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의 시대 ⑧] 게임 질병코드 해외 반응, 그리고 우리는
< 지난 5월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72차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된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게임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 2016년에 이미 게임중독의 질병코드화 계획을 포함한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보건복지부 장관 또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WHO가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를 최종 확정하면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만큼 게임업계는 사면초가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다가온 게임 질병의 시대, 국내 게임산업계는 어떻게 대응해야하고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이뤄져야할까. 본지에서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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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등재하자 전국이 시끌시끌하다. WHO가 국제질병분류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에서 '게임이용장애'에 만장일치로 질병 코드 '6C51'을 부여했다.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진 못했지만,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현장 분위기는 다음과 같다. '게임이용장애'에 관련된 의견을 낸 곳은 미국, 한국, 일본 3개국이었다. 미국은 게임이용 장애와 관련해 그 범위와 정도에 관해 추가 연구가 필요한 영역으로 포함된다고 봤다. 게임이용장애가 그 자체로 조건이 되는지 기타 조건의 체계적인 조건인지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게임이용장애'의 포함은 과도한 게임 플레이를 예방하고 치료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의학적 개입을 결정할 때에 주의 깊은 접근이 요구된다고 이야기했다. 일본의 경우 '게임이용장애'의 포함은 과학적 증거 발전을 시킬 것이라며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게임이용장애'가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도 게임이 질병을 유발하는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기보다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뜻에 가까웠다는 후문이다.
어찌 됐든 5월 WHO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는 질병 진단 분류로 등재됐다. 이는 전 세계 게임업계도 반응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한국, 남아공, 브라질 대표 등은 세계보건기구(WHO) 회원국들에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에 '게임이용장애'를 포함하는 결정을 재고해 줄 것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한국게임산업협회협회 관계자는 "미국, 호주, 캐나다 등은 게임을 4차 산업혁명의 진보된 기술 중 하나로 보고 있며 영국은 비디오게임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며 게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 선진국은 질병코드화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게임의 선용과 긍정적인 영향력에 관한 연구 역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중립적인 입장"이라 밝혔다.
이어 "의료계가 무조건 게임이용장애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며, 자신들의 사회문화에 맞게 상호 논의를 통해 도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므로 언론 등에서는 그렇게 큰 관심을 주지 않고, 이로 인해 특별히 제기되는 이슈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보다 국내 상황은 훨씬 뜨겁다. 지난 5월 이후 연일 게임이용장애와 관련된 세미나 기자간담회는 물론 게임업계와 의학계 등에서 반대선언, 지지 선언 등이 이어지고 있다. 연일 이슈를 몰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더 큰 소리가 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외 사례를 꾸준히 찾아보고 대응하고 있는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심재연 이사는 "미국 등 해외 업계를 확인해 봤는데 아직 큰 반응은 없다. 중국은 WHO 질병코드 이전부터 게임에 대한 규제가 워낙 심했다. 일본도 이미 진작에 게임과 관련해 홍역을 앓았던 바 있다. 우리나라가 유독 시끄러운데 이는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꾸준히 게임에 대해 논란일 일으켜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잠시 시간을 지난 2016년 말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한국게임전문미디어협회(KGMA)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토크 콘서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당시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산업진흥단 김일 단장이 한 마디를 꺼냈다.
게임을 포함한 인터넷 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려 했던 보건복지부가 내년(2017년)에도 이를 지속할 전망이며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할 것이라 이야기를 한 것이다. 김일 단장은 국제질병분류(IDC)에서 게임이 질병인지에 대한 결과가 내년 8월에 나오기 때문에 이를 역산해서 논의하고 상의해야 할 사항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어 김 단장은 "IDC는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DSM-5)에 비해 영향력이 약하긴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이를 근거로 게임에 질병 코드를 부여하고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리고 2019년 5월 김 단장의 이야기대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정신의학회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DSM-5)에서는 '게임이용장애'를 섹션3를 통해 소개했다. 다만,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이라고 봤다. 질병으로 판단하지 않은 상황이다. DMS-5는 WHO마저 질병 진단의 기준으로 삼을 정도다.
하지만, WHO는 2018년 6월 게임장애를 질병코드로 포함한 ICD-11을 사전 공개했다.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연구 논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실상 번역이나 각국이 코드 도입을 준비하는 과정을 위해 사전 공개하는 것을 고려하면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등재는 확정적이었다. 2019년 5월 WHO 총회에서 많은 전문가가 예상한 것처럼 '게임이용장애'가 ICD-11상에 진단 기준으로 최종 등재됐다.
194개 회원국을 보유한 WHO를 권위를 등에 업고 보건복지부가 움직일 것이라는 예상대로 그대로 들어맞았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018년 국감 자리에서 "WHO가 게임이용장애를 확정하면 이를 받아들이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13년 학국중독정신의학회가 숙원사업이라고 표현한 게임 질병의 시대가 가까워졌다. 당시에는 게임중독법 또는 신의진법으로 불리는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이 발의되어 있었다. 손인춘 법으로 불리는 치유센터 설립을 위해 매출 1%를 징수하자는 인터넷 게임 중독 예방 및 치유의 지원에 관한 법률안도 나왔다.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는 차라리(게임보다) 마약을 빼겠다는 교수의 발언이 나왔을 정도다.
이미 2011년 청소년의 수면을 앞장세워 시행한 강제적 셧다운제로 이미지는 물론 산업적으로도 큰 피해를 받은 게임업계는 크게 반발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셧다운제 규제의 경제적 효과분석'에 따르면 셧다운제로 인해 국내 게임 산업의 내수시장은 셧다운제 실시 이후 2013년 1,419억 원, 2014년 1조 200억 원이 감소하여 총 1조 1,600억 원 규모의 시장 위축 효과를 보였다. 셧다운제 이후 게임 관련 학과의 입학률도 떨어졌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경험한 게임업계는 크게 반발했고, 업계에서 힘을 모아 게임은 중독물질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도 힘을 더했다. '게임중독법'은 해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으며, 보건복지부의 중독 광고는 해외에서도 조롱거리가 됐다. 결국, 중독법은 19대 국회에서 20대 국회로 넘어가면서 폐기됐다.
게임업계는 이처럼 계속된 정치권의 공세와 이익을 앞세운 협·단체의 공격을 받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업계에 WHO발 핵폭탄이 떨어진 것이다. 업계가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의학계, 학계 등 각계에 걸쳐 반대도 찬성도 만만치 않은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지금도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의견이 팽팽히 갈리고 있다. '게임이용장애'는 TV, 라디오 토론, 인터넷 여론 등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게임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질병 코드에 반대를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복지부는 찬성을 외치고 있다.
관계부처 관계자의 이야기는 하나하나 기사화될 정도로 크게 주목 받았다. 워낙 큰 사항이 됐다.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한 협의체를 구성해 '게임이용장애'에 대해 논의의 장이 마련될 것이라 밝힌 이후 잠시 조용해진 상황이다.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이하 ICD-11)은 오는 2022년 1월부터 발효된다. 다만, WHO의 ICD 자체가 권고이며, 의무사항은 아닌 만큼 각 국가마다 내부적인 상황과 판단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수용 여부를 결정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국내의 경우 2025년도(26년 시행) 제9차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KCD-9)에서 논의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