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위기보고서] 뽑기RPG에만 매달리면, 더 이상의 성장은 없다
하루가 다르게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던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에 제동이 걸렸다.
카카오 게임하기 시대 개막과 더불어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생 게임사들이 눈부신 활약을 펼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대기업들의 살벌한 마케팅 경쟁만이 시장을 이끌고 있으며, 상위권은 이미 고착화돼 몇몇 게임들이 돌아가면서 차지하고 있다.
예전과 변함없이 신작들은 계속 등장하고 있긴 하지만, 기존 게임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라 식상함이 느껴진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특히, 확률형 뽑기 형식을 도입한 RPG들이 높은 ARPU(가입자당 평균 수익)을 바탕으로 매출 상위권을 형성하면서 너도나도 같은 형식의 게임만 따라 만들고 있어, 이 같은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차별화된 게임을 만들겠다고 애쓰기는 하나,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하다보니 세계관만 다를 뿐 결국 뽑기로 좋은 캐릭터 혹은 장비를 뽑고, 자동사냥으로 레벨업을 하는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모바일 게임 시장을 키운 것은 애니팡, 윈드러너, 쿠키런 같은 다양한 장르의 캐주얼 게임이었지만, 현재의 모바일 게임 시장은 세븐나이츠, 히트, 콘 같은 RPG들만 살아남았다.
모바일 비즈니스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가 발표한 2015년 구글 플레이 게임 카테고리 총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국내 모바일 게임 사용자 중 4.7%만 결제 경험이 있으며, 그 중에서 10만원 이상 결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전체 사용자 중 1%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 전체 사용자 중 1%에 불과한 10만원 이상 결제자들이 전체 매출의 91.1%를 결제하고 있으며, 그중 절반이 RPG 장르에서 나오고 있다. 즉,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이 온라인 게임 시장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 했다고는 하나, 전체 사용자 중에 1% 밖에 안되는 소수의 결제자들에게 최대한 뽑아내는 기형적인 구조로 발전했다는 얘기다.
이렇다보니 게이머들 사이에서 모바일 게임의 과도한 결제 유도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으며, 특히 확률형 뽑기는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게임사들은 이를 자율규제로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는 있지만, 자율규제에 동참하지 않는 게임사들도 많고, 참여하는 게임사들조차 게이머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확률형 뽑기 방식이 문제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것보다 더 빠르게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논리 아래 너도나도 뽑기 중심의 RPG만 만들고 있으며, 그로 인해 결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결제 유도가 심한, 결제를 한 사람에게도 결제한 만큼 만족감을 느낄 수 없는 게임이라며 모두에게 불만을 사고 있다. 게다가 해외에서도 pay to win(결제를 많이 한 사람들이 무조건 이기는 게임)이라며 외면을 받고 있는 중이다.
점점 갈라파고스화 되어가고 있는 한국 모바일 게임 산업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전체 산업 매출이 전체 사용자 중 1%에 불과한 사람들에게 매달려 있는 비상식적인 상황에서 탈피해서 다양한 방식의 수익원을 확보하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다.
해외에서는 게임 내 광고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사용자들에게 결제 부담을 주지 않고도 게임사들이 충분한 수익을 발생시키는 모델이 확산되고 있으며, 불확실한 확률형 뽑기보다는 사용자들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형태의 과금 모델이 일반적이다. 특히, 최근 유행하고 있는 슈퍼셀의 클래시로얄의 경우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담긴 랜덤박스(확률형 뽑기 상품)을 판매하긴 하나, 그것을 게임 플레이 보상으로도 획득할 수 있게 했으며, 캐쉬를 사용하면 상자를 개봉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같은 확률형 뽑기 방식이라고 해도, 이쪽은 사용자들이 더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게 배려해주는 방식이다.
한국보다 훨씬 결제 부담이 심하다고 평가받는 중국도 확률형 뽑기 방식은 이미 유행이 지났다. 중국은 무과금, 결제자 모두에게 동등하게 콘텐츠를 제공하고 결제 금액에 따라 좀 더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편의기능을 향상시켜주는 VIP 등급 방식의 유료 모델이 일반적이다. 물론 VIP 등급도 확률형 뽑기 만큼이나 결제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많긴 하지만, 적어도 돈을 쓴 사람들은 쓴 만큼의 확실한 보상을 받아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내 게임사들도 이런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수익원을 다각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모비릭스 등 몇몇 게임사들은 구글이 제공하는 게임 내 광고인 애드몹을 적용해 의미있는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최근 변화를 선포한 카카오도 애드플러스라는 게임 내 광고 모델을 도입해 중소 게임사들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확률형 뽑기 구조인 게임빌의 별이되어라가 최근 업데이트를 하면서 무작위가 아닌 확정 보상 패키지 상품을 내놓아 다시 매출 10위권 내에 오른 것도 눈여겨 볼만 한 부분이다. 또한, 로이게임즈의 화이트데이 모바일도 유료 방식으로 판매돼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으나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확률형 뽑기에 지친 게이머들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아이템이라면 다소 비싸더라도 지갑을 열 용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결과다.
영상 콘텐츠 분야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TV는 시청자들의 시청료가 아닌 엄청난 광고 수익을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더 고품격 영상을 지향하는 영화는 관람객들에게 직접 관람료를 부가하는 형태로 이분화되어 있다. 또한, TV에서는 볼 수 없는 콘텐츠를 영화보다는 저렴하게 볼 수 있는 유료 채널이라는 틈새 시장도 형성되는 중이다. 문화 콘텐츠 산업에서 게임보다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영상의 수익 모델이 이런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은 참고할 가치가 있다.
물론 모바일 게임의 수익 다각화 움직임은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상황이다. 여전히 확률형 뽑기로 무장하고 TV 광고로 도배한 대형 퍼블리셔들의 게임이 매출 상위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당분간 이런 흐름은 계속될 전망이다. 다만, 이런 움직임이 더 많아져야 기형적인 형태로 성장한 한국 모바일 게임 산업이 다시 세계에서 통하는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웹젠과 컴투스가 이미 증명했듯 게임사들의 미래는 글로벌에 있고, 예전에 통했던 방식만 답습하다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글로벌 시장은 점점 더 멀어져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