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박진호 팀장, "천룡팔부는 레벨링 게임이 아닙니다"
90년대 초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활약한 배우 이창훈은 맹구, 달룡이 캐릭터를 연기하며 '바보 연기 스페셜리스트'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러한 이미지는 이창훈에게 엄청난 인기를 안겨주기도 했지만, 정작 그에게는 떼어낼 수 없는 꼬리표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시청자들의 머리 속에 각인된 '바보 이미지'가 너무도 강렬해 다른 역할을 연기하는 데 방해가 된 것이다.
이렇게 꼬리표처럼 따라 붙은 '이미지'를 떨쳐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악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가 계속해서 악역 제의만 들어오는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하는 경우는 미디어를 통해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례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한 번 자리잡은 이미지가 선입견으로 작용해 이미지가 부여된 개체에 대한 평가에도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다. 섹시한 복장과 춤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걸그룹의 가창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대중이 이를 좋게 평가하지 않고 '그래봐야...' 라는 투의 평가가 따라다니는 사례가 대표적인 예시라 하겠다.
흔히들 무협을 소재로 하는 중국산 모바일게임이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동양적인 복색을 한 캐릭터들이 자동전투를 기반으로 계속해서 사냥하고 아이템을 얻고 이를 강화하는 게임말이다. 천룡팔부를 서비스 하고 있는 넥슨의 박진호 팀장은 이러한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천룡팔부의 서비스 이후 가장 인상적인 반응이 ‘중국색을 거둬낸 게임’이라는 평가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게이머들이 천룡팔부의 무협 요소보다는 MMORPG의 장르적 특성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다른 소재와 달리 무협이 게임화 되면 유난히 소재가 부각되는 경향이 있어요. 때문에 천룡팔부는 그런 평가를 받지 않고 MMORPG 장르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색을 거뒀다는 게이머들의 평가가 무척 기억에 남습니다”
천룡팔부가 출시될 무렵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에는 무협을 소재로 한 다양한 모바일게임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흐름을 탔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자칫 무협을 소재로 하는 흔한 게임 중 하나로 폄하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다른 게임과 차별화를 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박 팀장은 차별화를 위한 무리수는 두지 않을 계획이라 말했다.
“경쟁게임과 비교를 통한 마케팅은 지양하려 합니다. 중국에서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는 것도 부각시키고 싶지는 않아요. 중국에서 성공을 한 게임이라 해서 한국에서도 성공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 것 보다는 잘 만들어진 게임을 넥슨이 서비스 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무협을 소재로 하는 게임이 많은 상황에서 천룡팔부가 그 앞에 섰다면 시장선점이나 후광효과를 노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시도로 노릴 수 있는 시장의 크기는 크지 않습니다. 게임에 ‘웰메이드 RPG’라는 느낌을 담아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중국게임이라는 선입견은 씻어내면서, 게이머들에게 믿고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박 팀장은 과금체계에서도 그런 모습을 나타내겠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개발된 게임들이 과금 체계는 허들이 높은 편입니다. 이러한 차이를 줄이려고 노력했어요. 서비스 초기부터 비과금 이벤트를 많이 진행하면서 사람들에게 이런 인식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게임의 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운영을 통해 게이머들의 불편함을 최대한 덜어줄 생각입니다. ‘넥슨은 운영을 잘 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게이머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운영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박 팀장이 운영에 있어 가장 강조한 것은 형평성이었다. 특정 게이머가 부각되지 않는 분위기를 우선 만들어나가고, 그 이후에 점차적으로 다양한 것들을 선보이겠다는 이야기였다.
