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 히스토리] 모에의 한계는 어디인가? '모에화 게임'
단어는 그 문화의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때문에 한 문화권에서 쓰이는 단어가 타 문화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기에 매우 모호한 경우가 다수 존재한다.
이 경우 북한 같이 극단적으로 외래어 사용을 금하는 폐쇄적인 국가를 제외하면 단어가 지닌 뜻과 의미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해당 단어를 번역하기 보다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 히스토리의 주제인 '모에'가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로, 일반적으로 '모에'는 사물, 역사적 인물 등을 여성 그것도 미소녀로 재해석해 등장시키는 것을 일컫지만, 사랑, 동경 같은 감정 표현과 아름다움, 사람의 특성에 이르기까지 의미가 매우 광범위한 의외의 깊이를 가진 단어기도 하다.(물론 이 해석은 서브컬처에 심취한 '오타쿠' 이른바 '오덕'으로 불리는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이를 모른다면 이해를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인물이 미소녀로 등장하는 '모에'는 비록 일반 대중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캐릭터의 스토리, 설정을 중요시 여기는 서브컬처 마니아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함으로써 이를 소재로한 '2차 창작물'(만화, 소설, 일러스트 등)이 활발하게 등장해 끊임없이 재생산을 거듭하며 어느덧 '모에'는 2003년 관련 산업이 888억엔(한화 약 9천 억 원)에 달할 정도로 일본 '오덕' 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 서브컬처에 심취한 이들이 주로 사용하던 '모에'가 국내 게임시장에 주목을 받은 것은 바로 소녀전선, 벽람항로 등의 모에화 게임이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중국의 XD글로벌리미티드(구 룽청)에서 개발한 소녀전선은 전세계의 다양한 총기를 미소녀화하여 이른바 '전술인형'으로 등장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인기를 끌었고, 구글 플레이 최고매출 2위, 애플 앱스토어 최고매출 1위까지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물론, 흙이 없이 싹을 틔울 수 없듯이 이들 게임에는 이미 험난한 '모에'의 길을 개척한 선배 격의 게임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단어가 가진 뜻의 영역이 넓은 '모에'의 특성상 미소녀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게임도 이에 포함되지만, 이번 히스토리에서는 사물을 미소녀 캐릭터로 등장시킨 이른바 '모에화 게임'을 위주로 소개하도록 하겠다.
국내 게이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모에화 게임은 바로 2003년에 PS2로 출시된 '일격살충 호이호이상'이다. 해충을 퇴치하는 제거하는 구제 로봇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명의 만화를 게임으로 한 이 게임은 귀여운 해충 구제 로봇 '호이호이'를 직접 조작해 집안에 출몰하는 해충을 박멸한 다는 독특한 스타일을 지닌 게임으로, PS2가 국내 처음 출시된 당시 색다른 설정과 귀여운 일러스트로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특히, 빠르게 움직이는 선사 시절부터 살아남은 '그것'을 잡기 위한 포획 도구나 파리, 모기 등을 잡는 장비를 바꾸어 사용하면서 미션을 수행해 나가고, 캐릭터의 의상, 능력치 등을 성장시켜 나가는 일종의 성장 요소가 더해져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작중 등장하는 캐릭터인 '호이호이'는 실제 일본에서 판매되는 해충 퇴치 용품이라는 것으로, 국내에서는 '끈끈이'로 알려진 제품으로, 이 덕에 호이호이는 로봇임에도 약국에서 구매해야 한다는 독특한 설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당시 PS2 전성기를 연 게임들이 쏟아지던 시기에 등장했던 이 게임은 기존 게임과 비교해 부실한 콘텐츠와 단순 반복적인 플레이에 그쳐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명작 슈팅게임 '그라디우스' 역시 21세기 들어 모에화를 피하지 못했다. 바로 게임의 개발사 코나미가 무려 정식 후속작으로 인정한 '오토메디우스'가 그 주인공. 1985년 처음 출시된 그라디우스는 지금도 회자되는 멋진 BGM과 파워업 캡슐로 공격력이 강해지는 시스템 그리고 패미컴, MSX 등의 게임기의 한계를 이끌어 낸 듯한 그래픽으로 슈팅 게임의 전성기에 등장한 명작 슈팅 게임으로 아직까지도 레트로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게임이다.
이러한 명성을 지닌 그라디우스의 정식 후속작이 무려 모에화로 등장한다는 소식에 많은 게이머들에게 주목을 받기도 했으며, 2007년 '오토메디우스'가 발매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오토메디우스'는 그라디우스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기체인 '빅바이퍼'를 비롯한 거의 모든 스테이지와 보스가 모에화 되어 게임 속에 등장하는 것은 물론, 호평을 받았던 원작의 시스템과 액션을 새로운 스타일로 재해석해 게임의 재미를 더했다. 여기에 국내에서도 큰 인지도를 얻었던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작가인 요시자키 미네'가 디자인한 일러스트와 캐릭터는 마니아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해 게임과 관련된 다양한 상품이 판매되기도 했다.
이 '오토메디우스'는 코나미에서 개발한 슈팅게임들 전반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게임으로 녹여 나가기 시작했고, 2008년 11월 엑스박스 360 버전으로 이식한 '오토메디우스 고져스'를 발매함으로써 본격적인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기도 했다. 물론, 야심차게 추진한 시리즈의 판매량이 점차 줄어가면서 시리즈의 계획이 자꾸 축소되어 한때 DCL 위주의 업데이트로 게임의 수명을 연명하다 결국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하지만 현재 코나미의 아케이드 네트워크 시스템인 'e-AMUSEMENT'에 다시 등장해 서비스를 이어가는 중이다.
