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선 로마 법을, 같은 게임 다른 모습
지난 8월 27일 일본에서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4용 어드벤처게임 '언틸 던'의 자막 일본어 버전에 대해 일부 일본 게이머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잔인한 연출이 나와야 하는 장면에 검은색 화면만 보이는 편집이 문제였다. 또한, 화면 암전만이 아니라 소리만 들린 채 그대로 게임이 진행돼 게이머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파악하기 어려우며, 게임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특히, 성인용 등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추가 편집이 진행된 점에 대해 일본 게이머들은 분노하고 있다.
이처럼 게임의 그래픽 혹은 연출이 수정되는 사례는 비단 '언틸 던'뿐만이 아니다. 전세계의 지역마다 수용할 수 있는 묘사 수위가 다르고, 엄격하게 판단하는 기준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해당 지역에 게임을 출시하기 위해 현지화 작업을 거치는 과정에서 게임 그래픽이 바뀌는 사례가 빈번하다. 일례로 국산 롤플레잉 온라인게임이 아랍 국가에 맞춘 현지화 작업을 거치면 신, 천사, 창조 등과 관련된 그래픽이 이슬람 종교에 맞게 수정되고, 십자가 같은 타 종교 상징물이 사라진다. 아랍 지역에선 이교도의 흔적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반도의 패권 두고 다툰 삼국시대 배경의 전략 모바일게임 '광개토태왕'도 마찬가지다. 삼국시대에 대한 기반지식이 생소한 해외에선 게임 내 모든 그래픽이 서양의 중세시대풍으로 변경됐다.
물론 게임 개발사 및 유통사 입장에선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해당 지역의 문화 관념에 어긋나지 않는 게임을 출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액션롤플레잉게임 '폴아웃3'의 경우 개발을 마친 상태에서 추가로 현지화 작업을 실시하기 어려워 인도 출시가 불발됐다. 머리가 둘 달린 돌연변이 소가 몬스터가 원인이었다. 인도의 주류 종교인 힌두교에선 소를 신성하게 여겨 소를 함부로 여길 수 없다. 출시 후 전세계 흥행에 성공한 '폴아웃3'조차 현지화의 벽을 피할 수는 없던 것이다.
현지화로 게임 그래픽의 변경 중 유명한 사례로는 롤플레잉 온라인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도 들 수 있다. 지난 2009년 '마수세계'란 이름으로 중국 서비스 중인 '와우'에 일부 그래픽이 바뀌면서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해당 패치 적용 후 '마수세계'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시체는 무덤으로 변했고, 언데드 캐릭터에 살점이 붙어 드러났던 뼈가 사라졌다. 다른 지역의 '와우' 그래픽과는 확연히 달랐다. 뼈, 유혈 표현에 민감한 중국 문화에 맞춰 그래픽을 수정한 결과였다. '와우' 외에도 '던전앤파이터', '리그오브레전드' 등 중국에서 서비스 중인 온라인게임 다수는 기존 데이터에 있던 뼈, 유혈 표현이 빠지거나 다른 묘사로 교체됐다.
서양 게임시장 역시 현지화를 거친 후 게임 내용이 수정되는 사례가 많다. 특히, 독일에 게임을 출시하기 위한 현지화는 독일의 USK(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자율규제 단체)의 엄격한 폭력성 규제를 통과해야 한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과거를 반성해 사회 전반적으로 전쟁, 폭력 묘사를 조심스럽게 다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력적인 묘사가 있는 게임은 현지화 과정에서 대폭 수정되거나 처음부터 출시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와 관련된 표현도 엄격히 금지해 지난 2014년 출시된 FPS게임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도 철십자 문양 등 나치의 상징이 다른 그래픽으로 대체됐다. 게임의 본 내용은 나치를 응징하는 것이지만 독일의 현지화 기준과 맞지 않아 수정을 피할 수 없었다.
한편, 국내에 들어오는 해외 게임의 경우 현지화 작업을 거쳐도 그래픽 부분이 크게 바뀌는 사례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지난 2006년 불법 도박에 따른 사회문제 '바다이야기 사태'가 불거진 이후 사행성 요소와 관련된 게임 시스템을 강력하게 배제하는 관행이 생기면서 관련 그래픽도 같이 사라지는 사례가 늘었다. 한국닌텐도에서 출시한 롤플레잉게임 '포켓몬스터' 시리즈 중 일부 작품이 대표적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