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쩌다 독창적이고 재밌는 캐주얼 게임은 다 해외산이 되었나
"소위 한국산 RPG들이 해외 게임의 침략을 막았다는 표현을 쓰죠. 4분기에 나온 '리니지2M', 'V4', '달빛조각사'.. 순위만 보면 설득력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너무 편중된 게 문제에요. 한국형RPG에 질린 게이머들은 결국 해외 게임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어요."
최근 '브롤스타즈' 관련 오프라인 모임에서 한 게이머가 한 얘기다. 이 게이머는 자신이 국산 게임을 즐기려고 해도 캐주얼 게임 분야에서는 대안이 없다고 토로하면서, 오히려 '캐주얼 게임은 해외 게임들이 훨씬 재밌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한국 게임의 장르 편중 현상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리니지'로 대표되는 한국형RPG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긴 하지만, RPG 이외에 다른 대부분의 분야들은 해외 게임사들의 게임들에게 힘을 못쓰고 있다.
실제로 구글 플레이 상위 매출 지표를 보면, 한국형RPG를 싫어하는 게이머들은 해외 캐주얼 게임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다.
현재 매출 4위에 위치하고 있는 '라이즈 오브 킹덤즈'는 전략 게임 분야에서 극한의 완성도와 광범위한 콘텐츠로 한국 시장을 석권했으며, 순위가 요동치는 국내 매출 10위권 내에서도 안정적으로 매출 5위권 안에 안착해있다.
11위에 위치한 '클래시오브클랜'과 13위에 오른 '브롤스타즈'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전략적 요소로 수년간 국내 시장을 장악하다시피한 '클래시오브클랜'은 아직도 캐주얼 게임의 상징처럼 게이머들 사이에 오르내리고 있고, 초등학생부터 대학생들까지 캐주얼 게임 수요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브롤스타즈'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석권한 게임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외에도 18위에 랭크된 '라스트 쉘터', 19위 '왕이되는자', 32위 '로드 모바일' 등도 전부 중국산 게임으로, 한국형RPG를 싫어하는 나머지 게이머들에게 호평을 들으며 국내 시장에서 년간 수십~수백억 원의 매출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들 해외 캐주얼 게임들이 더욱 독창적이고 완성도 있는 형태로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게임사들이 '리니지' 형태의 RPG 양산에 몰두하는 가운데, 해외 게임사들은 어떻게든 한국 게임 시장을 뚫어내기 위해 참신하고 재미로 중무장한 캐주얼 분야 개발에 몰두해온 것이다.
때문에 이제 한국 게임사들 입장에서 해외 캐주얼 게임은 '넘사벽' 수준이라고 불리울 만큼 성장했다.
실제로 '라이즈 오브 킹덤' 수준의 전략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한국 게임사들은 거의 없으며, '브롤스타즈'의 경우도 수많은 국산 게임들이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한국 게임사들 중에서 캐주얼 분야에서 이같은 완성도를 갖춘 게임을 개발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곧 출시 예정인 캐주얼 게임 리스트를 봐도 '명일방주'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건 중국산 캐주얼 게임 밖에 없다는 현실이 더욱 기분을 암울하게 만든다.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한국 게임사들이 한국형RPG로 고립되는 동안, 중국을 비롯한 해외 게임사들이 발전된 캐주얼 게임성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 확장 기회를 넓히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동남아 일부 지역에서만 뜨겁게 타오르는 한국형 RPG과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해외 캐주얼 게임들. 몇 년에 걸쳐 게임성을 발전시키고 있는 중국과 해외 캐주얼 게임사들이 부러워지는 것은 혼자만의 착각인 것일까.
다만, 그래도 한국 게임사들에 대해 희망이 전혀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 게임사들이 해외 게임사들보다 우위에 있는 점이 아직 있다. 바로 기술력이다.
중국을 비롯해 해외 게임사들이 유니티나 언리얼 엔진을 잘 활용하는데 그치는 동안, 한국 게임사들은 엔진 자체를 개량시키면서 더 좋은 퍼포먼스와 표현력을 늘리는데 주력해왔다. 아예 자체 엔진을 개발중인 펄어비스 같은 회사도 있다.
때문에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국 게임사들이 글로벌 시장 향으로 방향을 급선회한다면 아직 기회는 있다고 본다. 물론 몇 년에 걸쳐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지금이라도 방향을 선회하면 답은 나온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술자리를 가졌던 한 대학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이제는 캐주얼 게임 분야에서는 오히려 한국 게임사가 약세인 것을 인정하고 해외 게임사들의 강점을 배워 도전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갈수록 국경이 사라지는 시대, 한국 게임사들이 잘못된 단추를 다시 맞춰 끼워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마지막 로열타임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