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들어와도 고객이다. 사라져 가는 독점 전략

누구나 반할 수 밖에 없는 매력적인 게임을 자기들만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은 플랫폼 입장에서 최고의 무기가 된다.

과거 후발 주자였던 플레이스테이션1이 시대를 뛰어넘는 파괴력을 선보인 파이널판타지7을 앞세워 안방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던 것처럼, 강력한 타이틀은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용자들을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파이널판타지7
파이널판타지7

현재 글로벌 다운로드 플랫폼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스팀은 카운터스트라이크, 도타2 등 자사의 핵심 타이틀들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지금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으며, 새롭게 다운로드 플랫폼 시장에 뛰어들어 주목받고 있는 에픽게임즈 역시 포트나이트의 전세계적인 성공에 힘입어 새로운 플랫폼 구축에 나설 수 있었다.

다만, 요즘 들어 플랫폼 독점이 점점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소니, 닌텐도 등 콘솔 플랫폼과 게임 개발력을 모두 갖추고 있는 곳들은 기기 판매량을 확보하기 위해 여전히 강력한 독점 라인업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그 외의 게임사들 입장에서는 굳이 고객들의 유입을 특정 플랫폼으로 제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스팀의 레트로 입문으로도 좋은 크로노
트리거)
(스팀의 레트로 입문으로도 좋은 크로노 트리거)

콘솔 게임 개발사들은 동작 인식 등 특정 기능을 활용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플레이스테이션, XBOX, 닌텐도 스위치 멀티플랫폼 발매가 기본이 되고 있으며, 과거보다 이식 작업이 간단해지면서 PC 버전 판매도 기본으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요즘은 하드웨어가 고성능화되어 가면서 기기 구입 비용이 점점 비싸지고 있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는 여러 플랫폼을 구입하기 보다는 자신이 가진 플랫폼을 최대한 활용해서 게임을 즐기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고 있다.

즉, 게임사 입장에서는 아무리 인기 있는 플랫폼이라고 하더라도, 독점 권한을 주기 보다는 최대한 많은 플랫폼으로 출시하는 것이 고객 확보에 더 유리하다. 소니나 MS, 닌텐도같은 플랫폼 홀더가 아니라면, 독점작으로 선보이는 것이 게임사 스스로가 판매량을 억제하는 바보같은 행동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오직 플레이스테이션에서만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인기 시리즈였던 세가의 용과 같이 시리즈가 PC에 이어 XBOX로 발매된 것이나, 마찬가지로 플레이스테이션 인기 시리즈였던 아틀라스의 페르소나 시리즈가 닌텐도 스위치, PC로 발매된 것은 시대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페르소나4 더 골든
페르소나4 더 골든

콘솔이야 독점이 기기 판매량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만큼, 서드파티 개발사들의 멀티 플랫폼 전략과 플랫폼 홀더의 독점 전략이 공존하는 상황이지만, PC게임 쪽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스팀이 대형 플랫폼으로 자리잡으면서, 여러 게임사들이 자사의 주력 작품들을 무기로, 독자적인 다운로드 플랫폼 구축에 나섰지만, 현재는 다운로드 플랫폼의 경계가 거의 무너지면서, 같은 게임을 다양한 다운로드 플랫폼에서 즐길 수 있게 됐다.

과거 EA는 독자적인 다운로드 플랫폼인 EA오리진을 선보이면서, 스팀에서 자사 게임을 모두 빼는 강수를 뒀지만, 최근들어 다시 스팀에 입점하는 것으로 노선을 변경했으며, 유비소프트는 유플레이라는 독자적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긴 하지만, 스팀, 에픽게임즈스토어 등 타사 플랫폼과 유플레이를 연동하는 방식으로 서비스 중이다.

