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에 큰 족적 남기고 사라진 '그때 그 게임'

해마다 그 해 최고의 게임을 선정하는 권위있는 시상식, 비디오 게임 어워드(Video Game Award, VGA)가 지난 12월 10일 그 막을 내렸다. 이번 VGA에서는 수상작도 수상작이지만 일본의 유명 게임 개발자 '미야모토 시게루'가 V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됐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슈퍼마리오 시리즈를 개발한 유명 게임 개발자. 모두가 최고라 칭하는 게임 개발자들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게임 개발자의 이름을 묻는 질문에는 이 사나이의 이름을 꼽을 정도로 세계 게임시장에서 큰 명성을 얻은 개발자이다. 기존에도 높은 명성을 지닌 '미야모토 시게루'였지만 이번 VGA 명예의 전당 입성을 통해 그는 게임사에 이름을 뚜렷하게 남기게 됐다.

사람이건 사건이건 혹은 물건이건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것, 사람들의 뇌리 속에 영원히 기억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남들과는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정도의 성공을 거둔 적이 없다면 역사는 커녕 블로거의 일기장에도 언급될 수가 없다.

물론 '성공'만이 역사에 이름을 올리는 방편은 아니다. 역사를 뒤적이다 보면, 성공하지 못 한 이들의 이름도 종종 눈에 띈다. 커다란 실패를 했음에도 역사에 이름을 올린 이들, 이들의 그 시도 자체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됐으며 그 결과 이러한 이들의 이름도 역사에 남게 된 것이다.

국내 온라인게임 역사에도 이렇게 어딘가 아쉬운 명예를 지닌 게임들이 있다. 이들 게임들은 물론 비즈니스 적인 측면에서 성공을 거두지는 못 했지만 여러 이유로 국내 게임사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뚜렷하게 남긴 게임들이다.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는 것은 2005년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았던 '제라: 임페란 인트리그'(이하 제라)이다.

1차 비공개테스트부터 18만 명의 인원이 테스터 참가 신청을 해 화제를 모았던 제라는 당대 최고의 그래픽과 다양한 스킬 등을 무기로 정식 오픈까지 꾸준한 화제를 몰고 다녔다. 결국 2005년 한 해 최고의 게임에게 주어지는 게임대상이라는 영예까지 거머쥔 제라. 하지만 현재 제라의 모습은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다. 2009년 1월 28일에 서비스가 종료됐기 때문이다.

제라는 빼어난 그래픽과 적절한 최적화, 문제 없는 운영을 보이며 '빅3'라는 타이틀을 달고 서비스 초반부터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하지만 결과는 서비스 종료. 제라가 이렇게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뜬금 없는 이야기지만 제라의 실패 원인을 언급하기 위해 축구 선수를 예로 들어보겠다. 여기 한 축구 선수가 있다. 부상도 당하지 않고, 신체조건도 우월하며, 남들보다 빼어난 운동신경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사생활도 말끔하며, 구단에 대한 충성도도 매우 높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선수가 축구를 못 한다면 이 모든 것이 아무 소용 없는 이야기다.

제라는 '모든 걸 다 갖추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축구를 못 하는 축구선수'에 비견할 수 있는 게임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확 잡아끌만한 매력요소가 없어 게이머들이 게임을 즐기는 동안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 게임이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100억 원이라는 당대 최고 수준의 개발비를 들인 제라는 '빅3의 한 축'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장식하는 데 그쳤다.

웹젠의 헉슬리 역시 이러한 급부에 해당되는 게임이다. 헉슬리는 애초에 2006년, Xbox360으로의 출시를 노리며 개발된 게임이지만, 노선을 바꿔 2008년에 온라인게임으로 출시된 작품이다. MMORPG와 FPS의 재미를 동시에 전달하겠다는 포부를 보이며 등장한 이 작품은 역시나 시장에서 참패를 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MMORPG와 FPS 결합이라는 점에서 큰 눈길을 끌었던 이 작품의 실패는 어떤 이유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것도 200억이라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됐음에도 말이다. 실패의 가장 큰 이유로는 게임의 출시 시기가 너무 나빴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헉슬리의 오픈베타서비스가 시작된 시기와 맞물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리치왕의 분노와 아이온 등 시장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MMORPG가 등장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게이머들 사이에서 크게 부각되지 못 했다는 것이다.

