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5년 이야기의 끝. 그리고 또 다른 시작. 영웅전설 시작의 궤적
팔콤을 대표하는 인기 게임 영웅전설 시리즈의 최신작 시작의 궤적이 발매됐다.
시작의 궤적은 2004년 하늘의 궤적부터 시작된 궤적 시리즈의 15주년을 기념해 발매한 작품으로, 하늘의 궤적을 시작으로, 영벽, 그리고 섬의 궤적까지 이어지는 장대한 이야기의 마무리를 짓는 작품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든든한 유격사로 성장한 에스텔과 요수아, 크로스벨을 든든히 지키는 로이드 배닝스 등 특무지원과 친구들, 금수저들이 등장하는 청춘학원물(?)을 찍었던 토르즈7반 친구들까지 그동안 등장했던 모든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궤적 시리즈 올스타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이번 작품은 제국과 공화국 사이에서 흔들리던 크로스벨 자치구의 재독립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워낙 스토리가 중요한 게임이라 스포일러가 될 만한 사항들을 얘기할 수는 없지만, 여러 주인공들이 각자의 상황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결국 마지막에 모두 모여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적과 싸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조심했지만 일부 있을 수도 있으니, 민감하신 분들은 리뷰를 피하시길 바란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이전 궤적 시리즈의 총 정리이자, 무의미하게 소모되는 NPC1, 2는 없다는 영웅전설 시리즈의 특징 덕분에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 등장인물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해 크로스 스토리 시스템이라는 요소가 새롭게 도입된 것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영/벽 궤적의 로이드 배닝스를 주축으로 하는 특무지원과와 섬의 궤적의 린 슈바르츠를 주축으로 하는 토르즈7반, 그리고 가면을 쓰고 나타난 새로운 인물 C, 이렇게 3가지 루트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취향에 따라 언제든 다른 루트로 교체하며 플레이할 수 있다.
모든 루트가 완결되어야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으니, 결국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번갈아가며 플레이하게 되지만, 동시간 대에 각각의 주인공들이 어떤 활약을 하고 있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한 루트에서 해결한 사건 때문에, 다른 루트에서 도움을 받게 되는 등, 별도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서로 긴밀한 연결되어 있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이미 익숙한 로이드와 린 루트와 달리 새로운 시점에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C 루트는 기존 시리즈의 이야기 전개에 불만이 있었던 팬들의 마음까지 돌리게 만들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각 루트마다 추억의 인물들이 등장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기 때문에, 이전 시리즈를 재미있게 즐겼던 이들이라면 다음에 또 누가 나오게 될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게 된다. 무려 15년이나 이어진 스토리를 통해 엄청나게 많은 캐릭터들이 소개됐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의 캐릭터도 버려지지 않고, 모두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감탄이 나오는 일이다.
물론, 이 작품으로만 보면 너무 반전이 거듭되며, 뜬금없는 인물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에 정신없는 스토리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전 궤적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이용자들이 이전 작품들의 스토리를 모두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스토리가 전개되며, C 루트의 경우에는 소설 3과9 내용까지 모두 알고 있어야 재미있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그 인물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주기 위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사들과, 사건 발생 후 달라진 도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돌아다녀야 하는 시간 때문에 전투를 하기도 전에 지칠 수도 있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쟁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기 때문에 이전 시리즈 특유의 오글거림은 좀 줄어들었다).
다만, 영웅전설 궤적 시리즈의 팬들에게 선사하는 최종 후일담 개념이며, 게임 내에 이전 시리즈 내용에 대한 간략한 요약본도 제공하고 있으니,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어차피 이전 시리즈를 플레이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질 일도 없다고 생각된다.
게임 플레이 자체는 이전 섬의 궤적을 조금 더 발전시킨 형태이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다. 하늘의 궤적부터 꾸준히 발전시켜온 아츠(마스터 쿼츠를 기반으로 한 마법), 크래프트(필살기) 중심의 전투가 그대로 이어지며, 그래픽도 PSP로 등장했던 영/벽 궤적과는 차이가 있지만, PS4로 등장한 섬의 궤적과 비교하면 같은 게임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은 친숙함이 느껴진다.
물론, 섬의 궤적4 이후 2년만에 등장한 신작인 만큼, 새로운 요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픽을 보면 이전보다 등장 인물들의 표정과 동작들이 훨씬 역동적으로 변화했으며, 전투는 밸리언트 레이지, 엑스트라 오더 같은 새로 추가된 요소 덕분에 더욱 박진감 넘치게 변했다. 스토리만 즐기기 위해 쉬움 난이도로 플레이한다면 큰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지만, 난이도를 높여 제대로 플레이하려고 한다면, 이전보다 훨씬 어려워진 초중반 난이도 때문에, 고전하게 될 것이다.
또한, 무려 50여명에 달하는 캐릭터 때문에, 각각의 캐릭터별로 쿼츠와 장비를 맞춰주는 것도 상당히 부담 가는 일이다(자동 세팅이 존재하긴 하나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높은 난이도에서는 결국 수작업이 필요하다).
새롭게 추가된 몽환회랑도 흥미롭다. 몽환회랑은 일종의 도전의 탑 같은 개념으로, 보유한 캐릭터들로 팀을 구성해, 위로 올라가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각 층마다 약간의 퍼즐과 보물상자, 그리고 보스 몬스터들이 등장하며, 이들을 잡을 때마다 봉인석 등 각종 보상을 획득할 수 있다.
성장을 위한 던전 개념이기 때문에, 플레이 도중 어렵다고 느껴질 때마다 몽환회랑에 가서 레벨업을 해서 어려운 구간을 돌파할 수 있으며, 봉인석으로 뽑기를 진행해 다양한 보상도 획득할 수 있다.
봉인석 뽑기로는 게임 플레이에 도움되는 아이템 뿐만 아니라, 몽환회랑 신규 캐릭터 추가, 각종 미니 게임, 추가 에피소드, 코스튬 등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몽환회랑만으로도 상당한 플레이 시간을 보장한다. 팔콤 발표에 따르면 조만간 몽환회랑 대규모 업데이트도 추가될 예정이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게임은 2004년부터 시작된 궤적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새로운 궤적의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다. 고로, 영/벽 궤적과 섬의 궤적 팬들에게는 아쉬움을 날려주는 깔끔한 마무리가 되고, 새로운 엔진을 도입해 확 달라진 모습을 선보일 새로운 궤적의 예고편이기도 하다. 사전 지식 없으면 즐기기 힘들기 때문에 시작의 궤적으로 영웅전설 시리즈에 입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기존 궤적 시리즈를 즐겼다면 반드시 구입해야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