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멸종위기 게임장르들
반달가슴곰, 북극곰, 마운틴고릴라, 바바리사자 그리고 시베리아호랑이. 언 듯 보면 자연에서 가장 강력한 맹수들을 나열해 놓은 것 같지만, 이들 동물은 모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지정한 멸종위기 동물들의 목록이다.
이들이 멸종위기 동물에 지정된 것은 급격히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개체 수의 감소, 자연도태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인간에 의한 자연의 무분별한 파괴와 밀렵 때문. 자연의 일부인 인간에 의해 하나의 종(種)의 존폐가 위태로워진 셈이다.
이같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비단 동물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게임 역시 위에서 소개한 동물들처럼 멸종위기에 처한 장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 특히, 그 이유 역시 게임을 즐기는 환경의 급격한 변화, 해당 장르 게임의 출시 감소, 기술의 발전에 의한 도태 등 동물의 멸종위기와 흡사한 모습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그렇다면 점차 장르의 다변화를 겪고 있는 게임 업계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게임 장르는 무엇이 있을까?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지정한 ‘멸종위기등급 표기’를 따라 한번 알아보자.
야생절멸(준멸종상태. 자연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보호구역, 동물원과 같은 보육시설에서 제한적으로 생존)- ‘아케이드 슈팅’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아케이드 슈팅’ 게임기은 동네 오락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임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장의 변화로 오락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1인칭 슈팅게임(FPS)에 대한 게이머들의 선호도가 점차 높아지자 ‘아케이드 슈팅’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비록 일본 등 아케이드 게임이 활성화된 시장에서 신규 게임이 간간이 출시되고는 있지만, 장르 자체의 인기가 감소함에 따라 다른 장르에 비해 신작의 수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아직도 많은 오락실에서 ‘아케이드 슈팅’ 게임들을 볼 수 있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출시된 신작 게임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그 증거다. 장르 자체의 시장 성장성이 거의 사라져 버린 셈이다.
위급(심각한 멸종위기종)- ‘어드벤처’
‘미스트’, ‘그림 판당고’, ‘원숭이섬의 비밀’ 등 수 없이 많은 명작을 배출한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들은 90년대 초 중반 PC게임의 매출을 책임지는 1등 공신이었다. 특히, 여느 소설 못지 않게 잘 짜여진 스토리와 머리를 쥐어짜게 만드는 퍼즐, 조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아이템 시스템 등 지금의 게임들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장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기술의 발전을 통해 하드웨어의 성능이 급격히 높아지자 ‘어드벤처’ 장르는 자신만의 색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바로 RPG, 액션, 레이싱, 스포츠 등 다른 장르에서도 어드벤처의 못지 않은 스토리를 지닌 게임이 속속 등장한 것이다.
이후 저장매체의 발달로 이전까지 담을 수 없었던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담을 수 있게 되자, 뛰어난 그래픽과 스토리 그리고 다양한 콘텐츠로 무장한 게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어드벤처 게임은 점차 게이머들에게 외면 받기 시작했다.
현재 ‘어드벤처’ 장르는 액션, 연예, RPG 등 다른 장르에 흡수된 형태의 게임으로 등장하고 있다. 비록 이들도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으로 분류되기는 하나, 손에 땀을 쥐는 스토리와 문제를 해결을 위해 사전을 뒤져가며 플레이 하던 정통 ‘어드벤처’의 모습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과거 밀리언셀러를 무수히 달성하며 게임의 중심에 있던 ‘어드벤처’는 이제 몇몇 인디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장르로 전락해 버린 상태다.
위기(멸종위기종)- ‘RTS’, ‘리듬액션’
리얼타임시뮬레이션(RTS) 이른바 실시간 전략 장르는 2000년대 초반 유난히 인기 있던 장르 중 하나였다. 바로 국민게임이라고 불렸던 스타크래프트와 많은 마니아들에게 극찬을 받은 워크래프트의 존재 때문. 이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임진록, 삼국지천명, 쥬라기원시전. 아트록스 등 수 많은 게임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르의 인기에 힘입어 차세대 스타, 워크래프트를 표방한 ‘양산형 RTS’ 게임들이 마구 등장하게 되자 게이머들은 점차 RTS 장르에 대한 흥미도를 잃어 갔다. 더욱이 RTS의 전략과 RPG의 성장 등의 요소를 모두 지닌 이른바 ‘도타류’(AOS) 장르가 큰 인기를 얻자 RTS 장르는 몇몇 대작 이외에 찾아보기 힘든 장르로 자연스레 밀려나게 되었다.
‘리듬액션’ 장르 역시 이와 흡사하다. ‘펌프잇업’, ‘DJ MAX’, ‘EZ2AC’ 등 시대를 풍미한 게임들이 다수 등장했던 것도, 여성들의 게임 문화 전파에 큰 역할을 했던 것도 바로 리듬액션 장르의 전성기에 일어났던 일들이었다.
그러나 ‘리듬 액션’ 장르가 안고 있던 큰 약점인 음악의 저작권 문제가 발목을 잡았으며, 수준 이하의 아류작의 범람, 혼자서 즐기는 게임의 한계 등의 다양한 장르적 한계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특히, 소수의 마니아들만이 즐기는 ‘마니악화’가 급격히 진행되어 접근성이 매우 높아져 일반 게이머들이 다가가기 힘들다는 점도 ‘리듬 액션’ 장르가 쇠퇴기를 겪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취약(멸종위기 가능성이 높음)- ‘대전격투’
킹오브파이터즈, 철권, 버추어파이터, 길티기어 등의 다양한 시리즈를 통해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대전격투 장르지만 국내에서는 멸종위기 종으로 분류될 만큼 침체기를 겪고 있다. 오락실의 감소와 PC방 문화의 발달 등에 따라 게이머들에게 대전격투 장르 자체가 낯설어진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높은 진입장벽이다.
대전격투를 즐기려면 게임기와 ‘게임스틱’이 구비되어 있어야 하지만, 이들 기기의 가격은 최소 10만원 이상을 호가할 만큼 가격이 높다. 더욱이 게임의 시리즈 혹은 게임기에 따라 ‘게임스틱’을 따로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게이머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더욱이 몇몇 인기 시리즈의 게임들만이 출시되어 일반 게이머는 기존의 시리즈를 즐기던 마니아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양극화가 심해졌다. 여기에 게임 시리즈 역시 점차 더 어려워 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초보는 살아남을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린 것도 ‘대전 격투’ 게임은 점차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