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의외의 정통 RPG '루프란의 지하미궁과 마녀의 여단'
게임명: 루프란의 지하미궁과 마녀의 여단
개발사: 니폰이치 소프트웨어
유통사: 인트라게임즈
플랫폼: 플레이스테이션4(PS4)
현지화: 자막 한글
필자명: 구석지기
니폰이치 소프트웨어의 요즘 게임들은 특색이 명확하다. 일단 아기자기한 그래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며, 이에 상반되는 암울한 이야기 또는 등장인물, 그리고 파고 드는 재미를 극대화 시킨 캐릭터 성장 요소 등을 잘 버무린 게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조작이나 게임 진행 과정에 대해서는 매우 간단하게 구성되고 있고 복잡한 연출보다는 알기 쉬운 형태의 진행을 주로 선보인다. 그래서 니폰이치의 게임을 하다 보면 예전 고전 TRPG를 하는 느낌 또는 전형적인 클래식한 던전 RPG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오늘 리뷰로 다룰 루프란의 지하미궁과 마녀의 여단(이하 루프란 지하미궁)은 이런 특징을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게임의 재미도 재미이지만 니폰이치 특유의 강약 조절이 인상적인 밸런스와 파고 들 수 있는 무한에 가까운 성장 요소는 정말 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다.
루프란 지하미궁은 마녀와 백기병 시리즈 개발진들이 만든 일종의 스핀오프 게임이다. 물론 마녀와 백기병의 인물들이 등장하진 않지만 최근 니폰이치에서 밀고 있는 시리즈의 간판 무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성장 방식과 게임 진행 과정, 세계관이 매우 흡사하다.
그리고 마녀의 백기병 시리즈가 보여준 특유의 암울한 시대 배경과 씁쓸한 이야기 전개도 반영돼 이야기를 잃는 내내 찝찝함을 버리기가 힘들다. 이에 상반되는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다양한 캐릭터들의 모습은 이런 이질감을 극대화 시켜줘 호불호를 이끌어낸다.
필자는 이야기 구성 및 인물들에 대해서는 솔직히 별로였다. 게이머의 개입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 전개이고 등장인물 중 주연급인 땅거미의 마녀 '드로니아'의 엽기적 행각은 꼭 잔혹동화를 보는 것처럼 시종일관 불편했다.
이 캐릭터의 주 특기는 주변 사람 괴롭히기,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거짓말하고 남을 속이는 일, 왜 같이 다니는지 잘 모르지만 항상 혼나는 역의 루카 때리기(어떻게 보면 아동학대?) 등이다. 본인은 장애로 인한 의수 착용 중이지만 자격지심이 심하고 성격도 괴팍하다.
그래서 게임 진행 내내 이 캐릭터에 대한 거부감만 쌓여갔다. 그러다 보니 주요 이야기 부분에 대한 몰입감이 상당히 떨어졌다. 물론 대 부분은 게임이니 그런가 보다 넘어갈 수 있지만 이야기 비중이 높은 이 게임에서 이 문제는 작다고 보긴 어려웠다.
어쨌든 이 문제는 호불호의 문제이니 너무 크게 생각할 이슈는 아니다. 게임의 이야기는 작은 마을 루프란을 찾아온 마녀 드로니아가 이곳에 있는 지하미궁에 자신의 분신 격인 인형을 보내 탐색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세한 언급은 어렵지만 지하미궁의 비밀과 드로니아, 그리고 주변 인물 간에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이곳의 존재 이유, 그리고 저주 받은 전설의 책 '요로역정'에 대한 비밀 등을 파헤칠 수 있게 된다.
볼륨으로만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 게임은 80시간 이상 가지고 놀 수 있는 구성이다. 무한에 가까운 성장 시스템과 던전 내 무작위로 발생하는 파밍 요소, 그리고 최대 40명으로 구성할 수 있는 여단 시스템은 일본식 RPG를 선호하는 게이머들에게 안성맞춤의 재미를 준다.
루프란 지하미궁의 백미는 이야기 진행에 있다. 은근 대사 내 복선도 많이 있으며, 캐릭터의 느낌을 잘 살린 방대한 대화 및 정보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스킵하고 진행하면 게임의 재미 절반 이상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야기의 비중이 높다.
인물들의 등장 자체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한 명 한 명에 대한 비중이 크고, 그에 따라 알 수 있는 여러 비밀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꼼꼼하고 잘 구성돼 있다. 이야기를 따라가듯 즐기는 걸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재미를 느낄 것으로 본다.
여기에 맞춘 던전 탐색은 전형적인 던전 RPG의 재미를 잘 살려냈다. 적들의 위치를 보고 확인해 전투를 피하거나 반대로 기습을 해서 적에게 큰 피해를 안겨주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에 다양하게 숨겨진 보물 상자나 숨겨진 공간 등은 탐색 그 자체의 재미를 충실하게 살려준다.
