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앙코르? 신 로로나의 아틀리에

2011년 7월. 메루루의 아틀리에를 마치면서 세 작품으로 즐겁게 해준 알란드 연작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2013년 3월. PS VITA용 메루루의 아틀리에 PLUS(국내 미발매)를 붙잡으면서 “재탕이면 어떠하랴 재미있기만 한걸”이러면서 불평불만 없이 즐겼다(고난이도 던전과 패치 전 진도 막혔던 게 귀찮았지만). 그러더니 2013년 8월 신 로로나 발표가 떴다. 알란드 연작의 첫 번째이다 PS3용 첫 번째 아틀리에 시리즈 작품인 로로나의 아틀리에~알란드의 연금술사(이하 로로나)를 PS3/PS VITA용으로 리메이크해서 신 로로나의 아틀리에 시작의 이야기~알란드의 연금술사(이하 신 로로나)란 이름으로 팔겠단 내용이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땐 역시나 코에이테크모구나 싶었다. 상품성이 있다면 몇 번이고 써먹는다! 언제나의 코에이테크모아니던가. 로로나 후속작 토토리의 아틀리에를 PS VITA용으로 이식하면서 옛날 마리의 아틀리에와 리리의 아틀리에에 붙었던 추가이식용 PLUS 딱지를 부활시킨 이상 토토리, 메루루 다음 로로나의 차례는 시간 문제였다. PLUS가 아닌 리메이크가 의외였을 뿐.

신 로로나의 아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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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로로나의 아틀리에 스크린샷

그래서 어땠느냐면. 환호했다. 환영했다가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부끄러울 정도로 날뛴 것 같다. 과거 PS2시절 리리의 아틀리에, 리리의 아틀리에 PLUS, 리리의 아틀리에 PLUS 리미티드 에디션 이렇게 1작품 3번 발매란 거사를 터트린 적이 있긴 하나 동기종 리메이크 발매는 전대미문. 아니, PS3용 라인업 전체에서도 손에 꼽는 이례적인 일이다. 한편으론 수긍할 법도 한데 시리즈 생명연장의 꿈을 이룬 기념비 작품인 만큼 그 공로는 폄하할 수 없으나, 이면에는 불편한 시스템, 번거로운 플레이 패턴, 일러스트랑 따로 노는 부실한 3D 모델링, 끔직한 버그들 등 불명예가 공존하는 작품이 바로 로로나였다. 어떤 의미론 흑역사에 가까울 터. 그러던 차에 명예 회복의 길이 열렸으니 시리즈의 경사요, 동시에 이례적 특별대우를 받는 로로나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신 로로나의 아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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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신 로로나는 과연 어떠한가. 우선 리메이크 전과 비교해보면 플레이 패턴은......똑같다. 달라진 게 없다. 주인공 로로나가 폐업 위기의 아틀리에를 맡아 3년 동안 12번의 국가 필수 의뢰를 연금술 조합의 힘으로 통과하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자 엔딩의 필수 조건인 것도. 이것이 혼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때로는 동료의 도움으로, 때로는 스승의 인도 하에, 때로는 스스로의 역량 강화로 시련을 해쳐가는 것도. 그런 인연들 속에서 피어나는 희노애락 스토리가 게임의 즐거움인 것도. 전부 똑같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로로나를 플레이 했던 게이머가 게임을 진행하면서 알아차릴 내용이고 시작부터 한동안은 리메이크의 핵심인 그래픽과 시스템의 대대적 개편 덕분에 플레이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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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저 캐릭터 모델링을 보라. 5등신, 6등신이다. 토토리 이후로 2D 일러스트와 흡사하게 구현한 이른바 2.5D 모델링에 비하면 모자란 감이 없진 않으나 3등신 난쟁이 체형 탓에 이펙트와 연출로는 무마할 수 없었던 로로나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 모델링 교체와 더불어 모든 전투 참가 캐릭터들의 필살기를 새로 만들었고 PLUS 쪽에서 주인공의 전유물이던 코스튬 변경이 주인공 로로나+일부 파티 동료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 2013년 한 해 동안 PS VITA 이식작 발매와 시리즈 최신작 발매에 신 로로나까지 발매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개발 일정을 생각하면 할 만큼 한 거다.

