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취급 받던 게임업계,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위상

지난해 5월25일 게임업계가 충격에 빠졌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72차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된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문화이자, 미래를 이끄는 차세대 산업을 꿈꾸던 게임업계는 게임질병코드 등재로 인해 질병을 만드는 죄인 취급을 받게 됐다. 게임업계는 이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즉각 반발에 나섰지만, WHO의 결정을 앞세운 보건복지부의 빠른 행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변경된 개정안은 유예 기간을 거쳐 2022년부터 적용되며, 국내는 빠르면 2026년에 이를 반영한 질병분류체계 개편이 이뤄질 예정이다.

WHO 로고
WHO 로고

다만, 올해 초 전세계에 몰아친 코로나19 사태가 분위기를 바꿨다. 그동안 게임이 질병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던 WHO가 말을 바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방법으로 게임을 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총장은 개인 SNS인 트위터를 통해 '투게더앳홈(#TogetherAtHome)'을 태그로 걸고 "우리는 집에서 함께하며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또는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고 글을 남겼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게임을 권장한 것이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총장 트위터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총장 트위터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세계적으로 게임 이용자가 대폭 증가했다. 미국 시장 조사업체 센서 타워의 조사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의 영향이 극심했던 1분기 구글플레이와 앱스토어의 다운로드가 2019년 3분기 대비 20억 건 이상 증가한 130억 건을 넘어섰다.

특히,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인 ‘퓨처소스 컨설팅’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사태 이후 50세 이상의 게이머를 일컫는 이른바 ‘grey gamer’(회색 게이머)가 상승했고, 이중 상당수는 모바일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이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놀이문화라는 것이 실제로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코로나19 확산으로 모여서 즐기는 스포츠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MLB, 프리미어 리그 등 각종 프로리그들이 중단되자, 온라인으로도 대회를 진행할 수 있는 e스포츠가 새로운 대세 스포츠로 자리잡아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무관중 온라인 대회로 진행되는 서머너즈워 SWC2020
무관중 온라인 대회로 진행되는 서머너즈워 SWC2020

지난 6월 16일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비디오 게임을 어린의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 수단으로 승인했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미국 A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FDA는 전날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사인 아킬리 인터랙티브 랩(AIL)이 만든 게임 ‘인데버알엑스(EndeavorRx)’가 "ADHD를 앓는 어린이의 주의력을 높일 수 있다"며 치료 수단으로 승인했다. FDA가 ADHD 증상 개선을 위해 게임을 활용한 치료법을 승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데버알엑스
인데버알엑스

이렇게 게임의 순기능들이 발견되면서 WHO의 “게임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힘들게 만드는 새로운 현대 질병”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등록한 인터넷, 게임 중독 상담자 수가 2017년 228명을 기록한 뒤 2018년 101명, 2019명 72명을 기록하면서 2년 새 급감하고 있기도 하다.

문화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게임의 가치는 엄청났다. 전세계적으로 게임 이용자들이 증가하면서, 게임 산업 시장 규모 역시 대폭 증가한 것. 뉴주의 경우 2020년 글로벌 게임 시장이 1,593억 달러(191조 7,972억)가 될 것이라고 상향 조정했으며, 또 다른 시장조사 업체 슈퍼데이터 역시 2020년 게임 시장을 1,248억 달러(한화 약 150조 2천)로 예측했으나 더욱 상향될 것이라는 추가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2020년 글로벌 마켓 예상표(자료출처-뉴주)
2020년 글로벌 마켓 예상표(자료출처-뉴주)

실제로, 배틀그라운드로 잘 알려진 크래프톤의 경우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2020년 1분기에 매출 5082억, 영업익 3524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모바일 매출은 421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9% 증가한 수치다.

덕분에, 코로나19 여파로 전세계 모든 산업군이 대규모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외치고 있지만, 게임업계는 여전히 신규 인력 채용을 진행하면서, 홀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청년 취업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지면서 청년들의 걱정이 더욱 커지고 있지만, 게임업계는 여전히 많은 청년들에게 밝은 미래를 약속하고 있다.

20년 1분기 포함 넥슨, 엔씨, 넷마블 ,크래프톤 매출 변화
20년 1분기 포함 넥슨, 엔씨, 넷마블 ,크래프톤 매출 변화

문화부에서도 게임산업을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온라인 경제 시대를 이끌 미래 핵심 산업이라며, 기존 규제와 제도 개선을 통한 혁신 성장 지원, 중소 게임사 단계별 지원 강화, 게임에 대한 인식 제고 및 과몰입 대응 강화 등 게임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게임 산업 진흥 종합 계획을 발표했다.

문화부 측은 “게임은 질병이 아닌 건전한 여가 문화다. 게임 업계가 성장과 도전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돕는 동반자가 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보건복지부가 주도하고 있는 민관협의체에도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문화부 게임 산업 진흥 종합계획
문화부 게임 산업 진흥 종합계획

이처럼 전세계로 확산된 코로나19 사태가 게임업계에는 위기이자 기회가 되고 있다. 명확한 근거 없이 게임을 질병으로 몰아가던 WHO 때문에, 마약 같은 취급을 받을 뻔한 상황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게임의 긍정적인 가치가 제대로 드러나고 있다.

다만,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다. 엄청난 사망률을 보이는 유례 없는 전염병 사태에 전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게임 질병 코드를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게임이 질병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완벽하게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게임의 순기능이 많이 부각됐다고는 하나, 확률형 아이템, 청소년 과몰입 등 약점도 여전히 존재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이후에는 또 다시 게임을 질병으로 몰아가는 이들의 움직임이 시작될 것이 뻔하다. WHO도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게임을 추천하고 있긴 하지만, 게임 질병 코드에 대한 것은 입장 변경이 없는 상태다. 이대로 가면 유예 기간이 끝나는 2022년부터는 게임이 질병이 된다. 여전히 위기는 계속되고 있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하게 된 게임업계가 진정한 문화로 인정받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마약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게임_ 출처 보건복지부
마약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게임_ 출처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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