소니, 세가, 닌텐도 그리고 MS를 아우르는 게임 업계를 모에와 한 게임도 있다. 컴파일하트에서 개발한 초차원게임 넵튠 시리즈가 바로 그것으로, 세계 게임 시장을 움직이는 게임 회사와 게임기가 초차원이라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미소녀로 등장하는 독특하고, 파격적인 설정으로 일본을 넘어 해외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는 중이다.
"하다 하다 이제 게임을 모에화한 게임이 나오나?"는 반응도 있지만, 이 초차원게임 넵튠은 플레이스테이션부터 닌텐도 DS, 세가, Xbox One에 이르기까지 현재 인기 있는 게임기는 물론, 게임기어 등의 과거 게임기가 각 차원의 담당이라는 설정 속에 등장하는 의외의 볼륨을 보여주기도 한 것이 사실.
여기에 게임 회사 혹은 게임기에 얽힌 유명 일화가 캐릭터의 설정으로 등장하기도 하며, 서브컬처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미소를 띌만한 패러디를 게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등 초차원게임 넵튠 시리즈는 뛰어난 일러스트와 매력적인 캐릭터로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세계관이 확장되며, 대표적인 게임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이 초차원게임 넵튠은 한국에서도 만만치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CFK 코리아에서 전 시리즈를 한글화 출시하는 것은 물론, 본고장인 일본과 동시 발매되는 것은 물론 닌텐도 스위치 버전은 한국에서 먼저 출시되는 등 그야말로 마니아들에게 '이쁘게 보일 수 밖에 없는' 정책으로 출시되면 매진이 되는 몇 안되는 게임이기도 하다.(물론 워낙 마니악한 장르인 만큼 소량 판매된다.)
슈퍼로봇대전 팬이라면 익숙한 마징가Z, 겟타로보, 그랜다이저 등의 명작 로봇들도 '모에선'을 맞았다. 이들 로봇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여고생이 되어 각종 개그를 남발하는 로봇걸스Z가 그 작품으로, 일본 현지에서는 워낙 많은 인기를 지닌 로봇들의 모에화라는 점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국내에서는 그다지 이렇다 할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이러한 '로봇걸즈Z'는 2014년 일본 웹게임으로 개발되어 서비스 되었다. 캐릭터를 강화하고, 대열을 이뤄 적을 격파하는 웹게임 스타일을 답습한 이 게임은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에 등장한 캐릭터가 모두 출현하는 것은 물론, '대공마룡 가이킹', '강철지그' 등의 토에이 사의 로봇도 다수 추가되어 재미를 더했다. 물론, 국내에서는 모에+80년대 로봇이라는 인지도가 낮은 콘텐츠의 만남으로 이름조차 알려지지 못했지만, 일본에서는 웹게임 순위에도 오르는 등 나름의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위의 사례와 같이 모에화 게임의 범위는 사람과 인종 그리고 물건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모에는 본고장인 일본을 넘어 거대한 시장을 지닌 중국과 제페니메이션에 익숙한 다수의 국가로 퍼지고 있는 중이며, 이러한 영향은 한국에도 이어져 모에 게임들은 온라인, 모바일을 가리지 않고, 흥행을 거둬 가히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실제로 지난 28일 출시된 가이아모바일의 '영원한 7일의 도시'의 경우 중국 개발사 넷이즈가 개발을 맡은 것은 물론, 신기사라고 불리는 동료들을 모아서 7일 이내에 세계를 멸명시키려는 악의 세력들과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종말까지 남은 7일이라는 시간이 반복되는 루프물이기 때문에, 게이머의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스토리와 결말에 도달하게 되며, 다시 1일차로 돌아가 더 높은 난이도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는 독특한 설정으로 구글 플레이 매출 순위 5위에 오르며 소녀전선 이후 가장 높은 매출 순위를 기록한 게임으로 열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이와 함께 소녀전선의 총, 벽람항로의 배를 넘어 비행기를 모에화한 123게임즈의 신작 모바일게임 '비행소녀학원'도 미소녀 풍 게임 장르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으며, 실제 비행기와 가상의 비행기들을 미소녀로 등장하는 것은 물론, 더 뛰어난 비행기로 성장하고 싶은 미소녀들이 다니는 학원을 배경으로 게임을 만들어, 미소녀 학원물의 느낌도 가미한 것을 무기로 내세우기도 했다.
위의 사례에서 살펴 봤듯이 모에 게임은 사물이나 과거 명작 게임, 애니메이션을 미소녀로 재해석한 시도로 서브컬처에 열광하는 이들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으며, 게이머들이 직접 만들어내는 지속적인 창작 작업으로 게임의 시너지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모에 게임들은 소위 '오덕'만을 타겟으로 하여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상태이며, 이들 게임의 핵심인 일러스트레이터, 캐릭터 디자이너, 성우 등이 게임의 주 소비층을 비하하는 '남성 혐오 사이트'와 연관이 되거나 그들과 같은 목소리는 내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해 게임 자체가 외면 받는 경우도 심심찮게 생기는 것은 이 장르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본 기자도 아직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모에 게임들은 현재 게임 시장에 엄청난 바람을 일으키고 있고, 점차 음지에서 양지로 다가가는 모습이다. 앞으로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동시에 모에 요소가 적절히 조합된 게임이 국내에서 등장해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얻는 것을 기대하며, 이번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