“특정 인물이 영웅으로 부각이 되고, 이 사람을 중심으로 화제거리가 만들어지는 것이 좋을 수는 있습니다만, 아직 천룡팔부를 즐기는 이들 사이에 커뮤니티 특유의 문화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어요. 이러한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운영진이 게임에 개입해 인위적으로 분위기를 만들지 않을 생각입니다”
최근 공개된 상위 전투력 64인만 참가할 수 있는 PvP 콘텐츠인 화산논검을 선보일 때에도 이러한 점이 고려됐다. 특정 게이머가 강자로 부각이 되면 다른 이들에게 자칫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화산논검은 업데이트가 됐지만 콘텐츠 업데이트 하나에도 이 정도로 신경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최근 모바일게임 시장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이벤트나 마케팅은 계획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또한 매출을 유도하는 이벤트도 없을 것이라고 박 팀장은 못박았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이 게임이 오래 갈 것인가에 대한 점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단기간에 매출을 낼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연말까지 업데이트 할 다양한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차근차근 이를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준비 중입니다. 6주 단위로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2달에 한 번은 업데이트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연내에는 125 레벨 콘텐츠까지 선보일 예정입니다”
게임의 서비스가 먼저 진행된 중국에서는 이번 달에 다섯 번째 업데이트가 진행됐다. 빠르게 중국의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국내 게이머들에게도 선보이겠다는 박팀장은 로컬라이징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중국산 게임들이 시원찮은 로컬라이징 품질로 많은 게이머들에게 질타를 받은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판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자는 문자 하나에 뜻을 함축적으로 담기 쉽지만 한글은 풀어서 설명하는 편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번역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폰트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게임의 세계관에 잘 맞으면서도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폰트를 게임에 적용하고 있어요. 대사량이 워낙 많아 텍스트 분량을 줄일까 생각도 했지만 원작을 살리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습니다”
박 팀장의 말처럼 천룡팔부는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무협이라는 장르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많으며, 소설 자체도 출간된지 제법 오래된 소설이기 때문에 자칫 마니아적인 소재로 비춰질 수도 있는 여지가 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박 팀장은 게이머들이 원작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콘텐츠를 배포할 계획이라 말했다. 원작을 알아야 게임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3분에 보는 천룡팔부’라는 자료를 홈페이지를 통해 배포 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김용의 소설은 인간군상의 모습을 다루는 경우가 많아요. 때문에 자칫 요약을 잘못하면 막장 드라마처럼 비춰질 수 있죠. 조심스럽게 자료를 만들고 있습니다”
게임의 판권을 갖고 있는 창유와의 협업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원활한 업데이트와 순조로운 로컬라이징을 위해서는 게임의 개발사와의 협조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 이러한 부분에서 천룡팔부는 합격점을 받을 수 있다.
“창유에게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창유의 개발자들이 상당히 스마트하고, 기획의도가 명확해서 우리가 제시한 수정방안보다 중국버전을 그대로 적용하는 게 더 적합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많았어요. 현재 메신저나 전화를 통해 하루에도 수십번 이상 연락을 하며 기술과 사업 분야에서 소통 중이에요. 물론 출시가 다가오면서 서로 신경이 예민해져 논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전체적인 과정을 보면 소통은 매우 좋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좋아질 것으로 보이구요”
박 팀장은 중국의 게임사와 협업을 하기 위해 중국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 애썼다고 말했다. 그들을 이해하고 원활한 소통을 하는 것이 게임의 순조로운 서비스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어떻게 일하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일하냐가 중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한국적인 콘텐츠에 대한 논의도 있었어요. 추석 이벤트로 한복을 넣어줄 수 있는가, 여름 휴가철에 맞춰 수영복 아이템을 도입하고 싶다는 제안도 했죠. 확정된 것은 없지만 협의는 진행 중입니다. 게임에 공개하지 않은 펫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게임에 등장은 하는데 이용은 할 수 없는 펫이 있어서 ‘왜 사용할 수 없냐’고 문의를 하니 즉석에서 기획자가 펫을 만들기도 했어요. 이 펫은 중국 서비스 버전에는 없는 펫입니다. 좋은 기화가 있으면 공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박진호 팀장은 최대한 불편함 없이, 원활하게 게이머들이 천룡팔부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천룡팔부가 갖고 있는 특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플레이 방법을 살짝 귀뜸했다.
“이 게임은 45레벨 이후부터 시작되는 게임이라고 창유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전에는 게임의 스토리를 즐기는 단계에요. 사람과 소통하는 김용 소설의 특징처럼 천룡팔부도 길드를 만들고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과 소통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레벨링에만 집중하지 않고 게임 내의 다양한 시스템과 콘텐츠를 플레이하면서 천룡팔부를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기성과에 집중하지 않고 기존 게이머는 꾸준히 즐길 수 있는, 신규 게이머는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게임으게 만들테니 많은 기대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