물론 냉정하게 따지면 몬스터 모델링은 로로나 때의 그것을 그대로 쓰고(이건 후속작에서도 이어지는 재탕이지만), 시리즈의 다른 몬스터 모델링 차용, 색깔 바꾸기가 대부분이고 필드맵도 추가 던전이나(이마저 마키나 영역은 메루루PLUS와 똑같다) 잊혀진 백성들의 도시처럼 맵 구조가 바뀐 일부 필드를 제외하곤 변화가 없어서 리메이크라고 부르기 멋쩍을 정도긴 하다. 아군 캐릭터 쪽도 빈말로 모션 재탕이 적다 하긴 어렵고. 그러나 아틀리에 시리즈가, 그것도 알란드 연작처럼 이벤트 진행 중 상당 부분을 2D 일러스트에 할애하는 경우에는 3D 그래픽이 모자란다고 플레이에 지대한 차질을 주는 것도 아니니 제작진 입장에선 최대한 타협한 결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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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시스템은 반대로 타협한 흔적이 거의 없다. 알란드 연작의 시스템을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메루루의 아틀리에와 시리즈 최신작 에스카&로지의 아틀리에의 노하우를 총동원하였다. 먼저 거점 안 시스템부터 보면 일단 게이머가 찾는 재료로 바라는 효과를 가진 아이템을 눈으로 보고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연금술 조합으로 아이템을 만들어가며 진행하는 RPG라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로로나 때는 이게 힘들었다는 거. 이때는 귀엽고, 냄새나고, 멋진, 이렇게 뭔 소리인지 모르면서 혼자서는 아무 효과가 없는 아이템 특성들이 쏟아지고 가뜩이나 999칸뿐인 좁은 컨테이너에서 조합 소재 찾기는 또 얼마나 불편한지 제대로 만든 검색 필터가 없어서 매번 수작업으로 플레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로로나가 직관적인 특성 제공과 조합 지원, 1999칸의 대용량 창고, 필요한 옵션 다 있는 필터 기능 등 후속작들의 개선점을 끌어온 신 로로나로 거듭나 저주에 걸렸던 공주가 겨우 제 모습을 찾은 느낌이다.

그밖에 유용한 아이템 획득에 필요한 교환권 입수 방법이 프론트 퀘스트 달성 후 룰렛 돌리기에서 왕국 일반 의뢰를 달성하는 것으로 변경되거나 왕국 일반 의뢰들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동시에 빙고 완성에 따른 보상 제시, 숏컷에 위치별 이벤트 발생 여부 표기, 장식이란 명목으로 각종 활동의 효율을 높여주는 탐색도구 지원, 조건 충족 후 엔딩 선택 가능 등의 변화도 좋게 말하면 탁월한 선택이요, 나쁘게 말하면 돌려쓰기이지만 어쨌든 정답이고 작품이 멀쩡해져 좋지 아니한가. 추가된 텃밭 재배를 통한 아이템 특성 양산, 메시지 로그 지원, 이벤트 전체 스킵 기능은 신 로로나에만 있는 거고.

신 로로나의 아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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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점 밖, 전투 시스템도 사정은 비슷하다. 후속작들의 장점들을 모조리 끌어다 썼으며 로로나 시절의 전투 시스템과 비교했을 때 리메이크 값을 톡톡히 한다. 여기서 로로나 시절의 전투 양상을 안 적을 수가 없는데 첫째 폭탄, 둘째 폭탄, 셋째 폭탄, 오로지 폭탄만이 진리이자 절대자였다. 특히 패치 전 로로나를 플레이했던 게이머들 사이에선 특성 잘 붙인 테라플럼 하나로 세계를 평정한 희대의 폭탄마 전설로 명성이 자자했고. 여기에 기껏 장비를 잘 만들어도 다음 회차에 연계가 불가능했으며 동료의 도움 시스템은 약하지, 상황 속성은 캐릭터를 쓰기 어렵게 하고 전투를 귀찮게만 만들어서 애물단지니 전투가 메인이 아닌 RPG이긴 해도 함량 미달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오죽하면 테라플럼 최강전설로 난이도 조절을 대신한 건가 싶을 정도.

신 로로나의 아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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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것이 상황 속성 삭제, 테라플럼 약체화, 장비 특성의 밸런스 조정, 행동 순서를 알려주는 타임카드 추가, 어시스트 게이지 통합, 연속 어시스트 공격 대폭 강화 등에 힘입어 본편 기준으로 로로나 때의 난이도를 유지하면서 전투의 다양성, 재미를 크게 확대시키는데 성공했다. 신 로로나라고 아주 획기적인 난이도 조정에 성공한 건 아니라 본편 기준 교환권과 이벤트로 획득한 장비만 잘 이용하면 아이템 소모를 줄이면서 어시스트와 스킬만으로 몬스터들을 때려잡는 풍경이 나오긴 하는데 초중반에는 공격 아이템 조합 연구와 함께 사용 방법에 따른 선택지가, 후반에 들어서면 사용 장비와 아이템의 궁합을 고려한 전투 운영이 필요하므로 난이도 낮은 RPG의 전투를 즐기기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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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연금술로 아이템을 조합하고 이벤트를 영유하며 필드맵에서는 아이템 채집과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는데 불편한, 불필요한 것들을 전부 해치운 것이 신 로로나의 핵심이다. 다만, 이렇게만 정리하기에는 아쉬운게, 앞서 적었듯이 플레이 패턴이 달라지지 않은게 걸린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아이템 조합, 이벤트 UI, 몬스터와 전투 등의 플레이는 시리즈 전반에 걸친 공통점은 개선했으나 이벤트&엔딩 등장 조건은 물론이요, 필드에서 선택한 출구 위치에 따라 개방 지역이 나뉘는 분기, 특수 아이템을 써야만 진행 가능하거나 입장 가능한 필드 존재, 귀환 아이템의 1회용, 특수 조건 및 기간한정으로만 나타나는 던전이나 상점, 이벤트 등 알란드 연작 중 로로나에서만 존재했던 것들은 방치했다는 이야기다.

