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의 시대⑦] 질병 낙인 찍힌 게임, TV광고도 퇴출되나?
< 지난 5월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72차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된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게임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 2016년에 이미 게임중독의 질병코드화 계획을 포함한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보건복지부 장관 또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WHO가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를 최종 확정하면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만큼 게임업계는 사면초가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다가온 게임 질병의 시대, 국내 게임산업계는 어떻게 대응해야하고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이뤄져야할까. 본지에서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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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구분하면서, 게임업계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대부분의 청소년은 물론 많은 성인들도 즐기고 있는 대표적인 놀이 문화인 게임에 질병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게임을 우선시 하는 현상이 1년 이상 지속될 경우 등 몇가지 단서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게임업계는 아직 충분한 연구와 데이터 등 과학적인 근거가 확보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질병코드가 발급됐다는 것에 당혹감을 표하고 있다.
이번에 변경된 개정안은 유예기간을 거쳐 2022년부터 적용되며, 국가별로 반영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현재 국내 게임 시장은 13조원으로 세계 4위 수준인 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게임을 육성산업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문체부에서 게임 질병 코드 결정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 등이 워낙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늦어도 2026년에는 반영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게임 자체를 질병화 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게임 중독 현상을 질병화 하는 것이라며, 과거 신의진법과 손인춘법 발의 시절보다 한발 물러선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게임업계에서는 게임 질병 코드 발급 자체가 국내 게임 산업의 쇠퇴를 의미한다고 극명하게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게임 매출에서 일정액을 걷어 게임 중독 치료에 쓴다는 게임 중독세 도입 논란은 보건복지부에서 검토한 적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WHO 이전에도 이미 게임업체에게 매출 1%를 걷겠다는 손인춘법이 발의됐던 것처럼, 중독 물질로 낙인 찍히는 순간 어떤 규제가 나오게 될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마약, 술, 도박, 담배 등 4대 중독 물질에서 불법인 마약과 도박을 제외한 술과담배에는 판매액에 특별 세금이 포함되어 있으며, 광고 규제 등 많은 제약이 붙어 있다.
주류의 경우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공중파 TV 광고는 물론, DMB, ITPV, 데이터 방송 등 모든 방송매체에 광고가 금지되며, 알코올 성분 17도 이상의 주류는 아예 광고를 할 수 없다.
또한, 2020년까지 24세 이하의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광고 모델로 출연 금지, 광고 모델의 음주 행위 제한 등 주류 광고 제한 확대를 준비중이다. 술을 마시면서 내는 ‘캬’ 같은 감탄사도 음주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며 제한된다.
게다가 주류업체들이 규제가 심한 방송을 벗어나 먹방 유튜브나 SNS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자, 먹방까지 규제해야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담배는 더 심하다. 과거에는 드라마, 예능에서도 등장인물들이 담배 피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볼수 있었지만, 현재는 지상파에서 자체적으로 청소년이 접할 수 있는 미디어에서의 흡연 장면 노출을 금지하고 있으며, 외국정기간행물 등 일부 매체를 제외하고, TV, 지하철 등 모든 미디어에서 담배 광고가 제한된 상태다. 심지어 담배 판매점 내에 광고물을 전시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그것이 외부에서 보이게 설치하면 위법이 된다.
게임 질병 코드가 도입되면 게임도 이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될 확률이 대단히 높다. 이미 보건복지부에서는 지난 2016년에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알코올, 인터넷과 게임, 도박, 마약을 외래치료가 필요한 4대 중독자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4대 중독 물질은 알코올, 담배, 도박, 마약을 얘기하지만, 보건복지부에서는 담배보다 인터넷, 게임 중독을 더 위험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면 청소년에게 많이 노출될 수 있는 광고 매체에서의 게임 광고는 모두 제한될 수도 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TV 광고는 물론, 버스, 지하철 광고, 심지어 네이버 등 포탈 광고도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청소년 중독을 막기 위해 술과 담배의 광고 제한 정책이 생겼듯이, 청소년들이 게임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노출을 최대한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24살 성인이 술 먹는 장면도 불편하다면서 법으로 막겠다고 나선 상황인데, 게임에 관해서는 비이성적으로 변하는 학부모들이 자녀들이 보는 TV에서 게임 광고가 나오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리가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것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술과 담배 광고 제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음주, 흡연률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그만큼 규제 강도가 계속 세지고 있다. 청소년들이 놀이문화라고 할만한 것이 게임 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규제를 한다고 게임 이용률이 줄어들 일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규제 강도만 점점 더 세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실제로 정부가 2025년까지 모든 실내흡연실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담배와의 전쟁을 선포한 상태이지만, 오히려 청소년 흡연율은 2016년 6.3%에서 2018년 6.7%로 0.4% 증가했다.
또한,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 게임사들을 위한 다양한 진흥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게임에 질병이라는 낙인이 찍힌 상황에서 진흥 정책이 유지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천만 다행으로 광고 제한까지 가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광고가 필요해지는 만큼 마케팅 비용 상승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상황이면, 한국에서 게임을 서비스하는 것 자체를 재고해봐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좋은 게임을 만들어도 소비자들에게 알릴 길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정상적인 게임들은 규제를 피해 해외로만 나가게 되고, 국내에서는 법을 신경 쓰지 않은 외산 게임들만 남게 될 수도 있다. 아무런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무의미한 규제가 국내 청소년들을 더 안 좋은 게임 환경에 노출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