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의시대 ⑤] 부모의 책임회피, 자녀를 정신 질환자로 만든다

< 지난 5월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72차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된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게임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 2016년에 이미 게임중독의 질병코드화 계획을 포함한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보건복지부 장관 또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WHO가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를 최종 확정하면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만큼 게임업계는 사면초가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다가온 게임 질병의 시대, 국내 게임산업계는 어떻게 대응해야하고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이뤄져야할까. 본지에서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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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회학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피터 콘래드는 '우리는 어쩌다 환자가 되었나'라는 저서를 통해 작은 키, 작은 가슴, 대머리, 완경, 발기부전, 노화 등 개인의 다양성과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 병이되어 치료받아야 할 대상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피터 콘래드는 이렇게 삶의 많은 측면들이 질병이나 질환과 같은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고 치료되는 일련의 과정을 '의료화'라고 정의하며, 사회의 과잉 의료화 문제가 '정상적인 것들의 의학적 정의화', '의학적 사회통제의 확대' 등 다양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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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학분야 환자 급증..과잉의료화 논쟁>

이같은 피터 콘래드의 주장처럼, 과잉 의료화는 현대 보건정신학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일례로 10여년 전에 미국에서는 우울증이 의료 전문가들로부터 만들어진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일상적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의 인간의 감정까지 질환으로 명명하여 불필요한 약물의 처방이 늘어났다는 지적으로, 당시에 과잉의료화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사람들은 "의료 행위를 통하지 않고도 관리가 가능한 행위를 의료화하여 환자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2017년에 영국의 가디언지는 데이비드 힐리 정신 약물학 교수의 '과도한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견과 함께 우울증 치료제 SSRI(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의 처방이 지난 10년 간 두배로 늘었음을 보도한 바 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최근 한국에서도 정신질환 진료건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우울증 환자의 수는 2014년 58만 명에서 2015년 60만 명, 2016년 64만 명, 2017년 68만 명, 2018년 75만 명으로 매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으며,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또한 2002년에 1만6천여 건에서 2011년에 5만6천여 건으로 10년 사이에 4만 건이 넘게 증가했다.

< 자녀를 정신질환자로..ADHD 과잉의료화 논란>

이처럼 국내에서 정신질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가장 아이들을 '정신질환자'로 만들고 있다고 알려진 ADHD 또한 과잉 의료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2018년 6월에 발간된 과학잡지 '스켑틱' 14호에서는 'ADHD, 질병과 마케팅사이'라는 미국 링컨메모리얼대학 해부학 교수 조너선 리오의 논문을 통해 ADHD의 과잉 의료화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가한 바 있다.

ADHD 의료화 논란
ADHD 의료화 논란
스켑틱 14호는 ADHD가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과한 행동과 정상적 활동의 경계선이 애매하다."며 의학적으로 부실하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꼬집었으며, ADHD를 유행시킨 앨런 자메킨 박사의 1993년 논문에서 그 스스로가 'ADHD 청소년과 정상 청소년 사이에서 전반적인 뇌 대사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은 현상'이 있었음을 보고하기도 했다며 근거가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조너선 리오 교수는 ADHD를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도록 하기 위해 제약회사들이 관련 단체들에게 100만 달러의 지원금을 제공하는 등 'ADHD 불안 마케팅'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같은 ADHD의 사례는 피터 콘래드의 기존 주장과 완전히 맞아떨어진다. 피터 콘래드는 저서를 통해 "질병을 명명하는 것은 의사들과 의료전문가들이지만, 약을 판매하기 위한 제약회사의 마케팅과 이를 소개하는 언론, 그리고 삶의 난제들을 약으로 해결하려는 참여인 등등 의료화를 이끄는 주체들과 동력이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 게임 질병코드도 정신병자 양산하나..부모의 입장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인지, 임시방편의 패치로 다른 문제들을 감추고 있는것인지 질문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 조너선 리오 교수의 말처럼, WHO의 게임 질병코드화에 대해서도 과잉 의료화 현상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게임과학포럼 이경민 교수
게임과학포럼 이경민 교수

'게임과학포럼'을 운영하고 있는 이경민 서울대의대 교수는 아이가 부모와 갈등이 있을 수도 있고, 학업의 압박 등 사회적으로 다양한 원인이 있을텐데 그것을 '게임 중독 때문'이라고 압축시켜 버리면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할 것이라면서, 특히 '부모의 책임회피'가 자녀를 정신병자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정에서의 여러가지 문제를 '게임 때문'이라고 한정하면 부모는 책임이 회피되고 의사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 서로 편해질 수 있지만, 정작 자녀는 정신병자라는 꼬리표와 함께 평생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과학포럼 이경민 교수
게임과학포럼 이경민 교수

실제로 어린시절에 게임을 지나치게 좋아했다는 이유로 심각한 정신장애가 있는 것처럼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이 지난해 8월에 진행한 '게임 장애 질병코드화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게임중독 질병코드화로 게임중독자, 정신병 등 낙인이 찍힐 것을 우려하는 일반인이 59%에 달했으며, 게임업계 종사자도 61.3%가 같은 우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강경석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본부장은 지난 6월28일에 열린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에서 "만약 국내에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가 도입되면 10대 청소년 중 많은 수가 게임장애 판정을 받고 정신질환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될 것."이라며 "이러한 꼬리표는 향후 대학 진학이나 취업 시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 청소년들, 정신병자 낙인으로 큰 피해볼 수 있어>

국내에서 게임이 질병화 되면 가장 큰 피해자는 청소년들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과잉 의료화의 진행이 의학계에 돈을 안겨주지만 청소년에게는 근본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고 '정신병자'라는 꼬리표만 붙이게 할 수 있다는 추측이다.

게임중독협회 염춘영 고문은 "우리나라에는 정신병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만 받았다고 하면 문제가 있다는 취급을 한다."고 밝혔으며, 황성익 한국모바일게임협회 회장은 "WHO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한국 사회에서는 게임을 조금 많이 하면 이를 질병으로 취급할 여지가 크다."며 게임 질병화에 대해 경계했다.

게임이 질병이라는 사회 인식과 함께 청소년들에게 게임을 원천 차단하면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

서울대 이경민 교수는 "인간은 태어나면서 각 단계마다 필요한 과제가 있다. 과제를 습득하기 위해 무언가에 몰입을 해야 뇌가 발달한다. 친구들이 하니까 따라하기도 하고, 경쟁 압박을 받기도 하고. 복합적이고 중추적인 몰입을 해야하는데, 과잉 의료화가 게임을 원천 차단시켜 오히려 아이들이 발달할 기회를 배제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정신의학계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조성민 마음산책 심리상담센터장/심리학박사는 전자신문 기고를 통해 "정신의학계는 게임장애 질병목록화를 통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정신질환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 말고 도대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대표 또한 지난 5월21일에 자신의 SNS를 통해 "정신과 의사들은 많은 사람들을 환자로 만들어야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많은 학부모들이 동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자신의 자녀를 정신병 환자로 규정하고 정신과 의사에게 넘겨 아이의 상처를 더욱 키울 학부모들이 얼마나 될까."라는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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