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에픽 살짝" 묻은 3배 진한 환각 액션 '보더랜드3'
세상 진지함이라고는 단 1도 없는 게임 보더랜드의 최신작 보더랜드3가 지난 9월 13일 정식 출시됐다. 전작 출시 부터 무려 6년 만에 등장하는 정식 넘버링 시리즈 이기도 하고, 매년 패키지 세일 시즌마다 GOTY(올해의 게임) 버전 세일부터 번들 세일 등 엄청난 세일 공세를 펼쳐 유저들에게 매우 익숙한 보더랜드 시리즈의 후속작이라는 점에서 출시일 공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자막 한글화는 물론, 무려 음성 한글화라는 파격적인 서비스로 엄청난 이슈가 되었지만, 워낙 제정신이 아닌 아포칼립스 세계를 자랑하는 작품인 만큼, 수위 높은 찰진 대사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반신반의한 반응이 이어지기도 했던 것이 사실.
직접 만나본 보더랜드3는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씻을 정도로 완벽한 음성 한글화와 찰진 번역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강화된 그래픽과 보다 다양해진 총기들 그리고 싸이코라는 단어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칼립소 쌍둥이에 맞선 여정을 더욱 맛깔나게 즐길 수 있는 수작이었다.
이번 보더랜드3는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혼돈, 파괴, 망가악 수준의 범죄자 행성 판도라를 벗어나 다른 행성으로 이동할 수 있다. 물론, 고속 이동은 정해진 포인트에서만 가능하며, 해당 포인트는 맵의 초입 혹은 중요 NPC가 있는 베이스캠프 그리고 지역 보스를 처치하고 난 이후 열리는 장소에 주로 배치가 되어 있기 때문에 맵 이곳저곳을 빠르게 돌아다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시간이 지나면 적들이 다시 생성되는 게임의 특성상 지나온 길을 다시 처치하면서 가야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이동해야 한다.
게이머는 총 4개의 클래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공격 무기에 특화된 것은 물론, 거대한 병기를 소환할 수 있는 거너 '모즈'와 다양한 사이킥(초능력)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사이렌 '아마라', 특정 동물을 소환해 함께 싸울 수 있는 비스트 마스터 '플레크'(이름이 51글자가 넘는지라 줄여서 FL4K라 한다), 그리고 은신과 잠입 전투에 특화된 오퍼레이티브 제인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클래스는 단 한개의 스킬이 겹치는 것이 없이 모두 각자의 고유 스킬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투 스타일이 모두 달라 같은 맵을 해도 다른 전투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본 기자가 선택한 플레크는 동물을 소환해 함께 싸우는 비스트마스터 스킬이 특화된 캐릭터로, 어떤 스킬트리를 타느냐에 따라 근접, 방어, 원거리 등 3종류의 몬스터가 다르게 등장하며, 스킬 선택에 따라 몬스터에 집중하거나 캐릭터 자체 능력에 더 중점을 둘 수 있는 등 전투 스타일을 복합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여기에 캐릭터 스킬은 일정 비용을 지불한 이후 다시 초기화 할 수 있고, 30레벨 이후는 별도의 스킬을 추가로 선택할 수 있어 이리저리 자신에게 최적화된 스킬 트리를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독특하기로 소문난 보더랜드의 카툰 렌더링 스타일의 그래픽은 여전히 색감이 풍성하면서도 보다 깔끔해진 모습이었다. 물론, 대미지+속성 공격 등 수 많은 액션 효과가 한꺼번에 표시되는 지라 화면이 지저분할 정도로 어지러워진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폭탄들고 같이 죽겠다고 덤비거나 머리를 쏘면 해골만 남아 몸이 커지는 미치광이들이 날뛰는 세계관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
아울러 우주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만큼 세밀하게 구성된 우주선 하이페리온의 내부나 맵 곳곳에서 풍기는 세기말 적인 분위기 미래 도시, 황폐화된 정글, 티벳 사찰 같은 지역 등 맵 디자인도 매우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것도 이 게임의 특징 중 하나였다.
보더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기괴한 컨셉의 총기류들은 이번 작품에서 더욱 다양해지고 더욱 강화된 모습이었다. 게임 내에는 총 9개의 회사에서 제작된 총기가 등장한다.
각 회사들의 총기는 컨셉과 특성이 매우 명확한데, 제이콥스 사의 총기는 대미지는 확실하지만, 장전 수가 적고 캐릭터가 직접 장전하는 볼트 액션 류의 총기로 이뤄져 있으며, 하이페리온 사의 총기는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과 총 자체에 실드가 달려 있고, 코브사의 총은 장전은 없지만, 과열되면 일정 시간 발포를 할 수 없는 등 각자 개성이 매우 뚜렷했다.
