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홀릭] 세계 게임 시장의 공룡 EA가 굴욕을 당했다고?

니드 포 스피드, 반지의 제왕, 배틀필드, 심시티, 심즈 그리고 피파 시리즈까지 이름만 들어도 대작 소리 듣기에 충분한 게임들을 모두 출시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듣고 있을 정겨운 사운드 "EA sports it's in the game!"를 만들어낸 곳 이자 세계 게임 시장을 움직이는 공룡 그리고 게임 판 악의 제국까지 수 많은 게이머들에게 환호와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는 회사 ‘일렉트로닉 아츠’ 바로 ‘EA’가 그 주인공이죠.

‘액티비전 블리자드’, ‘락스타게임즈’, ‘유비소프트’, ‘벨브’ 등이 수 많은 게임사가 북미 게임 시장을 놓고 격돌하고 있지만, 1982년 설립 이후 무려 30년간 게임 개발, 마케팅, 유통과 출판에 이르기까지 게임산업 전반에 막강한 파워를 지닌 EA 같은 게임사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EA는 수 많은 게임 프렌차이즈를 거느리고 있고, 아직까지도 매년 수 천억의 수익을 벌어들이는 북미 게임 시장의 공룡과 같은 회사입니다. 그리고 유난히 스포츠 게임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현재 축구 게임시장을 거의 통일하다시피 한 ‘피파 시리즈’와 미국의 국민 스포츠 미식 축구의 절대 강자 ‘매든’, 그리고 아이스하키의 ‘NFL 시리즈’까지 강력한 라인업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EA의 막강한 영향력은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까지 미치고 있는데요, 현재 국내 스포츠 온라인게임 시장을 꽉 잡고 있는 피파온라인3가 바로 EA와 넥슨의 협업을 통해서 만들어진 게임일 정도 입니다. 몰론, 매년 하나씩 프렌차이즈를 망가트리며, 미국 최악의 게임사 투표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놓치지 않는 EA와 넥슨의 만남이 게이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 질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이렇듯 스포츠 게임 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한 EA가 넘보지 못하는 종목이 있습니다. 바로 야구와 농구가 그 주인공인데요, 야구는 라이선스 문제로 출시 자체를 못했고 농구는 부실한 게임성으로 게이머들에게 외면을 받아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할 정도였죠.

EA의 이름값과 자본을 생각하면 굴욕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인데요, 그렇다면 게임 공룡 EA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자신들의 주요 라인업인 스포츠에서 이토록 처참한 굴욕을 맛본 것일까요?

야구의 경우 라이선스 문제가 EA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야구는 미식축구, 농구와 더불어 미국인들의 국민 스포츠로 꼽히는 종목입니다. 때문에 실제로 90년대부터 ‘하드볼’, ‘베이스볼 모굴’ 같은 명작 야구 게임들이 등장해 왔고,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죠.

인기 스포츠에 항상 눈독(?)을 들이던 EA 역시 여러 게임을 출시 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죠. 실제로 EA의 야구 게임 시리즈인 ‘트리플 플레이’의 경우 안타까울 수준의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었던 처지였습니다. 이에 EA의 개발팀은 심기일전하여 독창적인 인터페이스와 발전된 그래픽으로 무장한 새로운 야구 게임시리즈를 선보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2000년대 중반 등장한 ‘MVP 베이스볼’ 시리즈였습니다.

차츰차츰 판매고를 늘려가던 ‘MVP 베이스볼’ 시리즈는 라이벌인 ‘하이히트 베이스볼’이 3DO의 부도로 사라지게 되자 더욱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라이벌도 없고, 게임성도 뛰어난 이 ‘꽃길만 걸을 것’ 같았던 ‘MVP 베이스볼’은 돌연 판매를 중단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2K와의 라이선스 분쟁이었죠.

사정이 이렇습니다. , 2000년대 중반 EA는 경쟁 게임을 견제하고 스포츠 게임 시장을 독점하고자 북미의 인기 스포츠들의 라이선스를 확보하는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고 이에 아이스하키(NHL), 미식축구(NFL) 등의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따내고 마는데 문제는 이런 라이선스 독점 때문에 다른 게임의 출시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이에 가장 직격탄을 맞은 회사는 EA와 같이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게임 시리즈를 출시하던 테이크투(이하 2K)였습니다.

EA의 NFL 라이선스 독점으로 게임 출시가 막혀버리자 격노한 2K 수뇌부는 곧바로 메이저리그(MLB)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신청했고, 이에 반발한 EA 역시 같은 내용의 계약을 신청했습니다. 이후 양측의 격렬한 싸움이 진행된 결과 최종적으로 MLB 사무국은 2K의 손을 들어주었고, 2K는 수년간 MLB 독점 계약을 맺게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2K는 MLB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다른 회사들이 MLB 라이선스를 사용하는 것을 인정해 줬는데, EA만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버렸다는 것이죠. 사실상 “EA 너만 쓰지마!”라고 한 셈이었습니다.

이 여파로 ‘MVP 베이스볼’ 시리즈는 불과 3년 만인 2005년 시리즈의 명맥이 끊기게 되었고, EA는 2K의 라이선스 계약이 종료된 2013년까지 야구 게임을 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지금은 출시하고 있느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현재 MLB 게임은 ‘야구 그 자체’로 불리는 소니의 ‘더쇼’ 시리즈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중입니다. MLB 라이선스를 독점하고 있는 테이크투도 ‘MBL 2K’ 시리즈를 발매하고 있지만 판매량이 저조할 정도죠.

