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몰입감 있는 스토리, 거북한 1944년대” ‘13기병방위권’
‘프린세스 크라운’, ‘오딘스피어’, ‘드래곤즈크라운’ 등 수려한 캐릭터와 독특한 세계관 그리고 수준급의 액션과 보기만해도 침 넘어가는 기가 막힌 음식 표현으로 유명한 일본의 게임 개발사 바닐라웨어에서 또 하나의 독특한 작품을 내놨다.
바로 지난 19일 세가퍼블리싱코리아를 통해 정식 한글화로 출시된 ‘13기병방위권’이다. 이름부터 외우기 어려운 이 게임은 그 동안 바닐라웨어가 출시한 게임의 총 집합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방대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독특한 스토리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일제시대인1944년부터 일본의 황금기였던 1985년 그리고 2025년과 2105년에 이르는 과거와 미래 시대의 이야기가 공존하는 것은 물론, 이제 갓 청소년기에 접어든 소년 소녀들이 나체(!)로 거대 기병에 탑승해 종말을 막고자 싸운다는 기괴하면서도 독특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13기병방위권’의 그래픽은 ‘씨도둑은 못한다’는 속담처럼 누가 봐도 “이거 바닐라웨어에서 만들었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색감과 캐릭터 특성이 매우 뚜렷하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게임에는 총 13명의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개개인의 특징과 캐릭터성이 뚜렷해 이름은 까먹어도 캐릭터는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넘친다.
여기에 따뜻한 파스텔톤의 배경과 캐릭터 움직임은 기존 바닐라웨어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세밀하게 구현되어 있어 시나리오 컷 신 연출이나 배경 그래픽이 매우 수준급으로 뛰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모든 것이 파괴된 미래 세계의 암울한 모습과 따스한 햇빛을 가득 품은 배경과 평화로운 일상을 그려낸 과거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립되어 있는 것도 인상적인 것 중 하나다.
게임은 크게 배틀모드와 13명에 달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며 게임의 스토리를 파악할 수 있는 ‘회상편’, 거대한 병기를 타고 싸우는 전투를 진행할 수 있는 ‘붕괴편’ 등으로 나뉘어 있다.
먼저 붕괴편은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전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게임 내 전투는 점과 선으로 이어진 시뮬레이션에 가까운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상대 병기들의 진입을 막고 아군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캐릭터들이 조종하는 기병은 근접, 원거리, 공중 유닛 등으로 나눠져 있고, 각 기병들은 자신들의 클래스에 맞는 다양한 스킬을 지니고 있다. 아울러 미션을 진행하면서 획득하는 포인트를 통해 새로운 스킬이나 기본 능력치를 높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몇몇 주력 캐릭터를 육성하는 것이 편리하다. 물론, 스테이지에 따라 출전하는 캐릭터들이 제한되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어 무턱대고 한 캐릭터에 올인하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
회상편의 경우 제목과 같이 총 13명에 달하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이벤트와 인 게임 플레이의 경계가 모호한 바닐라웨어의 게임 답게 게임 조작과 이벤트가 거의 동시에 이뤄지며, 인물들의 간의 상호작용 혹은 단서를 찾아 이를 적용시키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게임 내 스토리에 핵심 키를 쥐고 있는 시모노 히로와 그를 맹목적으로 연모하는 야쿠시지 메구미, 1944년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시카와 카이토와 미래시대에서 기억을 잃고 돌아온 세키가하라 에이 등. 각 시대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지니고 서로 다른 시대로 이동하는 이야기는 마치 모든 단서가 한 곳으로 이어지는 추리 소설처럼 게임 후반부로 치달을 수록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문제는 스토리는 뛰어나나 캐릭터가 13명이나 되다 보니 집중하기가 어렵다는 것에 있다. 이 게임은 캐릭터 간의 관계가 상당히 얽히고설켜 있고, 미래의 인물들과 과거의 인물들이 시공간을 오고 가는 멀티 유니버스적인 이야기 구도를 지니고 있다.
더욱이 오딘스피어와 같이 한 캐릭터마다 짧막한 스토리가 이어지고 다음 캐릭터로 이어지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게임을 하다 보면 소설을 읽다가 캐릭터 설정이 생각이 안나 다시 앞면을 뒤져보는 것처럼 “이 녀석이 누구더라?”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다.
물론, 게임을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는 이들은 크게 상관이 없지만, 다른 일을 하다가 짬을 내어 게임을 즐기는 직장인들에게 이러한 구조는 게임에 집중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바닐라웨어 역시 이점을 파악하여 ‘탐구’로 설정 자료 혹은 이벤트를 다시 확인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해놨지만, 이러면 또 플레이타임이 길어지게 된다.
더욱이 여성 캐릭터의 경우 기병을 부르는 표식이 무언가를 들춰야 하는 부위에 있기도 하고, 기병에 탑승한 캐릭터는 모두 나체(!)라는 점에서 옆에 있는 이들에게 보여주기 힘든 장면이 더러 연출되기 때문에 유부남들은 거실에게 즐기기 쪼금 낯부끄럽기도 하다.
앞서 소개한 대로 스토리는 매우 훌륭하나 1944년의 이야기를 매우 거북하게 다가온다. 이미 미국에게 밀려 두 번의 원자폭탄 폭격을 앞두고 있는 시기를 다루고 있는 1944년 스토리는 기병을 제작해 미국에게 반격한다는 민감한 내용이 등장한다.
가상 역사를 다룬 SF 작품인 만큼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이해하나 민감해질 수 있는 일제시대를 굳이 넣은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 더욱이 도쿄 대공습에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되었다거나, 나라(일제)를 위해 활약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등의 연출은 다른 곳은 몰라도 전범국인 일본에서 그려낼 이야기는 아니다.
마치 뛰어난 언변으로 배꼽 빠지게 하던 코메디언이 갑자기 건드려서는 안될 부분을 건드려 정색하게된 관객이 된 느낌. 13기동방위권을 플레이한 본 기자의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