토토리 이후 후속작들이 계승하지 않은, 명백한 실패 사례들을 왜 굳이 방치했는지 게이머 입장에선 알 길이 없으나 덕분에 신 로로나만 플레이해도 과거 로로나를 플레이 한 게이머들과 경험 공유라고 해야 하나 세대 공감은 가능해졌다. 프리징 발생 빈도나 편의성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선 사항이나 공략 메모는 대동소이한지라. 명색에 리메이크인데 쓸데없이 재현 정도가 높다.

신 로로나의 아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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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안 좋은 의미의 원작 재현이 개선점과 충돌하기까지 한다. 2년째 1월~6월 중의 일정 관리가 대표적인 예. 2년째 1월 시작 직후 완벽한 타이밍으로 카타콘베로 이동한 후 미리 숙지한 공략 지침에 따라 캐릭터 이벤트 발생과 조건 성립에 힘쓰지 않으면 6번째 일반 의뢰인 메테올 3회 사용이 불가능하며 이후 일정들이 계속 밀려서 의뢰 달성과 이벤트 진행 난이도 상승으로 적잖은 불편을 준다. 더군다나 이 시기에는 여러 캐릭터들의 기간 한정 및 특수 조건 이벤트가 여럿 포진해 있어 일정이 잘못 밀리면 아예 해당 캐릭터의 이벤트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이러다보니 신 로로나를 하면서 리메이크에 잔뜩 기대를 품다가 짜게 식어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로로나가 비명 지르면서 옷 벗는 이벤트에 다시 웃으면서 완주하고 보니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으니. 신 로로나는 리메이크 작품이 아니라 앙코르 작품이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리메이크가 어려우니 시리즈를 일으킨 로로나를 최대한 존중하는 차원에서 시스템과 그래픽을 대대적으로 개선하여 진입 장벽은 낮추고 게임 내용은 장점, 단점 안 가리고 전부 재현한 것이다. 게이머가 로로나를 플레이하든 신 로로나를 플레이하든 똑같은 알란드의 상징 로로나로 기억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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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종료 후 시작할 수 있는 1년 동안의 연장전을 플레이하면서 결론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 연장전은 후속작의 주인공 토토리, 메루루가 신 로로나의 엔딩 직후 시점으로 시간여행을 겪어 로로나가 이들을 돌려보내기 위한 일종의 외전인데 당면 과제는 특정 아이템 조합과 조합 재료를 얻기 위한 던전 돌파이나 왕국 필수 의뢰가 없고(고난이도 일반 의뢰와 도장 빙고는 있다) 1년 동안 목표를 달성하지 못 한해도 그대로 엔딩까지 진행되며 회차 전승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 사실상 자유시간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연장전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연장전에서만 등장하는 강력한 아이템 특성을 활용하여 최강 장비를 맞추고 마키나 영역과 심연의 고탑이란 고난이도 던전을 돌파하는 트로피 회수 및 파고들기 진행. 다른 하나는 본편 진행에 따라 발생하는 후일담의 감상이다.

이 중 전자는 한 번의 연장전 진행만으로 달성하기란 쉽지 않은 장기 계획이기 때문에 게이머는 던전 공략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후일담을 감상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후일담들이 대부분 타임패러독스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선에서 후속작들에 대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것. 연장전에서만 볼 수 있는 이벤트들은 하나 같이 신 로로나로 입문한 게이머들에게 로로나 후속작들에 대한 복선을 알려주고 시리즈 팬에게 미싱 링크와 시리즈를 회상할 계기를 선사한다. 이 같은 시리즈에 대한 헌정은 연장전을 본편에서 부족했던 자유 시간 확보나 파고들기 목적으로 여겼다면 나타나지 않았을 터. 본편의 특징과 함께 신 로로나가 아틀리에 시리즈와 알란드 연작에 있어 어떤 작품으로 남기고 싶었는지 분명하게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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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커튼콜을 보내고 앙코르로 화답 받았다” 신 로로나를 마치며 가장 먼저 적고 싶었던 한 마디이다. 이것을 나름대로 기세 좋게 써내려가고 궁리해가면서 정리했는데 어디까지 닿았을는지. 아틀리에 시리즈는 PS VITA용으로 이식한 황혼 연작의 첫 번째 작품 아샤의 아틀리에 PLUS,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송 예정인 에스카&로지의 아틀리에, 조만간 정보를 공개할 시리즈 최신작 등 계속 나아가고 있지만 장담하건데 알란드 연작의 성공 없이는 여기까지 오지 못 했다. 이런 알란드 연작을 PS3 입문부터 함께 하여 세 작품 모두 지면에 다루는 행운과 영광을 등에 업고 마무리하게 되니 기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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