수 년간 야구 게임을 개발하지 않은 EA가 이 ‘더쇼’의 벽을 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죠. 다만 ‘MVP 베이스볼 시리즈’는 한국의 게임사 엔트리브소프트와 계약을 맺고 한국 야구를 배경으로 ‘MVP 베이스볼 온라인’으로 서비스되며 명맥을 유지했었는데요, 이 게임 역시 지난 2월 18일 서비스가 종료 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정말 EA는 야구와 지지리도 운이 없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야구는 라이선스를 따지 못했다는 핑계거리라도 있지만, 농구는 NBA 2K에게 완전히 밀리며 판매량이 ‘폭망’한 케이스 입니다. 사실 초창기 농구 게임을 지배한 회사는 바로 EA였습니다. 1989년 MS-DOS 게임으로 출시한 NBA 플레이오프부터 1994년 바통을 이어받아 출시된 ‘NBA 라이브’ 시리즈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아이버슨’, ‘샤킬 오닐’, ‘케빈 가넷’ 등 유명 선수를 내세운 공격적인 마케팅과 이전 게임들과 차별화된 그래픽 혁신적인 UI 등을 통해 사실상 농구 게임시장을 지배하고 있었죠.

이에 반해 테이크투의 ‘NBA 2K’ 시리즈는 비운의 게임기 드림캐스트에서 1999년 발매한 첫 작품과 2000년 두 번째 작품을 냈을 뿐 극소수의 마니아만 해본 한마디로 ‘아는 사람만 아는‘ 게임 수준이었죠. 역대 최고의 시리즈라는 ‘NBA 라이브 2001’의 대성공을 지켜본 EA에게 ‘NBA 2K’는 그냥 눈에도 안 들어오는 그런 게임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이 구도는 2005년 발매된 EA의 ‘NBA 라이브 2005’과 테이크투의 ‘NBA 2K6’부터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테이크투는 ‘NBA 라이브’를 따라잡기 위해 ‘NBA 2K 6’에 아주 혁신적인 콘텐츠를 집어넣었는데 바로 실제 선수들이 가진 슛 동작을 게임에서도 그대로 구현해 놨다는 것이죠.

사실 이전까지 농구게임은 누가 어디서 슛을 쏘든 모션이 똑같았는데, ‘NBA 2K 6’부터 각 선수별 차이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EA 역시 시도하던 것이었지만 온갖 버그 때문에 적용하지 못했던 기능이었죠. 이때부터 ‘NBA 2K’ 시리즈는 게이머들에게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물론, 이때까지 ‘NBA 2K’가 ‘NBA 라이브’의 아성에 도전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오 저런 게임도 있구나?”하는 정도에 불과했죠. 하지만 ‘NBA 2K’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2006년부터 EA의 소위 ‘막장 삽질’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EA는 ‘NBA 라이브 07’에 새로운 기능인 ‘엑스팩터 시스템’과 ‘프리스타일 컨트롤’을 추가했는데, 이 기능의 밸런스는 그야말로 최악으로, 특정 포지션이 지나치게 강하게 부각이 되었고, 이는 결국 게임성의 파괴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무려 3년 동안 말이죠.

여기에 EA는 막장의 화룡점정을 찍는데 바로 불법 복제가 심하다는 이유로 ‘NBA 라이브’의 PC버전을 출시하지 않은 것이죠. 사실 ‘NBA 2K’ 시리즈는 PS, Xbox 등의 콘솔로만 발매되어 PC 게이머들은 사실상 ‘NBA 라이브’만 즐길 수 있었는데, 이 마저도 발매되지 않자 자연스레 새로운 게임인 ‘NBA 2K’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테이크투는 2008년부터 2K 시리즈를 PC로 출시했습니다. PC 시장을 당연히 자신들의 것으로 생각한 EA의 크나큰 오판이었죠.

이렇게 서서히 판이 기울어 가고 있는 동안 테이크투는 2010년 폭탄 선언을 하고 마는데, 바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따낸 것입니다. ‘마이클 조던’이 가진 브랜드 파워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데요, 나이키에서 출시 중인 제품 라인업인 ‘조던’이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입니다.

이 ‘마이클 조던’을 전면에 내세운 ‘NBA 2K 11’은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렸고, ‘NBA 라이브’는 이때부터 급격한 판매량 감소에 시달립니다. 게임 내 콘텐츠, 게임성도 어느새 뒤쳐져 버렸고, 그나마 지니고 있던 브랜드 이미지 역시 밀리게 된 셈이죠. 한때 시장을 호령하던 게임 치고는 초라하게 현재 ‘NBA 라이브’ 시리즈는 ‘NBA 2K’과 비교해 판매량이 반토박 수준에 불과합니다. 물론 모바일 등의 시장에도 진출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죠.

이처럼 EA는 야구와 농구 모두 2K에게 완패하며 시장에서 자리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두 종목 모두 EA가 성공할 수 있는 타이밍이 있었지만, 탐욕과 게임성의 발전을 게을리했다는 이유로 패배의 굴욕을 맛봤다는 것이죠.

1등이라고 해서 그 자리에 안주하면 몰락하게 된다는 좋은 교훈을 EA가 몸소 보여준 셈입니다. 비록 외국 기업이지만 ‘화무십일홍’이라는 격언이 이렇게 어울리는 경우도 드물다고 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