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히스토리] 세계 3대 롤플레잉 게임을 아십니까?
하나의 분야에서 최고를 나열하는 이른바 세계 최고 비교는 시대를 넘나들며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HOT 이슈' 거리 중 하나다.
'세계 3대 미녀', '세계 7대 미스터리', '세계 10대 자연경관', '세계 3대 판타지', '세계 4대 성인' 등 인물, 문학, 역사, 사물 심지어 자연경관에 이르기까지 그 분야와 종목을 일일이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세계 최고 논란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기준을 정하느냐에 따라 대상이 달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무의미한 논쟁'이라는 핀잔을 받기도 하지만 한 가지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가리는 논란은 아직도 사람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현재 진행형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낳는 중이다.
이는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위에서 언급한 사례에 비해 다소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격동의 90년대에 게임을 즐긴 게이머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울티마, 위저드리, 마이트앤매직으로 이어지는 '세계 3대 롤플레잉'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비록 지금에야 게임업계의 '고대어'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 3대 롤플레잉은 하나 같이 RPG의 기틀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게임들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들 게임의 잇따른 후속작들이 속속 공개되며 다시금 게이머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
때문에 이번 히스토리에서는 이들 '세계 3대 롤플레잉'을 하나하나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다.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거대한 저택에 주춧돌이 된 게임 울티마]
1981년 처음 세상에 등장한 울티마는 '로드 브리티쉬' 리차드개리엇이 개발한 RPG다. 1974년 등장한 보드게임 던전앤드래곤(이하 D&D)의 열혈팬이었던 19살 청년 리차드개리엇은 D&D를 컴퓨터로 즐기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고 컴퓨터 롤플레잉게임(CRPG)의 기틀을 다진 '아칼라베스'를 개발한 이후 영국 신화에서 많은 부분을 참조한 방대한 세계관과 더욱 진화된 게임 시스템을 연구한 결과 울티마를 제작하게 되었다.
영국의 한 청년이 다른 차원의 세계 브리타니아로 넘어가 '아바타'라 불리며 모험을 다룬 울티마는 1~3편까지의 '암흑의 시대', 4~6편까지의 '계몽의 시대' 7~9편까지 아마게돈 시대 등 총 3개의 시리즈로 나뉘어 출시돼 자그마치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게이머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울티마가 RPG 장르에 미친 영향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울티마 시리즈의 서막을 연 울티마1의 경우 독자적인 스토리라인과 함께 단순히 하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게이머의 취향에 따라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요소가 도입되어 기존 게임과 차별화를 두었다.
이런 모습은 '울티마3'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기존의 게임들이 하나의 캐릭터로 게임을 진행했어야 했던 것과는 달리 여러 캐릭터를 성장시켜 함께 싸울 수 있는 '파티' 시스템을 선보여 기존의 RPG 흐름에 판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아울러 시리즈 사상 가장 걸작으로 꼽히는 '울티마4'는 각 도시별로 등장하는 8대 미덕을 바탕으로 한 '명성시스템'을 도입해 게이머가 어떤 미덕에 맞는 조건에서 적들을 쓰러뜨렸는지를 게임 속에 반영했다. 더욱이 이들 8대 미덕은 모두 울티마의 세계관과 어우러져 등장하기 때문에 세계관과 시스템을 모두 완벽히 이해해야만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스토리를 따라가고 전투를 즐기는 것을 넘어 게임 속의 도덕적 철학과 윤리를 완벽히 이해해야만 게임을 완료할 수 있는 심오한 게임으로 게이머들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던져준 셈이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흥미진진해지는 스토리라인 역시 게이머들의 몰입도를 높이기 충분했다. 악의 마법사와 그의 부하들과의 전투를 다룬 1~3편과 악의 마법사와의 전투로 인해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완벽한 미덕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아바타의 모험을 다룬 4~6편, 그리고 절대 악을 상대하기 위한 마지막 전투를 다룬 7~9편까지 하나의 시리즈에서 벌어진 일이 다음 시리즈에 영향을 미치는 다차원적인 스토리라인을 통해 게임의 흥미를 높이기도 했다.
