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 히스토리] 저주인가 우연인가? 게임업계 3편 징크스
특정한 상황에서 반복해서 벌어지는 불길한 징후. 이것을 우리는 흔히 '징크스'라 한다. 이 징크스는 정치, 스포츠,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몇몇 유명한 사례들은 '~의 저주' 등으로 불리며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시카고 컵스'는 1908년(한국은 대한제국 순종 2년)부터 무려 100년이 넘도록 우승하지 못하고 있는 '염소의 저주'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며, 1987년 뉴욕증시가 대폭락한 것에서 유래되어 '월요일 주가는 폭락한다'는 '검은 월요일' 등의 징크스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심지어 유럽을 호령한 나폴레옹은 '검은 고양이'를 불길하다며 피하려 했고, 러시아의 부흥을 이끈 표트르 대제는 '다리를 건너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고 하니 징크스는 꽤 오랜 역사를 지닌 이슈거리라고 할 수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역사를 지닌 게임업계도 이러한 징크스를 지니고 있다. 바로 3편으로 출시된 게임은 혹평을 받거나 성적이 매우 저조하다는 '3의 저주'가 그것이다.
'형만한 아우 없다'라는 속담과 일맥상통하는 이 징크스는 8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된 게임업계의 이슈 중 하나였다. 90년대 이후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작품들이 꾸준히 등장하며 이 징크스는 한 동안 사그라들었지만, 2000년대 후반 유비소프트, EA 등 굵직한 대형 게임사들의 속편, 그것도 3편들이 연이어 흥행 참패를 겪거나 혹평을 받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다시 '3편의 저주'가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 SNK의 몰락을 이끈 3편의 저주>
이 징크스의 피해자(?)로 가장 유명했던 곳은 바로 SNK다. 90년대 SNK는 아랑전설, 사무라이쇼다운, 용호의 권, 킹오브파이터즈(이하 KOF) 시리즈 등의 연이은 대성공으로 대전 액션 명가로 등극하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자체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는 '네오지오'/MVS 등의 게임기 역시 덩달아 높은 판매고를 올리면서 90년대 SNK의 위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하지만 3대 프랜차이즈 게임으로 꼽히는 '사무라이쇼다운', '용호의 권', '아랑전설' 등의 작품이 모두 혹평 속에 실패를 겪으며 SNK는 급격하게 몰락하게 된다. 이들 게임들의 실패는 신규 게이머를 유치하기 위해 급하게 이전 작품의 색을 탈피한 것과 발전하지 못한 게임 시스템, 그리고 부족한 게임 콘텐츠 등이 원인으로 꼽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후 '3편의 저주'로 불리는 게임들 역시 동일한 이유로 혹평을 받거나 실패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아랑전설3'와 '사무라이쇼다운3'는 나름의 판매량을 거두며 그나마 선전했지만, 용호의 권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자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용호의 권- 외전'의 실패는 SNK의 재앙과도 같았다. 이 여파로 SNK는 결국 실패를 만회하지 못하고, 2001년 파산신청을 하고 만다. 사실 SNK의 몰락에는 야심 차게 출시한 '하이퍼 네오지오', 휴대용 게임기 '네오지오 포켓'의 실패 그리고 파칭코 업체와의 잘못된 합작 등이 결정적이었지만, 이 모든 사태를 벌어지게 시발점이 바로 '용호의 권-외전'의 실패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대형 게임사도 피해갈 수 없다. EA, 유비소프트, 액티비전이 온몸으로 겪은 3편 징크스>
이 같은 '3편의 저주'는 대형 게임사도 피해갈 수 없었다. 유비소프트의 대작 시리즈 '어쌔신 크리드3'는 호평을 받았던 1편과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2편에 비해 퇴보된 시나리오와 불편한 시스템으로 그야말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3편의 실패를 거울 삼은 유비소프트는 2014년 '역대급' 스케일과 콘텐츠를 선보인 '어쌔신 크리드4: 블랙 플래그'로 이러한 실패를 만회한다.
