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게임의 본질은 재미. IP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대작 시리즈 게임들이 많기로 유명한 PS4 진영이 최근 등장한 게임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하나는 게릴라게임즈의 호라이즌 제로 던이다.
호라이즌 제로 던은 문명이 쇠퇴한 미래를 배경으로 거대한 기계 동물들을 활과 창으로 대적하는 오픈월드 게임으로, 출시된지 2주만에 글로벌 누적 260만장을 돌파했다. 호라이즌 제로 던을 개발한 게릴라게임즈는 PS3 시절 많은 인기를 얻었던 킬존을 만든 실력 있는 개발사인 만큼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대작 시리즈물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현재 상황에서 게이머들이 처음 보는 신규 IP로 지금 같은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니어 오토마타 역시 눈여겨 볼만 하다. 베요네타로 액션 게임 개발 실력을 인정받은 플래티넘게임즈가 개발한 이 게임은 안대를 한 독특한 매력의 여주인공을 앞세워 호라이즌 제로 던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고 있다. 캐릭터가 워낙 인상적인 나머지 발매 전부터 팬픽과 코스프레가 쏟아졌으며, 게이머들의 요청이 빗발쳐서 PS4에 이어 PC버전도 발매됐다.
이 게임은 드래그 온 드라군, 니어 레플리칸트라는 게임에서 이어지는 시리즈이긴 하지만, 전작이 워낙 마니악한 게임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신규 IP나 다름없다. 전작을 플레이해본 사람이 거의 없으며, 니어 오토마타가 성공을 거둔 이유도 방대한 세계관과 스토리보다는 압도적인 개성을 지닌 주인공 덕분이니 말이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출시돼 이들과 경쟁했던 게임들을 보면 더욱 기가 막히다. 스퀘어에닉스가 자랑하는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의 최신작 파이널판타지15가 있고, 남성들의 로망이 집결된 슈퍼로봇대전V, 이코, 완다와 거상의 뒤를 잇는 작품이자 무려 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려 만든 대작 더 라스트 가디언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유명 IP를 쓴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완성도로 인해 호라이즌 제로 던과 니어 오토마타를 더 돋보이게 만드는 들러리가 되고 있다.
즉, 유명 개발사의 대작 시리즈만 살아남는 곳이 되어버린 콘솔 게임 시장에 간만에 실력 있는 신인들이 등장했고, 이들이 나오기만 하면 판매량이 보장된다는 유명 선배들을 뛰어넘어버린 것이다.
물론, 닌텐도의 신형 게임기 스위치 판매를 홀로 견인하고 있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처럼 유명 IP를 쓰고, 명성에 걸맞는 성적을 거둔 훌륭한 게임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역대 최고의 게임이라고 평가받는 시간의 오카리나와 비교될 만큼 완성도 높은 게임성을 갖췄기 때문이지 단순히 젤다의 전설 IP를 사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게이머들은 멍청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유명한 IP라고 할지라도 게임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철저히 외면한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으면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의 상황이 떠오른다. 작년부터 기미가 보이긴 했지만, 넷마블게임즈의 리니지2레볼루션이 한달만에 매출 2000억을 넘기는 말도 안되는 성적을 기록하자 모든 개발사들이 인기 IP를 기반으로 한 게임에 목을 매고 있다. 인기 IP를 쓴 게임이 아니면 출시조차 포기해야 할 분위기다.
진삼국무쌍 언리쉬드, 리니지M, 스페셜포스, 라그나로크R, 블레이드2, 탄:끝없는 전장, 아키에이지 비긴즈, 노블레스 등 상반기 내 출시를 하고 있는 게임들 대부분이 인기 IP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며, 하반기 역시 IP 게임 러쉬가 지속될 전망이다.
유명IP는 특별히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초반에 사용자 모집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게임의 장점을 애써 설명하지 않더라도 기존에 즐겁게 즐긴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출시된다는 소식만으로도 손쉽게 다운로드로 이어진다. 굉장히 많은 신작들 사이에서 튀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경쟁력이다.
다만, 문제는 유명 IP가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유명한 IP를 사용한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게임 자체의 재미가 부족하면 금방 떠나기 마련이다. 특히, 유명 IP가 됐다는 것은 원작의 작품성이 매우 뛰어났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원작의 뛰어난 작품성을 생각하고 게임을 설치한 팬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게임을 즐기게 된 일반인보다 훨씬 까다로운 기준으로 게임을 평가한다. 유명 IP가 오히려 더 큰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요즘은 과거와 달리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할 수 있는 공간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가장 충성스러웠던 팬이 격렬한 안티팬으로 돌아서기 매우 쉬운 세상이다.
최근에 등장한 두 게임의 놀라운 성적도 주의깊게 볼만 하다. 엔씨소프트의 파이널 블레이드와 베스파의 킹스레이드는 유명 IP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출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그나마 파이널 블레이드는 퍼블리싱을 맡은 엔씨소프트의 인지도라고 있었지만, 이번이 두번째 게임인 베스파는 정말 제로에서 시작해서 만든 기적이다.
파이널 블레이드와 킹스레이드 모두 마케팅에 도움이 될만한 아무런 보너스가 없는 상황에서 맨 주먹으로 출발했지만, 파이널 블레이드는 동양풍의 세계관이 돋보이는 그래픽과 액션, 그리고 킹스레이드는 매력적인 영웅들과 뽑기 스트레스를 줄인 착한 과금 시스템이 호평받으면서 입소문으로 지금의 성공을 만들어냈다. 게임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재미라는 것을 가장 잘 증명해주는 사례다.
리니지2레볼루션이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의 협업으로 탄생한 게임답게 유명 IP를 사용했고,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은 게임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 시장의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의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기존에 등장했던 모바일MMORPG의 수준을 뛰어넘는 완성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를 단순히 유명 IP를 썼고, 돈을 많이 써서 마케팅을 했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회사들이 많지 않길 바란다. 유명 IP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줄 수는 있어도, 잔존률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