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대신 액션에 집중. 엘리온의 변화가 통했다
카카오게임즈와 크래프톤의 야심작 에어가 콘텐츠뿐만 아니라 게임명까지 엘리온으로 바꾸는 과감한 결단으로 극적인 반전을 이끌어냈다.
카카오게임즈와 크래프톤는 지난 4월 1일 에어의 게임명을 엘리온으로 변경하면서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으며, 4월 11일 서포터즈 대상으로 사전체험 행사를 진행하면서 확 바뀐 모습을 공개했다. 비록 12시간만 진행된 짧은 테스트였지만, 방향성을 잃고 갈팡질팡하던 예전 에어의 기억을 지워버리기에는 충분했다.
크래프톤이 블루홀 시절이던 2017년 지스타에서 처음 공개한 에어는 아이온으로 유명한 김형준PD를 필두로 유명 개발진을 다수 투입한 야심작이다. 제목을 에어로 결정할 만큼 공중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전투를 핵심 콘텐츠로 내세웠으며, 첫 공개 이후 2번에 걸쳐 진행된 CBT에서도 극초반부터 공중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목을 받았다.
다만, 문제는 가장 큰 핵심으로 내세운 공중전이 기대만큼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들여 만든 공중전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세계관이나 게임의 흐름에 익숙해지지 않은 초반부터, 조작이 난해하고, 생각만큼 박진감도 느껴지지 않은 공중전투를 강요하다보니, 게임에 몰입하기도 전에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
또한, 다양한 던전과 생활형 콘텐츠, 그리고 하우징 시스템 등 여러 가지 즐길거리들은 많았지만, 두서없는 콘텐츠 배열로 인해 무엇을 먼저 즐겨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등 세부적으로 봤을 때 괜찮은 부분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 많은 편이었다.
2번의 테스트를 통해 여러 가지 피드백을 얻은 개발진들은 이번에 엘리온으로 변경하면서, 기존의 핵심 콘텐츠였던 공중을 버리고, 액션의 재미에 집중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정확히는 공중을 아예 버린 것은 아니지만, 공중 관련 콘텐츠를 전부 중반부 이후로 미루면서, 초반에는 오로지 전투의 재미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번 사전 체험 이벤트에서 공개된 버전에서 가장 큰 변화가 느껴지는 부분은 논타겟팅 전투로의 변신이다. 기존에는 기본 공격은 타겟팅이고, 스킬은 논타겟팅이 주가 되는 혼합 방식의 전투를 선택하면서 전반적으로 전투의 템포가 느리고, 답답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논타겟팅 전투로 완전히 변신하면서, 여러 마리의 몬스터를 몰아서 사냥하는 속도감 있는 전투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이전 테스트와 비교하면 전투 체감 속도가 두배 이상 빨라진 느낌이다.
캐릭터마다 약간의 전투방식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적의 공격을 보고 피하면서 후방을 잡아 공격을 퍼붓는 보다 적극적인 전투를 즐길 수 있다보니, MMORPG보다는 핵앤슬래시에 더 가까운 액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논타켓팅 MMORPG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는 테라의 뒤를 잇는 게임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모습을 드디어 찾은 느낌이다.
각 캐릭터별로 24개의 전용 스킬을 가지고 있지만, 한번에 세팅할 수 있는 스킬은 9개로 제한됐다. 실시간으로 빠르게 전투가 진행되다보니, 효율적인 스킬 사용을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다.
한번에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의 수는 줄었지만, 유물과 룬스톤, 룬특성 시스템을 통해 스킬의 다양성을 살렸다. 같은 스킬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유물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스킬의 특성이 달라지고, 룬특성과 룬스톤의 선택에 따라 캐릭터의 성향까지 달라지는 구조다. 디아블로3에서 같은 스킬이라고 하더라도 룬을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전투 스타일이 달라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기존에 에어 CBT 시절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었지만, 관련 유물을 획득해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유물력 수치만 충분하면 자유롭게 선택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변경됐기 때문에, 훨씬 자유롭게 여러 가지 세팅을 실험해볼 수 있게 됐다.
덕분에 PVP 관련 콘텐츠가 예전에 비해 훨씬 빛이 나는 느낌이다. 과거에는 느린 전투 템포로 인해 컨트롤 실력으로 인한 차이를 보여주는게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전부 논타겟팅 전투이기 때문에 컨트롤 실력에 따라 불리한 체력 상황에서도 상대를 농락할 수도 있다.
논타겟팅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난이도가 너무 높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AI와 상대하는 훈련장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세팅을 연구하고, 악령의 숲, 격전의 협곡 등 다양한 형태의 PVP 콘텐츠로 실전 감각을 익혀서, 결국 대규모 RVR까지 도달하게 되는 흐름을 통해 엘리온을 즐기는 이들이 실시간 대결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현재, 과거를 왔다 갔다 하는 갈팡질팡 스토리로 이용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세계관은 속도감 있는 초반부 진행을 위해 살짝 변경됐다. 검은 사도의 습격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경쟁한다는 큰 흐름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검은사도의 습격 부분을 과감히 축약하고, 두 진영으로 갈라진 이후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으로 변경했으며, 시점도 검은사도 습격 이후 100년으로 설정하면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진영 분쟁에 설득력을 더했다.
물론, 속도감 있는 초반부를 위해 스토리를 너무 축약했기 때문에 세계관이 잘 이해가 안되기는 하지만, 죽을 뻔한 위기에서 힘을 합쳐 싸우던 사람들이 10년만에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가 되었다는 설정을 보는 것보다는 낫다. 이번 테스트에서는 스토리가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주인공이 사라졌던 100년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순차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면 향후 두 진영의 소속감이 더 깊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2시간으로 제한된 테스트 시간 때문에, 달라진 엘리온의 모습을 모두 경험해보기는 어려웠지만, 사전 체험 이벤트에 참여한 대부분의 테스터들이 확실히 이전 테스트 때보다 개선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 알던 그 게임이 맞냐” “개발진이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 같다”라는 반응까지 나올 정도다.
가장 큰 특징이었던 공중전이 사라지면서 다른 MMORPG와 차별화된 재미가 없어진 느낌이라는 아쉽다는 반응도 있기는 하나,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차별점은 오히려 단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2번의 테스트를 통해 경험했으니, 우선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어린 새가 처음부터 날려고 하면 절벽에서 떨어져 죽기 마련이다. 우선 날개가 커질 때까지 지상에서 충분히 성장 기간을 가지고, 추후 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그 때 날개를 펼치면 된다. 엘리온이 그동안 많은 시행 착오를 겪었지만, 이번 사전 체험 테스트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확신이 생겼으니, 이대로 꾸준히 잘 성장할 수 있다면 카카오게임즈와 크래프톤이 기대하는 화려한 날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