이미 수 많은 흑역사를 지니고 있는 EA 역시 3편의 저주를 온 몸으로 겪은 회사다. 특히, EA의 3편 징크스는 '둠3'와 같이 게임의 퀄리티는 높으나 역대급 라이벌(하프라이프2) 탓에 저평가 되는 등 외부적인 이유가 아닌 EA 게임 스스로 3편에서 무너졌다는 점에서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메스 이펙트3'는 초중반은 좋았으나 어느 루트로 가도 색깔만 다른 엔딩이 등장하는 충격적인 '삼색 엔딩'으로 오랜 시간 '메스 이펙트'를 즐겨온 게이머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아울러 '우주 3대 공구전사'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호러 FPS 게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데드 스페이스'의 3편 역시 부실한 콘텐츠, 지루한 진행, 이해할 수 없는 시나리오 등 망하는 게임의 3대 조건을 고루 갖추며 총체적 난국 속에 게이머들의 뇌리 속에 잊혀지고 말았다. 뛰어난 결말로 끝난 전작의 후속작이었기에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실망스러운 결과를 안겨준 3편의 대 실패로 인해 '데드스페이스'는 사실상 시리즈의 수명이 끊겨 앞으로 '볼 일 없는 게임'이 된 상황이다.
매년 수 십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액티비전의 FPS 게임의 명작 시리즈 '콜오브듀티'와 외전 격인 작품이나 이미 하나의 시리즈로 자리잡은 '모던워페어' 역시 3편의 징크스를 피해가지 못했다. 콜오브듀티3의 경우 콘솔 버전만으로 출시되어 국내 게이머들에게 그다지 인지도가 높지 않은 작품이지만, 아군 쪽으로 발포하는 듯한 기묘한 포스터 덕에 최근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콜오브듀티3는 2차 대전의 긴박한 순간에 드라마틱한 연출을 더한 이전 작품들의 장점을 그대로 계승했지만, 몇몇 스테이지에서 보여준 치명적인 버그가 논란이 됐으며, 다소 힘빠진 스토리와 발전하지 못한 게임 시스템 역시 게이머들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하며 콜오브듀티 시리즈 중 손에 꼽을 만한 낮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아울러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3’의 경우에도 엄청난 반전과 흡입력 있는 연출을 선보인 전작에 비해 난해한 시나리오로 등장해 큰 혹평을 받았고,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색다른 시스템을 오로지 ‘답습’만 한 게임의 시스템은 개발사인 ‘인피니티 워드’가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게 만들었다.
< 3의 저주 때문? 3편을 찾아볼 수 없는 벨브 게임들>
이러한 징크스 때문인지 하프라이프, 포탈, 팀포트리스 등의 명작 게임 시리즈를 개발한 밸브는 3편을 제작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밸브는 하프라이프, 포탈, 레프트4데드 등의 게임을 통해 수 많은 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3편을 제작하지 않아 많은 게이머들의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으며, 2편에 머물러 있는 게임만해도 온라인게임인 도타2까지 무려 7종에 이른다. 확장팩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게임에 3편이 등장하지 않은 셈.
밸브의 이러한 모습은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게임 플랫폼 ‘스팀’과 휴대용 게임기 ‘Smach Z’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는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2010년 스팀의 대 성공 이후 밸브에서 개발하는 게임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든 상황. 유통 및 플랫폼 제공 서비스에 더 공을 들이고 등 새로운 영역에 주력하고 있다 보니 이 영향으로 게임 개발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 3의 저주는 이미 예견된 참사?>
어쩌면 단순한 미신으로 취급받을 수 도 있는 게임업계의 3편 징크스. 사실 이러한 징크스의 원인을 살펴보면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할 것이 아닌 설득력 있는 이유가 많다.
게임 시리즈는 으레 1편에서 색다른 콘텐츠를 선보이고, 2편에서 이 콘텐츠를 발전시키고 완성 시킨 경 많다. 이 때문에 세 번째로 등장하는 작품은 원작의 방향성을 새롭게 재정립해야 하며, 전작의 시스템에 신선한 콘텐츠를 도입해야 하기 때문에 이전 작품들에 비해 좋은 평가를 듣기가 몇 배는 까다롭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언차티드3’로, 방대한 콘텐츠와 다양한 재미요소로 무장했지만, 게임 역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언차티드2’의 후속작이라는 점에서 전작과 끊임없이 비교되며 평가 절하 당하기도 했다.
물론, 이미 흥행이 보증된 게임 시리즈인 점에서 전작을 그대로 답습하여 단 1%의 발전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여 비난을 받는 사례도 많아 게임업계 3편 징크스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를 지니고 있는 복합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하나의 게임이 시리즈화 되어 등장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난 지금. 3편 징크스가 게임업계에 꾸준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모습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