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의시대 ④] 편견으로 얼룩진 국내의 게임 논문들
< 지난 5월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72차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된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게임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 2016년에 이미 게임중독의 질병코드화 계획을 포함한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보건복지부 장관 또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WHO가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를 최종 확정하면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만큼 게임업계는 사면초가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다가온 게임 질병의 시대, 국내 게임산업계는 어떻게 대응해야하고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이뤄져야할까. 본지에서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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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가 게임이용 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키로 하면서 국내외에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한국, 중국의 논문 자료가 전세계 논문의 35%에 이르면서 동아시아 국가의 정신의학자 집단이 WHO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있고, 그 집단들로부터 나온 다양한 논문들 또한 편향적이고 정상적이지 않아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게임의 질병화 논란은 더욱 뜨겁게 가열되고 있다.
< 게임중독 논문과 관련해 메타 연구..정상적이지 않아>
"일단 '게임은 질병'이라는 전제하에 시작합니다. 한국에서 나온 게임중독 논문의 89%가 그렇습니다. 이게 과연 제대로 된 일일까요."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가 '게임의 질병화 : 게임중독에 관한 학술적 연구의 역사와 문제점'이라는 주제로 강연할때 발표한 내용이다.
게임중독 논문과 관련해 메타 연구를 진행한 윤태진 교수는 세계에서 게임중독과 관련된 가장 많은 논문이 한국(91편)에서 나왔으며, 지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나온 한국의 게임중독 관련 논문 중 89%가 일단 게임중독을 전제하거나 동의한 상태에서 연구가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이는 게임중독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의되기도 전에 다른 메커니즘에 의해서 게임이 질병으로 규정된 후 연구에 반영된 형태로, 명확한 정의없이 연구를 진행하다보니 저마다 게임 중독의 척도 및 진단 도구가 상이하고, 연구에 대한 타당도가 부족한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윤교수는 진단했다.
실제로 윤 교수에 따르면 게임중독과 관련된 어떤 연구에서는 게임중독의 발현율이 0.7% 라는 결과가 나오고, 어떤 연구에서는 최대 15%까지 나오는 상황이며, 윤 교수는 "세상에 어떤 질병이 연구자에 따라 이렇게 발현율이 차이가 나겠는가."라며 현재의 게임중독 논문들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 해외에서도 논란..'추가 연구 필요하다' 의견>
WHO의 게임 질병코드 등재로 보건복지부 산하 정신의학과 전문의들이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한 가운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게임의 질병화에 대한 연구의 신뢰성 부족에 대한 지적과 함께 추가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옥스퍼드대와 존스홉킨스대 등의 정신건강 전문가 36명은 WHO가 게임이용장애 질병화 등재를 확정하자 '명확한 진단기준이 없고, 근거가 빈약하며, 찬성 측 연구자조차 정확히 정의하지 못한다.'며 합동으로 반대 논문을 냈다. 또 WHO와 함께 세계 정신건강의학업계의 큰 축을 담당하며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정신의학협회(APA) 또한 "게임 질병화와 관련해 명확한 정의와 증상, 진단기준이 없으므로 질환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추가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WHO 총회에서도 게임이용장애 관련 의사진행 발언때 미국, 한국, 일본 대표가 모두 입을 모아 '진단 기준에 대한 우려'와 함께 '후속적인 추가 연구의 지속성'을 언급하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국내에서도 각종 게임중독 논문에서 게임중독 진단 척도 기준으로 삼은 IGUESS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IGUESS는 20년 전인 1998년의 인터넷중독 진단 척도 문항을 그대로 번안한 수준으로, 실제로 평소에 게임을 거의 하지않는 사람이 자가문진을 해도 '잠재적 위험군 혹은 고위험군'으로 결과가 나오는 심각한 오류가 내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국게임개발자협회, 한국인디게임협회, 넥슨 노동조합 스타팅포인트, 스마일게이트 노동조합 SG길드, 스마트폰게임개발자그룹 등 5개 단체는 보건복지부 및 중독정신 의학계에 공동으로 반박 성명을 내고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는 학계의 포괄적 지지(컨센서스)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성명서를 통해 수년간 IGUESS의 진단 기준을 기반으로 작성된 논문들의 연구비로 정부 예산 250억 원이 투입된 것이 확인되면서 콘텐츠 업계는 더욱 논문의 신뢰성에 의문을 더하며 게임의 질병화가 객관적인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 사회적 맥락과 밀접하게 교호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놨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99년도에 '스타크래프트'의 선풍적인 인기와 함께 2005년의 '바다이야기' 사태, 그리고 자극적인 주제를 좋아하는 언론 노출 등으로 '게임을 질병'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담론이 만들어졌으며, 이같은 담론이 연구비 지원의 편중과 함께 탑다운 형태로 '게임은 질병'이라고 못박는 형태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 왜 한국은? 유독 게임을 질병화하는데 적극적일까>
이처럼 해외에 비해 한국은 유독 게임을 질병화하는데 적극적이며 편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사회적으로 놀거리가 부족하여, 게임 외에 즐길 거리가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게임에 빠지는 '게임 과몰입' 현상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임으로 문제되는 이들이 많으니 이를 치료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논문이 늘어났다는 주장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웅구 과장은 "서양의 아이들은 게임 말고도 할 것이 많아서 게임에 몰입하는 경우가 적다. 하지만 우리나라 청소년은 게임 밖에는 즐길 '문화'가 없어서 과몰입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물론 게임 과몰입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의 상당수는 게임문제 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도 있는데, 그렇다고 게임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게임의 질병 코드화에 긍정적인 입장을 전했다.
이와 함께 게임의 질병화가 '정신의학계의 적극적인 중독센터 설치 추진'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의 2019년 정신건강복지관련 재원 확충안 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정신건강관련 예산은 복지부 예산의 1.5% 수준으로 1,713억 원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독 치료에 대한 국가 지원금이 부족하고 다른 국가들의 2.8% 기준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때문에 국내의 정신의학계는 예산 부족을 해갈시키기 위해 지난 2013년부터 게임을 포함한 중독치료 센터 건립 등을 '숙원사업'이라 명명하며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상황으로, 그 시작점인 게임의 질병화를 압도적으로 지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콘텐츠업계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3년부터 '게임중독' 지하철 광고를 단행하거나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WHO의 게임 질병화 결정과 동시에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 것 모두 같은 맥락에 있는 행동이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