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들인 SRPG 소울링커, 낯선 게임에서 옛 추억이 느껴진다
한동안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을 지배했던 액션RPG의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여러 장르의 게임들이 골고루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과거 PC 패키지 시절에 인기 장르였지만 한동안 모습을 볼 수 없었던 SRPG 장르가 넥슨이 선보였던 슈퍼판타지워를 시작으로 다시 인기를 얻으면서 새로운 인기 장르로 떠오르는 중이다.
하지만, SRPG는 역사가 오래된 장르인 만큼 마니아들이 눈 높이가 높아서 만들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슈퍼판타지워, 조조전, M.O.E(모에) 등 흥행 성공작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긴 하지만 모두 넥슨이 개발한 것으로, 중소 게임사들은 개발을 시도하는 곳도 많이 없고, 만들더라도 빛을 보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플레이마루라는 스타트업이 SRPG 시장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다. 그들이 만든 소울링커는 부분유료화 방식의 SRPG로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친구들과 함께 마법도시 하이델폴리스의 숨겨진 이면과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울링커을 실행하면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소 투박하지만 정감이 느껴지는 그래픽이다. 대기업에서 만든 게임처럼 세련된 느낌은 없지만, 구석 구석까지 정성을 들여 만든 티가 난다. 모 게임처럼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미소녀인 것은 아니지만, 귀엽게 그려진 캐릭터들이 대화 내용에 따라 아기자기한 몸짓으로 감흥을 더하며, 스킬을 쓸 때의 모션이나 이펙트도 과하지도 않고, 너무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이기 때문에 눈에 부담이 없다.
캐릭터에 비해 배경은 다소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게임의 주된 배경이 되는 마을이나, 전투시 보게 되는 필드 모두 타일을 적절히 배치해 깔끔한 느낌을 주기는 하나, 아무래도 대기업 게임들과 비교하면 화려함이 많이 떨어진다. 인원, 자금이 모두 부족한 스타트업 입장에서 리소스를 최대한 아끼면서도 빈틈없이 화면을 가득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한 정성이 엿보인다.
캐릭터들의 성장은 일반적인 모바일RPG들과 비슷한 형태다. 영웅의 조각을 일정 수 이상 모으면 상위 등급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으며, 장비도 강화해서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아무래도 캐릭터를 획득하는 방식이 뽑기가 아닌 조각 수집이기 때문에 한방에 좋은 캐릭터를 획득하는 쾌감은 없지만, 열심히 플레이하면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강해지기 때문에 과금 스트레스는 적은 편이다. 상점에서 캐릭터 조각 뽑기를 할 수는 있으나, 어차피 일정 수준까지 레벨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뽑기만으로는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 수 없으며, 게임 플레이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영웅 조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남들보다 빠르게 영웅을 성장시켜서 PVP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이 게임은 전투의 흐름, 캐릭터의 성장, 스토리 진행 모든 부분에서 다른 게임에 비해 다소 느린 편이다.
SRPG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토리는 상당히 뜬금없다. 기억을 잃은 청년이 길을 가던 마법사의 도움으로 살아남게 되고, 갑자기 자신의 마법적 재능을 깨달아 마법 대회에 나가자 마자 우승. 그리고 자신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여러가지 심부름(?)을 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판타지 대하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고 해도 소설을 보는 듯한 짜임새 있는 스토리라고 말하기는 힘든 수준이다. 하지만, 플레이를 하다보면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까 하는 기대감이 있긴 하다. 황당하지만 황당함 나름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과거 게임들도 꼬마들의 동네 한바퀴가 갑자기 세계를 구하기 위한 모험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SRPG 장르는 특성상 스토리 기반 싱글 플레이 중심이긴 하지만, 소울링커는 부분유료화 방식의 모바일 게임인 메인 스토리 모드 외에도 다양한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PVP에서는 다른 게이머들과의 대결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 조합과 전술을 시도해볼 수 있으며, 던전 모드에서는 영웅의 길, 도전자의 협곡, 미지의 탑 등 다양한 미션이 설정된 곳에서 다양한 보상을 획득할 수 있다. 스타트업 개발사에서 나온 게임은 아무래도 콘텐츠가 많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소울링커는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현재 SRPG의 팬들은 대부분 과거 PC 패키지 시절에 좋았던 추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신작 게임들도 그 때의 게임들과 비교되기 마련이다. 상식적으로는 예전보다 발전된 기술이 다수 도입된 신작이 더 유리해보이지만, 현실은 추억이라는 강력한 버프를 받고 있는 과거의 게임들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소울링커는 처음 실행했을 때 이번에 새로 나온 따끈따끈한 신작임에도 불구하고, 예전 추억의 게임들이 생각나는 묘한 게임이다. 부분유료화 방식을 도입한 게임인 만큼 뽑기, PVP 랭킹 시스템 등 옛날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은 콘텐츠들이 다수 들어있으며, 감탄사가 나올 만큼 미려한 그래픽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한 턴 한 턴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옛날에 PC에 앉아서 다음 스테이지에는 어떤 스토리가 나올지 기대되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마치 그 시절 SRPG에 푹 빠졌던 이들이 게임 개발자로 성장해서 만든 게임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