스팀 EA 게임 판매 재개
스팀 EA 게임 판매 재개

피파, 배틀필드 등 강력한 IP를 다수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EA오리진만을 고집하면서 스스로 고객들의 유입 경로를 제한한 EA 입장에서는, 독점 대신 플랫폼 연동으로 스팀 이용자들을 잡으면서 자사 플랫폼까지 같이 키운 유비소프트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MS 역시 윈도우스토어라는 자체 다운로드 플랫폼을 가지고 있지만, 헤일로, 기어스 등 인기 시리즈를 스팀으로 동시 발매하고 있다. 소문이긴 하지만, 소니가 허락해준다면 플레이스테이션으로도 발매하고 싶어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스팀 입점한 헤일로 마스터 치프 콜렉션
스팀 입점한 헤일로 마스터 치프 콜렉션

이처럼 독점작 정책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는 것은, 시장의 중심이 플랫폼에서 콘텐츠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플랫폼 홀더가 플랫폼의 시장 규모를 앞세워 다수의 개발사를 묶어놓을 수 있는 구조였지만, 이제는 개발사들이 마음에 드는 플랫폼을 선택할 수 있는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어느 플랫폼으로 들어오던 개발사 입장에서는 같은 고객이기 때문이다.

또한, 콘텐츠 개발사들도 자사의 콘텐츠를 무기로 고객들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강제로 플레이스테이션1을 구입하게 만든 파이널판타지7은 대체 콘텐츠가 많지 않았던 과거이기 때문에 성공을 거둔 것이지, 현재는 아무리 강력한 타이틀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대체제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파, 배틀필드, 심즈 같은 강력한 IP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리진 독점 전략을 버리고, 다시 스팀 합류를 결정한 EA를 보면, 인기 게임을 볼모로 소비자들에게 불편함을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일인지를 잘 알 수 있다.

피파, 배틀필드, 심즈가 강력한 IP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로그인하고 관리해야 하는 플랫폼을 하나 더 늘리는 것은 많이 불편한 일이고, 스팀에서도 얼마든지 대체가 될만한 게임을 찾을 수 있다. 최근 스팀으로 돌아온 EA 게임들이 스팀에서 판매량 상위권에 올라 있다는 것은, EA가 자존심을 버리고, 소비자들을 위한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최근 스팀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는 에픽게임즈스토어도 초반에는 애플과 구글의 비싼 수수료 정책을 비판하면서, 포트나이트의 모바일 버전을 에픽게임즈스토어 자체 다운로드 서비스를 하는 강수를 뒀다. 하지만, 외부 프로그램을 허가하지 않은 애플 iOS 정책 때문에 아이폰 이용자들에게 포트나이트 모바일을 즐길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애플스토어에 입점했으며, 자체 다운로드 서비스를 고집하던 안드로이드 버전 역시 안드로이드 이용자들이 지속적인 불편함을 호소하자 결국 자체 서비스 18개월만에 구글플레이스토어에 입점을 결정했다. 자신들의 자존심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고객들의 요청보다 중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포트나이트
포트나이트

올해 출격을 앞두고 있는 소니와 MS의 차세대 게임기 경쟁에서는 기기의 성능 만큼이나 독점작의 유무가 관심을 모으고 있긴 하다. MS는 클라우드 게임 시장을 선점을 위해 XBOX 시리즈 X와 PC의 경계를 허물고 있지만, 소니는 지금까지 성공해왔던 독점작 중심의 전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닌텐도 역시 자체 개발 게임들은 닌텐도 스위치로만 선보이고 있다.

다만, 아직 시작 단계라고는 하나, 모든 기기에서 자유롭게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는 클라우드 게임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다면, 소니와 닌텐도처럼 플랫폼 독점을 고수하고 있는 플랫폼 홀더들의 전략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 흥미진진하다.

실제로 자사의 휴대용 게임기를 살리기 위해 모바일을 끝까지 외면하던 닌텐도도 결국 슈퍼마리오와 마리오카트 등 자사의 핵심 IP를 모바일로 선보이기 시작했으며, 소니의 개발 자회사 중 하나인 게릴라게임즈도 PS4로만 출시됐던 대표작 호라이즌 제로 던의 PC 버전을 최근 발표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호라이즌 제로 던 PC 심의 통과
호라이즌 제로 던 PC 심의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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