비록 1996년 '명작의 횡포'라 불리는 '울티마9: 승천'으로 그다지 좋게 끝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울티마9은 본 기자가 처음 구매한 윈도우 게임이기도 했는데 엄청난 고 사양을 요구하는 게임 사양과 수 많은 버그로 인해 당시 최신형 컴퓨터를 구매한지 1개월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게임이 버벅대는 사태를 겪으며, 엔딩을 보지 못해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MMORPG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1997년 등장한 '울티마 온라인'은 혼자 만의 세계라는 개념을 넘어 멀티플레이를 통해 보다 넓은 세상에서 게이머들이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것은 물론, 게이머들의 손으로 세계를 창조하고 다양한 직업, 스킬, 사냥 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등 지금의 온라인게임 특히 MMORPG의 기틀은 잡은 게임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특히, 이러한 울티마 시리즈의 세계관 확장은 이후 온라인게임에도 큰 영향을 미쳐, 에버퀘스트, 에이지오브카멜롯, 리니지 등의 MMORPG에 기틀이 되기도 했으며, 인터넷 환경에서 구현할 수 있는 결제 시스템인 패키지 상품의 판매와 월 정액 이용권을 판매하는 등 지금의 온라인 게임의 상품화에 모델을 제시한 게임이기도 했다.
리차드 게리엇의 이후 행보도 유명한데, 엔씨소프트에서 개발자로 근무한 뒤 희대의 온라인게임 '타뷸라라사'를 개발하기도 했으며, 이후 엔씨소프트와의 법적 분쟁에서 승소하여 보상금으로 우주여행을 다니는 등 국내 게이머들에게 '우주 먹튀'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킥스타터를 통해 '쉬라우드 오브 아바타'의 개발을 전하기도 했으며, 킥스타터 모금 1천억 원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우는 등 아직도 식지 않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는 중이다.
[시작은 미국이었으나 일본 RPG의 대부가 되어 버린 게임 위저드리]
1981년 처음 모습을 드러낸 위저드리는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롤플레잉 게임이다. 당시 학생의 신분이었던 앤드류 그린버그 와 로버트 우드 헤드가 개발한 위저드리는 D&D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독자적인 세계관으로 이를 풀어낸 것은 물론, 드래곤퀘스트, 파이널판타지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RPG에 큰 영향을 미친 게임으로 유명하다.
당시 서양 롤플레잉 게임들 대다수가 그랬듯이 위저드리는 D&D의 요소를 컴퓨터로 구현한 CRPG의 형식으로 등장했는데, 상대에게 주는 대미지와 방어도를 육각면체 주사위로 정하는 '내성 굴림'이 등장한 것은 물론, 사망 시 교회에서 부활하는 시스템과 전사, 도적, 마법사 등의 파티가 1인칭 시점으로 등장하는 등의 독창적인 게임 콘텐츠를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사망 시 특정 장소에서 부활하는 시스템이나 파티별로 특성이 다른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RPG 임에도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게임 플레이는 이후 드래곤퀘스트, 파이널판타지, 여신전생 시리즈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위저드리가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던전 시스템인데, 치밀하게 구성된 던전에 숨겨진 함정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몬스터, 어떤 캐릭터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난이도와 다양한 보상 등 지금의 던전 플레이의 기초를 세운 게임이었다. 더욱이 시리즈를 거듭함에 따라 직업 시스템과 던전 시스템, 그리고 세계관이 점점 확장되어 80년대 중반까지 다른 RPG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인기를 얻기도 했다.
특히, 일본에서의 영향력이 여느 게임보다 커서 드래곤퀘스트1은 위저드리의 전투 시스템과 완전 동일한 모습이었으며, 일본 내 RPG의 상당수가 위저드리의 플레이 스타일을 본따 등장하기도 하는 등 사실상 일본에 RPG를 전수한 게임으로 평가받기도 한 게임이기도 하다.
