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 히스토리] 세계 최고의 게임사의 거짓말 같은 몰락 THQ
세계 최대의 게임사를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 피파 시리즈로 대표되며 '프렌차이즈 공장장'이라는 그다지 탐탁지 않은 타이틀을 지니고 있는 일렉트로닉 아츠(EA)부터 매년 콜오브듀티 시리즈로 게이머들에게 FPS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액티비전, 스타와 워크래프트라는 걸출한 명작을 지닌 블리자드 등 다양한 게임사들이 오르내릴 것이다.
이처럼 '세계 최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던 게임사가 불과 1년 만에 파산에 이른다면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한 때 2010년 세계 5대 게임사로 꼽히며 전세계 게이머들에게 다양한 스타일의 게임을 선보였던 THQ가 겪은 일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한창이던 2012년 12월 20일 전세계 게이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소식이 전해졌다. 매년 8억 달러(한화 약 9천 2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던 THQ가 파산 신청을 한 것. 'WWE 스멕다운', '세인츠로우', '컴퍼니오브히어로즈', '홈월드', '다크사이더스', '워해머 던오브워' 시리즈까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수 많은 히트 게임을 소유한 THQ의 파산 신청은 게이머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1989년 설립된 THQ는 'Toy Head Quarters'(장난감 본부 지구)에서 이름이 유래했을 만큼 장난감 제작회사에서 출발한 회사였다. 이내 게임 개발을 주력 사업으로 결정한 THQ는 디즈니와 픽사와 같은 유명 제작사에서 라이선스를 확보해 게임을 개발하는 식으로 성장을 이뤄가기 시작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THQ의 전신이 바로 수 많은 게이머들에게 악명을 떨친 게임사 겸 유통사 'LJN'(노먼 제이 루이스 장난감 회사 / Norman J. Lewis 's Toy company)이었다는 것. 'LJN'은 맡았다 하면 게임을 산산조각내는 것으로 게이머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는데, 'LJN'의 로고인 무지개만 봐도 게임을 외면하고, 치를 떠는 게이머들이 속출했다고 하니 그 악명이 어느정도 였는지 가히 짐작될 정도다.(유명 레트로 게임 동영상 시리즈 'AVGN'(앵그리 비디오 게임 너드)은 LJN 게임들을 리뷰하며 '세상에 존재해선 안될 최악의 쓰레기'라는 비난을 서슴치 않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게임 시장에 뛰어든 THQ는 당시 축구와 야구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던 프로레슬링의 판권을 획득하여 'WWE 시리즈'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RTS 장르의 명작 '컴퍼니오브히어로즈', 혁신적인 액션으로 주목 받은 '레드 플래닛', 막장 GTA로 잘 알려진 독특한 오픈월드 게임 '세인츠로우'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선보이며 전세계 15개 이상의 게임 스튜디오를 지닌 거대 게임사로 성장해 나갔다. 특히, 지난 2002년 12월 THQ 코리아를 설립하면서 국내 게이머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아울러 '워해머40K 던오브워'의 소설 판권을 획득하며 제작한 '워해머40K: 던오브워' 시리즈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새로운 프렌차이즈로 자리잡기도 했으며, 아동용 게임 사업 역시 활발히 진행하는 등 THQ는 그야말로 '돈을 찍어내는' 회사로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도 커져 버린 기업의 고질병인 기업병이 회사 전체를 강타하며 점차 내부 분위기가 경직되기 시작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게임시장에 제조업+유통 개발사라는 특징을 가진 THQ는 이에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없었던 것. 더욱이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개발된 게임들의 수익이 저조해지면서 서서히 THQ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디즈니, 픽사 등 엄청난 라이선스 비용을 제공해야 하는 게임이 대다수였던 THQ의 특성상 많은 판매를 기록해야 했지만 이들 게임의 수익이 점차 감소하면서 매출은 높지만 이득이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야심 차게 판매한 게임 콘트롤러 'uDraw'의 실패는 THQ의 운명에 결정적인 펀치를 날린 사건이었다. 2010년 판매를 시작한 'uDraw'는 PS3, Xbox 360, 닌텐도 Wii 등 무려 3개의 게임기에 호환되는 것은 물론, 그림을 그리는 테블릿과 게임 조작을 동시에 지원하는 게임 컨트롤러였다. 아동과 저학년 게이머를 타겟으로 한 것이 분명한 이 기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닌텐도 Wii 용으로 무려 100만 대가 팔려 나가며 THQ의 고위진들을 고무시켰고, 곧바로 PS3, Xbox360 버전의 출시를 이어가게 만들었다.
그러나 성인 게이머들이 대다수였던 PS3와 Xbox360에서 아동용으로 만든 컨트롤러에 관심을 보이는 이는 거의 없었고, 'uDraw' 전용 게임이 3개 게임기 합쳐 10개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로 다가왔다. 전용 게임을 개발해야만 진가를 발휘하던 'uDraw'를 게임 개발사들이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에 'uDraw'는 무려 140만대의 재고가 쌓이며 THQ의 재앙으로 다가왔고, 결국 판매를 중지하며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실패로 기록됐다.
아무리 한 해에 8억 달러(한화 9,240억 원) 이상의 수익을 거두던 THQ도 이러한 손해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투자 실패와 연이은 게임들의 수익 저조는 곧 회사의 위기로 다가왔고, 2012년 2월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THQ는 자금 확보를 위해 회사의 프렌차이즈 게임의 판권과 스튜디오를 외부에 매각하기 시작했다.
2010년 12월 THQ 코리아가 철수한 것에 이어 게임 시리즈의 판권과 스튜디오를 외부에 매각하며 회생을 노렸다. 특히, 한창 스튜디오 매각이 가속화되던 2012년 THQ 게임들이 인터넷 묶음 판매 사이트 '험블 번들'에 세트로 덤핑 판매되는 것은 물론, 스팀 연말 세일에 워해머의 전 시리즈가 9.99달러에 판매되어 게이머들이 THQ의 몰락을 온몸으로 체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THQ는 2013년 1월 3일 결국 나스닥에 상장 폐지되며, '던오브워', '컴퍼니오브히어로즈'를 개발한 렐릭 게임즈를 '세가'에, WWE 판권을 '테이크투'에 넘기는 등 산하 스튜디오가 경매에 판매되며 20년이 넘는 회사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