이중에서도 성이 넘치다 못해 “이건 뭐지?” 싶을 정도로 독특했던 총기가 많아 총을 단지면 다리가 달려서 걸어 다니거나, 공처럼 튀어서 폭발할 수 있는 등 재장전 특성도 모두 달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물론, "전설 등급의 총기만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도 있겠지만, 보더랜드3 내 적들은 전격, 화상, 독성 등의 속성에 내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고, 어떤 적은 SMG, 어떤 적은 소총 등 각자 취약한 총기도 다르다.
때문에 상황에 맞는 총기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해 본 기자 역시 30레벨 이전까지 같은 총을 30분 이상 사용한 적이 없을 만큼 총기를 파밍하며 실전에 사용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 캐릭터 레벨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총기도 달라지고, 대미지나 특성이 확 올라가기 때문에 30레벨 이전까지는 황금 열쇠로 장비를 뽑기나 룰렛 등으로 가산을 탕진하기 보다 그냥 파밍해서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렇듯 싱글플레이는 요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많은 장점을 지녔지만, 멀티플레이는 엄청난 명성(?)을 자랑하는 에픽 스토어 독점으로 출시된 만큼 일정 레벨 이전까지는 거의 해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클라우드에 저장된 세이브 파일이 없어지거나, 내 컴퓨터의 사양을 몰래 사용하는 등의 일은 없었지만, 퀘스트 매칭을 했더니 이전에 완료한 퀘스트로 이동하거나 내 레벨에 맞지 않는 이후의 퀘스트에 매칭되는 등 매칭 기준이 의아할 정도로 기준이 없었고, 레벨이 들쑥날쑥해 걸핏하면 방이 깨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레벨 연동 시스템을 통해 개별 캐릭터 레벨에 상관없이 전원이 적에게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선전하기는 했지만, 적들의 대미지는 그대로 들어오기 때문에 레벨이 낮은 유저가 매칭되면 전투 진행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는 것도 눈에 띄는 단점 중 하나였다.
더욱이 일종의 레이드 던전이라 할 수 있는 ‘증명의 장’에서 레벨이 낮은 게이머는 거의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수준이고, 시간에 따라 매칭도 상당히 오래 걸려 보완이 필요해 보였다.
여기에 지정된 지역을 소탕해야 다음 퀘스트로 넘어갈 수 있음에도 꼭 한 두명의 적이 맵에서 사라져 퀘스트를 완료할 수 없거나, 퀘스트의 대사가 계속 반복해서 들려 짜증을 유발한 적이 있을 정도로 같은 버그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이러한 단점이 등장함에도 보더랜드3는 분명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게임 플레이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으나 본 기자가 느낀 보더랜드3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최근 게임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광적인 PC(정치적 올바름)에 해당하는 설정이 분명 있음에도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게임 속에 구현해 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NPC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며, 게임을 주도해 가는 캐릭터 모두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들은 각자의 개성, 컨셉, 스토리, 활약이 뚜렷하게 나타나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로 하여금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한 느낌보다는 캐릭터가 가진 힘을 오히려 더해 준 모습이었다.
더욱이 맵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음성 자료를 확인하다 보면 전편부터 등장한 홀랜드 경과 제이콥스 사장은 둘 다 남성임에도 서로 연모하는 관계라고 암시하는 부분이 여기저기서 나오는데, 이 부분은 게임 본편에는 전혀 부각되지 않는다. 음성 자료를 본 이후 둘의 대사가 묘하게 다르게 느껴질 뿐이었다.
멀쩡한 캐릭터를 동성애자로 만들거나 세계 대전에 뜬금없이 페미니즘 요소를 부각시켜 논란이 일어나는 등 무리한 PC 넣기로 비난을 받은 게임이 많았지만, 보더랜드 3는 이러한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 확실한 캐릭터 성으로 당위성을 세우고, 유저가 스스로 캐릭터의 특성을 알아갈 수 있도록 해 전혀 거리낌없이 스토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보더랜드3의 모습은 어떻게 하면 PC 요소를 게임 속에 드러낼 수 있을까 안달하는 개발자들이 한번은 생각해 봐야할 만한 방법이며, 이는 곧 게이머와 개발사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보더랜드3는 다소 열악한 멀티플레이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확실한 재미로 무장한 싱글플레이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패치와 다양한 퀘스트 DLC 등을 예고해 한번 구입하면 계속해서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딛은 상태다. 출시 후 12일 만에 500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량이 말해 주듯 앞으로 보더랜드3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 향후 성적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