이 때문이었을까? 이후 위저드리는 다른 서양 RPG와 다른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바로 일본에서의 인기를 토대로 한 시리즈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001년 등장한 시리즈의 정식 후속작인 '위저드리8'을 마지막으로, 시리즈 대부분이 일본에서만 출시되거나 일본 풍의 게임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그 증거다.(게임의 판권이 2006년 이후 일본의 게임회사 아에리아IPM에게 넘어간 것도 한몫했다)
실제로 위저드리 시리즈 곳곳에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콘텐츠가 다수 등장했다. 서양식 엘프가 뛰놀고 주사위 굴림을 굴려 대미지를 정하는 등의 게임 세계에 난대 없이 닌자가 등장한다든가, 사무라이가 핵심 직업으로 등장하는 등 일반적인 서양 RPG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콘텐츠가 등장하기도 했다. 비록 다차원 세계라는 세계관을 통해 닌자와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놨지만, 서양식 세계관에 맞지 않은 분위기 때문에 많은 게이머들에게 반항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위저드리의 MMORPG 버전이 일본에서 출시되기도 했는데, 기존의 위저드리 시리즈와는 완전히 다른 일본풍의 캐릭터들과 빈약한 세계관으로 팬들을 아연실색하게 한 것은 물론, 일본 단독 서비스가 결정되는 등 여러모로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다. 마케팅이 먹히는 하나의 시장에만 집중해 '명작'이라는 칭호를 스스로 내려놓은 사례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RPG 팬들에게는 문명보다 무서운 게임 마이트앤매직]
마이트앤매직은 위에서 소개한 3대 롤플레잉 중 가장 늦은 1986년 등장한 게임이다. 초창기 마이트앤매직은 위저드리의 시스템에 울티마의 세계관을 접목시킨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이후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단순히 이들 게임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보다 독창적인 자신들만의 시스템을 선보여 세계 3대 롤플레잉이라는 타이틀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렸다.
마이트앤매직 시리즈의 가장 독특한 점은 턴제와 리얼타임을 오가는 전투 시스템과 직업 시스템이다. 게이머의 취향과 스타일에 따라 전투를 턴제 혹은 리얼타임으로 진행할 수 있음은 물론, 하나의 직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엄청난 시나리와 콘텐츠를 만날 수 있어 RPG의 향기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게임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하나의 직업은 숙련자, 전문가, 대가로 나뉘는데, 직업 등급을 올리려면 직업 숙련도를 높여야 하는 것은 몰론, 등급을 높여줄 수 있는 '선생' 즉 NPC를 만나야 하는데, 이들 'NPC'는 한 군데에 몰려 있는 것이 아닌 모두 다른 마을에 위치해 있어 일일이 찾아가 기술을 배워야 다음 등급으로 오를 수 있었다. (대가의 경우 위치를 찾기도 힘들뿐더러 특별 퀘스트를 통과해야 승급시켜 주기도 해 난이도가 훨씬 높았다)
심지어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공략집이나 게임 가이드를 구입하지 않는 이상 마을에 등장하는 NPC의 위치를 모두 기록하여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는 오프라인 만남도 흔히 일어날 정도였다.
때문에 엄청난 퀘스트와 이동 거리, 그리고 어마 무시한 직업 시스템까지 제대로 게임을 플레이하여 엔딩을 보기까지 과도할 정도의 많은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어, RPG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시간여행기'라고 불리는 게임으로 불리기도 했다.
마이트앤매직의 전환기를 맞은 시리즈는 바로 6편이다. 당시 마이트앤매직을 제작하던 3DO는 마이트앤매직 시리즈를 턴제 전략시뮬레이션 '히어로즈 마이트앤매직'과 마이트앤매직으로 나누어 출시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 6편에 이르러 이들 게임의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특히, 마이트앤매직6는 국내 최초로 정식 출시된 시리즈이기도 했는데 방대한 텍스트를 감당하지 못해 단어의 뜻과 전혀 무관한 번역을 선보여 '안녕하신가! 힘세고 강한 아침,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왈도'라는 이른바 '왈도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후 연이은 사업 실패에 인해 3DO가 없어지며 유비소프트가 판권을 소유하게 된 마이트앤매직 시리즈는 최근 '마이트앤매직10: 레거시'로 다시 게이머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