또한 게임이 지닌 애매한 성향도 실패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FPS로 접근하자니 FPS적인 재미가 부족하고, MMOPRG로 접근하자니 MMORPG의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것이 헉슬리를 향한 게이머들의 시선이었다. 재미가 있긴 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게임이라는 '뜨뜨미지근'한 이 작품의 성향은 게이머들이 헉슬리에게서 멀어지도록 만들었다.

한국 온라인게임사에 큰 족적을 남긴 게임이라면 타뷸라 라사도 빼 놓을 수 없다. 그 족적이란 것이 '거품만 잔뜩 남겨 놓고 떠난 게임' 혹은 '유명 외국인 개발자라고 무조건 믿지 말자'는 씁쓸한 것이지만 말이다.

한때는 '로드 브리티쉬', 지금은 '우주먹튀'로 잘 알려진 리처드 게리엇은 이 작품을 처음 개발하기 시작한 2001년에만 해도 동양과 서양의 게이머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게임을 선보이겠다며 의욕적으로 포부를 밝혔으며, 게이머들은 대가의 이력에 또 하나의 대작이 추가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타뷸라 라사는 새로울 것이 없는 게임이었다. 새로움을 더하기 위해 리처드 게리엇은 게임에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게임의 정체성이 계속 애매하게 변하는 더 큰 문제에 직면했으며, 결국 리처드 게리엇은 "동양과 서양 게이머들의 취향은 매우 달라 이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개발 초기에 자신이 밝힌 포부와는 완전히 상반된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구태의연한 게임으로 출시된 타뷸라 라사는 서비스 개시 15개월만에 서비스가 종료되는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했다. '동서양의 게이머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게임'은 온데간데 없고 '동서양의 게이머 모두가 외면하는 게임'이 출시됐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한게임에서 서비스 했던 몬스터 헌터 프론티어 온라인의 경우는 인기 비디오게임이 온라인으로 넘어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가를 두고 큰 화제가 됐던 게임이다. 일본에서 비교적 성공을 거둔 이 작품은 호기있게 한국 시장으로 진출을 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몬스터 헌터 프론티어 온라인의 이러한 실패 원인으로 게임의 운영을 꼽는다. 일본에서는 이미 구버전이 된 게임이 국내에서 현역으로 서비스 되고 있다보니, 이미 일본 서버를 통해 게임을 즐긴 이들이 국내에서 게임을 즐길 메리트를 찾지 못 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게다가 일본 서버에서 게임을 오래 즐긴 소위 '고수' 게이머들이 텃세를 부리는 바람에, 초보자들이 게임에 쉽게 진입할 수 없었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가뜩이나 컨트롤이 어려워 적응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고수들에게 구박까지 받게 되니 게이머들이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또한 한국과 일본의 시장 차이를 인지하지 못 하고, 자신들의 스타일대로 서비스를 강요한 캡콤 측의 무리한 요구도 게임의 수명을 짧게 만들고 말았다. 게임에 등장하는 아이템의 토씨 하나에서도 일본 서비스의 느낌을 살리기를 요구했던 캡콤의 고집은 결국 어색한 현지화가 이뤄진 게임을 만들어 내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게이머들은 이 '어색한 게임'에 눈길을 주지 않게 됐다.

네오위즈게임즈가 서비스 했던 액션 온라인게임 요구르팅은 조금은 특이한 이미지로 게이머들의 기억 속에 자리한 게임이다. 요구르팅의 게임성은 기억하지 못 하더라도 게임의 O.S.T.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은 게임이 이 작품이니 말이다.

요구르팅은 그 게임 자체보다도 게임의 메인 테마곡인 'Always'가 큰 인기를 얻은 게임이다. 가수 신지가 불러 화제가 된 이 노래는 경쾌하고 발랄한 느낌으로 게이머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도 적지 않은 인기를 얻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노래의 인기가 게임의 인기로까지 이어지지 못 했다는 것이다.

결국 요구르팅은 지난 2007년 2월에 서비스를 종료했으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던 태국과 일본에서도 지난 2009년 5월과 2010년 5월에 각각 서비스를 종료하며 요구르팅에 추억을 갖고 있는 게이머들을 안타깝게 했다. 게임 그 자체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 한 요구르팅이지만 적어도 게임 오프닝만큼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역대최고'라는 평가를 받으며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이 남긴 뚜렷한 족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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