특히 루프란 지하미궁 게임의 특징인 '벽 파괴' 시스템은 탐색 이상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특정 공간을 뚫어 평소에는 갈 수 없던 곳으로 가거나 숨겨진 보물 상자 등을 찾아낼 수 있다. 예상 밖의 전개 등으로 특정 이벤트를 손쉽게 완료하는 등이 일도 가능하다.
그래서 제한돼 있는 공간이지만 나름의 자유도가 높게 느껴지며 멀리 돌아가야 하는 상황 같은 걸 최소화 시켜줘 특유의 빠른 진행 속도감을 유지 시켜준다. 그래서 반복적인 사냥이 많고 이동이 많음에도 이 게임은 그 과정 자체가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지하미궁은 인간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게이머는 '인형병'이라는 존재를 제작해야 한다. 인간과 동일하게 생겼지만 능력과 자원만 되면 무한으로 생성할 수 있는 이 존재는 탐험 결과에 따라 성장하고 최종적으로는 '이혼술'이라는 기능을 통해 더욱 강해진다.
총 8개의 전투 스타일이 존재하며 각각 2개의 성별과 3개의 외형으로 나눠진다. 이중 고딕 코펠리아와 데몬 리퍼는 특수한 조건으로만 생성할 수 있는 일종의 숨겨진 패싯이다. 극단적인 성능이기 때문에 쓰임새는 게이머에 따라 취향이 확실하게 갈린다.
성장 요소는 간단하다. 레벨 성장에 따라 자동으로 올라가는 방식이며, 특정 레벨에 도달하면 새로운 스킬 등이 개방된다. 하지만 여단이라는 설정 자체가 있기 때문에 초반에는 한 두명의 캐릭터의 성능에 집중하지만 중반 이후부턴 극대화된 여단의 효과를 내는 쪽으로 선회한다.
여단은 '결혼서'으로 불리는 아이템을 필요로 하는데 이 아이템마다 넣을 수 있는 인형병의 개수가 달라진다. 최소 1명에서 최대 8명이지만 최고 수준에서도 공격 가능한 인형병은 3명을 넘지 않는다. 나머지 5명은 서포터이고 특정 상황에 맞춰 교대 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서포트에 있어도 성장 경험치는 받기 때문에 남는 인형병은 무조건 서포터 공간에 합류 시켜서 던전 탐색에 동행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성장한 인형병은 최종적으로 이혼술이라는 일종의 전생 시스템으로 더 강해지게 된다.
이 기능은 자신이 키운 인형병의 성능을 배가 시켜주며 새로운 스킬은 물론 더 높은 능력치를 보유하도록 하기 때문에 후반에 필수적으로 쓰이게 된다. 성장 자체가 초, 중반까지는 매우 더딘 편이지만 '경험치 이월'과 중, 후반 파밍하기 좋은 맵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건 아니다.
여기에 6개 부위에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과 등급에 따른 능력치 차이, 그리고 진형 활용 등 부수적인 효과가 더해져 자신만의 강력한 여단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초반 (대략 4~5시간)의 다소 답답함을 벗어나면 기대 이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우선 반복성이 짙다 보니 전투의 속도가 예상보다 더딘 점이 발목을 많이 잡는다. 대 부분의 일반 적들은 자동 사냥으로 처리하게 되는데 가속 시켜주는 O 버튼이나 R1 버튼을 써도 더디다. 효과 등까지 더해져서 늦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문제는 이런 부분에 쓰이는 설정 기능이 대사 외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별 의미 없이 치러지는 전투도 속절없이 그대로 보고 있어야 한다. 스킵 기능이 최소화 돼 있기 때문에 대사 정도를 제외하면 2회차에서도 그대로 다시 봐야 하는 것도 단점이다.
또한 퀘스트에 대한 편의성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게임 내 주요 이벤트는 빨간색 느낌표로 표시되지만 진행 과정의 실수나 일부 전개 내에서 순서가 바뀔 경우 뜬금 없이 진행이 안 되는 일도 생긴다. 특히 어떤 아이템을 구하는 퀘스트는 꽤 많이 불편해 짜증을 유발 시킨다.
그러나 이런 점 등을 제외하면 루프란 지하미궁은 매우 뛰어난 수작이다. 다른 걸 떠나 이야기와 던전 탐색의 밸런스를 매우 잘 맞춰 지루하지 않게 게임에 파고 들 수 있게 한 점은 높이 평가해주고 싶다. 던전 RPG 방식을 좋아하거나 무한 성장의 재미를 찾는 게이머라면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