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다. 진짜가 돌아왔다! '둠'
[게임동아 조광민 기자] 지난 5월 13일 FPS 게임의 대명사로 불리며, 수많은 FPS 게임들의 모태가 된 전설적인 FPS 게임 '둠'의 최신작이 출시됐다. 시리즈 순서로 따지면 '둠4'라는 이름이 맞겠지만, 개발자들의 선택은 그냥 '둠'이었다. '둠'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이 작품은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진짜다. 그리고 물건이다.
'둠'은 최근 영화 뺨치는 연출로 게이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현시대의 FPS와는 그 궤를 달리하는 작품이다. 눈앞의 모든 적은 물리치고 파괴하는 FPS의 가장 원초적인 재미에 집중한 클래식 FPS라고 할 수 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을 쏙 빼놓는 이야기 하나 없어도 '둠'은 게이머의 파괴 본능을 끌어내 게이머들을 게임이 푹 빠지게 만든다.
새롭게 돌아온 '둠'은 FPS 게임의 원초적인 재미. 즉 눈앞의 적을 쏘고 물리치는 재미를 게이머들에게 그대로 전해준다. 게임을 시작했으면 배경 스토리도 전해주고 일종의 튜토리얼도 진행할 만하건만, 게임을 시작한지 채 1분도 안돼 그냥 눈앞에 등장하는 모든 물리치며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둠' 시리즈의 아버지인 존 카맥이 이야기한 “게임에서의 스토리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라는 이야기를 충실히 따른다. '둠'을 플레이하는 내내 스토리보다 강력하고 다양한 무기를 사용해 눈앞의 적을 산산조각 내는 전투에만 더욱 집중하게 된다.
물론 '둠'이 적절한 설정 하나 없이 눈 앞의 적을 파괴하기만 하는 게임은 아니다. 잠에서 깨어난 둠 가이(주인공)가 악마를 물리치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적당한 수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게임 플레이에 크게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장면만 종종 등장하는 정도다. 추가적인 정보를 원하는 게이머는 맵 곳곳에 숨겨진 수집물을 통해 추가 정보를 얻으면 그만이다.
이번 '둠'의 가장 큰 특징은 과거 시리즈의 게임성으로 돌아간 것이다. 마치 공포게임과 같은 답답하고 느린 전개로 게이머들의 원성을 산 '둠3'와 달리 기본이 달리기로 설정돼 있어 게임의 처음부터 끝까지 신나게 달리며, 적을 쏘고 물리치는 데만 집중할 수 있다. 맵을 이동하고 전투를 펼치고, 맵을 이동하고 전투를 펼치는 이 단순한 과정이 그저 눈앞에 자리한 악마를 잔인하게 물리치는 '둠' 시리즈가 가진 본래의 재미를 그대로 전해준다.
이번 작품에 새롭게 추가된 '글로리 킬'도 이번 '둠'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악마가 쓰러지기 직전까지 공격을 퍼 부으면 게이머는 근접공격으로 적을 마무리할 수 있다. 체력을 잃고 반짝이는 상태의 악마 근처에서 근접 공격인 '글로리 킬'로 적을 처지하면 일반적인 무기를 통한 적의 처치 시 보다 훨씬 많은 총알이나 HP 등의 보상이 주어진다. 약간은 박하게 느껴지는 듯한 탄알의 확보를 위해서라도 게이머는 '글로리 킬' 적극적으로 활용 수 밖에 없다. 적진 한가운데로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가 적을 근접 공격으로 마무리하며, 다른 악마를 물리치기 위한 탄알을 확보하는 모습에서 '둠'이 가진 피하지 않고 맞서는 재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과거로 회귀한 만큼 맵의 어느 한 구석도 허투루 쓰지 않는 레벨 디자인도 '둠'의 최대 강점 중 하나다. 맵 곳곳에는 숨겨진 이야기와 수집물들이 마련됐으며, 게이머가 맵을 구석구석 탐색할수록 후반에나 사용하는 강력한 무기들을 먼저 만나볼 수 있다. 곳곳에 마련된 토큰 등을 통해서는 둠 가이의 아머 등을 강화할 수 있어, 이동과 전투가 기본이 되는 반복적인 맵 탐색의 과정이 지루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둠' 다운 재미를 보여준 게임성 외에도 그래픽과 사운드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ID테크엔진 6'로 제작된 '둠'의 그래픽은 최근 발매된 여느 게임들과 견줘도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다. 물론 현존 최고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보여지는 퀄리티는 상당히 뛰어나다. 보여지는 부분에 대해선 세밀한 표현을 입히고, 게이머들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부분에서는 적당히 퀄리티를 타협해 완성도를 높였다. 다만 너무 반짝거리는 피의 색감, 시점 이동이나 총기 교체 시 텍스쳐가 조금 늦게 입혀지는 텍스쳐 팝인 현상은 여전하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사운드는 최고 수준이다. 악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에는 악마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피격 소리나, 다양한 총기의 효과음도 만족스럽다.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배경음악이다. 전투가 시작되면 귀를 날카롭게 찌르는 흥겨운 메탈 사운드가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빠르게 진행되는 전투와 빠른 템포의 메탈 음악이 만나 거대한 시너지 효과를 내 전투 중인 게이머의 감각을 극으로 끌어 올린다. 완성도 높은 배경음악이 없었다면, 이처럼 빠르고 경쾌한 전투를 즐기는 느낌을 그대로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완성도다.
다방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둠'이지만,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멀티플레이다. 게이머는 싱글 플레이를 통해 '둠'을 대표하는 'BFG9000' 등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며 악마들이 불쌍하게 느껴질 수준의 공격을 퍼 부으며 말그대로 악마를 산산조각 내고 순식간에 녹여버리지만, 아쉽게도 멀티플레이에서는 이런 화끈함을 느끼기가 힘들다. 다양한 총기의 대미지가 대폭 하향 조정돼 있으며, 준비된 모드도 일반적인 FPS의 모드와 큰 차이가 없어 너무 평범하다. 멀티플레이 자체의 완성도나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싱글 플레이를 통해 느꼈던 화끈한 '둠'의 쾌감을 느끼기에는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이와 함께 '둠'은 플레이를 지속하는 내내 이동과 전투가 반복되는 게임의 특성상 전투가 주는 화끈한 재미와 반복적인 플레이가 주는 지루함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간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미션의 구성이나 전투 구성이 비슷해 자칫 지루한 쪽으로 무게가 실릴 우려도 있다. '임프'가 등장하고, '맨큐버스'가 등장하고, '바론오브헬'로 마무리되는 전투가 매번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둠'은 싱글 플레이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다소 아쉬운 모습이 나타난 멀티플레이의 경우에도 게이머들이 직접 맵을 제작해서 멀티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스냅맵' 기능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 활성화되면 어느정도 나아진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는 아쉽게도 한국어화가 진행되지 않았지만, 후속작에 대한 향수를 진하게 남긴 '둠'의 다음 이야기는 꼭 한국어 버전으로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