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지구 멸망 시나리오 분석하니 '훈훈하네'
[게임동아 조광민 기자]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처럼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 나무 심을 사람이 있을까? 이에 대한 재미있는 연구를 진행한 논문이 공개됐다. 특히, MMORPG '아키에이지'의 사례를 통해 살펴본 점이 눈길을 끈다.
엑스엘게임즈(대표 송재경, 최관호)의 MMORPG '아키에이지'를 통해 지구의 종말이 다가왔을 때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한 논문이 전산분야 컨퍼런스인 WWW(World Wide Web)컨퍼런스 2017을 통해 발표됐다.
'아키에이지'는 지난 2012년 네 번째 CBT(Closed Beta Test. 비공개 테스트. 이하 CBT4)를 이례적으로 95일 동안 진행한 바 있다. CBT는 통상적으로 테스트 종료 후 캐릭터와 서버를 비롯한 모든 데이터가 삭제된다.
김휘강 교수(고려대)를 비롯한 강아름 박사(University of Buffalo), 곽해운 박사(Qatar Computing Research Institute), 제레미 블랙번 박사(Jeremy Blackburn, Telefonica Research) 연구팀은 이러한 사실에 착안해 지구의 멸망이 예고되었을 때 사람들이 어떠한 행태를 보이는지 연구했다. 해당 연구팀은 8천 명이 참여한 '아키에이지'의 CBT4에서 나온 2억 7천 만개의 기록을 분석한 결과 매우 흥미로운 결말을 도출했다.
'지구 멸망 시나리오', 즉 세계의 종말이 예고 되었을 때 자신의 행동에 어떠한 제약이나 그 결과에 따른 벌칙, 규제가 없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의문은 철학자들이 지난 수 백 년간 해 온 주제다. 대체적으로 '지구 멸망의 날'이 다가오면 폭동과 약탈이 일어나는 아비규환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논문에 따르면 '아키에이지'에서는 오히려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먼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명언과 다르게 '아키에이지' CBT4에서는 테스트 종료 시점이 다가오자 게이머들은 퀘스트와 레벨업 등의 게임 플레이를 멈췄다. 그렇다고 특별히 과격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물론 테스트가 종료되기 전에 게임을 떠나거나 무작위 PK를 하는 등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이는 게이머도 있었지만 특정 부류였다. 일반적인 게이머들은 미래에 대한 고민이 줄어들자 오히려 인간 관계에 집중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채팅창에서 등장하는 단어의 트렌드 중에서는 '행복'이 증가했다. 화폐 사용 수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논문의 공동저자 김휘강 교수는 "가상 세계에서의 인간 행동 연구에는 한계가 있지만 '아키에이지'가 워낙 자유도가 높은 게임인데다 방대한 데이터가 있어 현실에서의 시나리오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MMORPG는 흥미로운 인간 군상을 연구할 수 있는 좋은 도구다. 향후에도 '아키에이지' 등 온라인 게임을 통해 여러 연구를 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논문은 과학계 유수 잡지 '뉴사이언티스트', 글로벌 게임 전문지 'PC Gamer'를 비롯 영국의 '데일리메일' 등에 소개되는 등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논문의 전문은 다음 여기(https://arxiv.org/abs/1703.01500)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