸지만 속도감은 부족한 게임이었고, 쇼고: 이동전투단은 사람, 로봇을 번갈아가며 진행하는 싱글플레이 위주의 FPS였으니까.

일단 벽을 타고 달리고 건물과 건물을 붕붕 뛰어다니면서 전투를 펼치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타이탄에 탑승해서 전투를 펼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은 없었으니, 그 콘셉트만으로도 게이머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어. 나도 그 콘셉트에 혹한 사람 중 한 명이었고.

말리는 놈: 정리하자면 FPS 장르에 갈증을 느끼던 차에 신선한 콘셉트의 게임이 나왔다는 이야기네요. 그래서 플레이 해 본 소감은 어떤가요?

까는 놈: 응. 멀미가 났어.
편드는 놈: ...토할 만큼 재미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까.
까는 놈: 무슨 소리야!; 그냥 어지러워서 멀미가 났다는 소리구만!;; 왜 이렇게 삐딱하게 해석을 해. 원래 3D 멀미가 있는 데다가, 한동안 FPS 장르를 멀리 했더니 적응이 안 되더라.
편드는 놈: 그건 게임에 대한 소감이 아니라, '내가 나이를 먹고 있구나'라는 느낌의 술회 같은데요.

까는 놈: FPS를 몇 년간 제대로 안 해서 적응이 안 된 것도 있지만, 게임의 진행 양상이 여타 FPS와 많이 달라서 더 그런 느낌도 있어. 게임이 상당히 입체적으로 진행이 되거든. 기본적으로 모든 캐릭터가 2단 점프를 할 수 있고, 벽을 타고 달릴 수 있어. 좌우 움직임이 중시되던 기존 FPS 비해 상하 움직임까지 강조된 이 작품은 대단히 입체적으로 공간을 활용할 수 있어.

편드는 놈: 그런 화려한 움직임을 간단한 조작으로 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네요. 숙련도에 따라 효율성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조작이 쉬우니 누구나 화려한 움직임을 시도는 해 볼 수 있으니까요.

까는 놈: 그렇지. 숙련된 사람들은 벽 타고 달려가서 상대방 타이탄에 올라타고 타이탄을 공격하기도 하더라. 그런 장면 보고 있으면 '이 게임 이름이 '과학닌자대: 타이탄폴'이었나' 싶은 생각과 '이 사람들… 칼만 안 들었지 닌자구나'하는 생각도 들더라.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게임의 난이도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해. 특히 밀리터리 FPS에 익숙한 이들은 당황할 수도 있어. 기존에는 조준점을 좌우로 움직이는 것에 집중하면 됐는데, 이제는 상하좌우, 대각선으로도 움직여서 겨냥을 해야 하거든. 근거리에서 이단점프로 날아다니는 적을 만나면 모기 잡는 거 같아. 잡았다 싶으면 시야에서 사라지거든 -_-

타이탄폴 스크린샷
타이탄폴 스크린샷

말리는 놈: 타이탄을 타게 되면 느낌이 제법 다를 거 같은데요. 그 커다란 이족보행 병기가 날듯이 움직이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되거든요.

편드는 놈: 상당히 묵직해요. 타이탄, 그러니까 로봇이라 하면 기대하는 육중한 느낌도 잘 살아 있구요. 타이탄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용도도 다르고 특징도 다릅니다. 무기나 병기를 장착할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요소도 도입되어 있어서 나름대로 자신의 입맛에 맞게 타이탄을 만들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스트라이더를 좋아합니다. 기동성이 좋아서 빠르게 움직이면서 40mm 캐논으로 타이탄과 보병을 모두 견제할 수 있거든요.

까는 놈: 커스터마이징 요소가 좀 부족하지 않아?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단위는 나름 여럿으로 나눴는데, 막상 거기에 가져올 파츠가 다양하지가 않아. 이건 굳이 타이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야. 무기 종류도 부족한 편이고. 더군다나 무기 성능이 한 쪽으로 편중된 편이라, 쓰임새도 한정된 것 같아. DLC 출시를 통해 무기를 추가할 생각인가? 근 몇 년간 FPS 장르에 커스터마이징 요소가 적극적으로 도입된 덕분에,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게이머들의 안목이 꽤 높아졌거든. 아쉬울 수 밖에 없지.

좀 더 다양하게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으면, 더 박력있지 않을까? 원거리가 아니라 근거리에서 더 위력을 발휘하는 타이탄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거든. 거대한 존재가 서로 치고 받는 게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지난 여름에 퍼시픽림이 증명했잖아.

편드는 놈: 타이탄의 등장은 게임 구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맵이 제법 큰 것도 타이탄이 등장하기 때문인 것 같죠?
까는 놈: 그 커다란 녀석들이 최대 12대까지 날뛰려면 그만한 공간을 확보해줘야 하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하지만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게이머 12명이 6명씩 편을 이뤄서 대전을 하는 게임이야. 타이탄을 날뛸 공간을 확보하자니 병사가 이동해야 할 동선이 너무 길어지는 문제가 생겨.

편드는 놈: 그런 점에서는 맵 디자인이 상당히 잘 됐어요. 건물과 공터의 비율이 적절한 데다가, 타이탄이 진입할 수 있는 구조물도 중간중간 구비가 됐거든요. 타이탄이 교전을 벌이는 지역과 병사가 교전을 벌이는 지역이 나뉘어졌다면, ‘병사와 거대 병기가 함께 전투를 펼친다’는 이 게임의 콘셉트가 희석될 수도 있었는데, 이 덕에 이 두 존재가 서로 어우러져서 서로를 견제할 수 있게 됐죠.

타이탄폴 스크린샷
타이탄폴 스크린샷

말리는 놈: 맵의 크기는 생각보다 크지 않은데, 2단 점프로 건물의 높은 곳까지 이동할 수 있는 덕에 맵의 밀도가 상당히 높다는 느낌이야. 쓸데없이 낭비되는 공간이 없이 맵의 곳곳을 누빌 수 있어서 맵 설계가 제법 견고하지. 밀도가 높은 느낌이랄까?

까는 놈: 그래도 기본적으로 6:6 대전이다보니 거대 병기가 등장하는 게임치고는 스케일이 작다고 느껴질 수 있지.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A.I. 병사를 대거 등장시켜서, 전장의 박력을 높이려고 한 것 같아.

그런데 이게 양날의 검이라고 느껴져. A.I. 병사의 인공지능이 너무 떨어지거든. 걸어다니는 터렛 수준? 진삼국무쌍에 나오는 졸병들이 총을 들고 다니면 딱 이럴 것 같아. 그냥 머릿수만 채우고 있달까? 물론 초보자들에게는 일용할 양식이 되기는 하지만, FPS 조금만 익숙한 이들에게는 교전과 교전 사이의 긴장감을 떨어트리는 영향을 줄 수도 있어.
기술력이 아직은 부족하기 때문에 6:6 대전을 채택했고, 여기서 올 수 있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A.I.를 넣었지만 그럼에도 휑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인공지능이 멍청하기 때문이야.

편드는 놈: 멀티플레이 모드만 갖추고 있는 게임이고, 멀티플레이에만 집중하고 있는 게임이니 싱글콘텐츠에 활용될 수 있는 요소들의 완성도를 낮춘 것은 아닐까요? A.I. 병사도 싱글플레이에서나 활용이 될 녀석들인데 멀티플레이 게임으로 끌어들였으니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까는 놈: 그렇지. 타이탄폴이 멀티플레이만 지원하는 게임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런 것도 이해는 가. 더군다나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개발팀 규모는 60명 남짓이라고 하니… 그 인원으로 이 정도 퀄리티의 게임을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하지만 적은 인원이 퀄리티에 집중한 탓인지, 게임의 볼륨이 전체적으로 부족해. 전투의 박력, 맵의 크기와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야. 순수하게 콘텐츠의 수가 부족한 느낌이라는 이야기지.

아까 말한 것처럼 커스터마이징 파츠가 부족하고, 맵의 수도 많지는 않아. 또 네가 말한 것처럼 멀티플레이에 집중한 게임이라면, 멀티플레이를 지원할 수 있는 부가적인 기능도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그런 점도 부족해.
말리는 놈: 클랜을 만들 수 없다는 불만도 많아요. 사실 FPS를 즐기는 이들은 함께 팀을 이루고 팀원과 소통하면서 전략적인 움직임을 벌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클랜전이 유난히 활성화 된 장르이기도 하구요.

클랜이나 길드를 만들 수도 없고, 점수를 기반으로 한 팀 밸런스 기능도 제대로 구동하는지 의문이야. 저레벨 게이머가 잔뜩 몰린 팀과 고레벨 게이머가 잔뜩 몰린 팀이 매칭되는 경우가 제법 많거든. 싱글플레이를 포기하고 멀티플레이만 지원할 생각이었으면 멀티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틀’은 확실히 만들어 놓고 개발을 했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어.

편드는 놈: 이런 상황이라면 클랜전을 하기 어렵기는 하겠네요.
까는 놈: 난 애초에 싱글 플레이가 없다는 것도 불만이야. 개발사 측에서는 오랜 시간을 들여 싱글 플레이를 만들어봐야 대중은 꼴랑 몇 시간 하고 난 후에 신경도 안 쓴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럼에도 이런 싱글플레이에서 가치를 찾는 게이머는 대단히 많거든.

개발자들이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둘 것인가를 선택하는 건 자유지만, 게이머들에게 선택권 자체를 주지 않은 것은 아쉬워. 이 게임이 세계관이 어설프거나 그랬으면 '순수하게 멀티플레이 대전에만 집중했구나' 하겠는데, 그런 것 치고는 세계관도 잘 잡혀 있거든. 이런 걸 활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랄까? 이미 게임이 출시가 됐으니 돌이킬 수 없지만 말야.

타이탄폴 스크린샷
타이탄폴 스크린샷

<타이탄폴은?>
기존에도 탈것에 탑승해서 교전을 벌이는 게임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타이탄폴은 로봇(타이탄)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노렸다. 단순히 콘셉트의 차이가 아니라 이를 게이머들에게 접근시키는 방법에서도 차이를 보이는 것이 타이탄폴의 특징. 기존 FPS에서 탈것이라 하면 그를 조작하기 위해 연습을 따로 거쳐야 할 정도로 각 탈것의 조작이 까다로운 경우가 많았지만, 타이탄폴은 보병을 조작하던 그 느낌 그대로 타이탄을 조작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덕분에, 게임을 즐기다보면 너도나도 타이탄을 소환해 앞뒤 안 재고 여기 올라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형 병기'가 과학적으로 쓸모가 없다는 과학적 분석에 입각한 우스갯소리가 많지만, 적어도 게임에서 '인간형 병기'는 게임의 박력을 올리고 진입 허들은 낮출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타이탄폴을 통해 입증됐다고 할 수 있겠다.

게임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