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히스토리] 카드로 만나는 판타지의 세계 'TCG의 역사'-1편
‘카드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테이블, 그리고 손에 든 카드를 두고 치열한 눈치싸움을 하고 있는 두 사람. 당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는 함정카드와 마법공격을 할 수 있는 카드뿐. 거대한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는 카드를 꺼내든 상대에 맞서 당신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트레이딩 카드 게임(Trading Card Game) 많은 이들에게 ‘TCG’로 불리는 게임을 즐길 때 펼쳐지는 흔한 상황 중 하나다. 전국의 초등학생들을 ‘듀얼리스트’로 만들어 버린 유명 애니메이션 ‘유희왕’을 통해 국내 게이머들에게도 잘 알려진 TCG는 다양한 능력을 지닌 카드로 ‘덱’을 만들어 상대와 카드 대결을 펼치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이다.
TCG는 얼핏 카드를 사용해 대결을 펼치는 유치하고 단순한 장르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테이블에서 게이머가 직접 대결을 펼치는 ‘보드게임’부터 영화, 만화 등의 유명 작품의 등장인물 혹은 캐릭터를 카드화시켜 대전을 펼치는 ‘캐릭터 TCG’, 그리고 ‘스포츠 매니지먼트게임’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인기 게임에서 사용되는 장르이기도 하다.
특히, 포켓몬스터와 같은 다양한 스킬을 지닌 캐릭터 간의 대전을 벌이는 방식의 ‘육성 RPG’를 비롯해 주사위를 굴리며 다양한 시나리오를 탐험할 수 있는 TRPG가 콘솔, PC, 온라인 등에도 진출할 수 있는 요소(캐릭터 수치의 일반화, 아이템의 객관적인 분류)를 제공한 것은 물론, 전략, 액션, 스포츠 등의 장르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TCG가 미친 영향은 실로 방대하다고 할 수 있다.
TCG의 가장 큰 특징은 거대한 시나리오 즉 ‘캠페인’이 지속적으로 제공되며, 해당 ‘캠페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카드 덱’이 정해져 있고, 매 게임마다 덱을 자유롭게 교체하며 전투를 벌일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확산성 밀리언아서’, ‘하스스톤’과 같이 오로지 자신이 보유한 카드만을 사용하는 ‘카드 배틀’ 식의 게임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최근에는 ‘수집형 카드 게임’(Collectible Card Game) 이른바 ‘CCG’로 따로 분류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카드라는 단순한 소재를 활용해 판타지의 세계로 게이머들을 이끄는 TCG. 그렇다면 TCG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작품들이 이 방대한 TCG의 세계에 속해있는 것일까?
사실 TCG의 근간이 되는 캐릭터를 카드로 등장시킨다는 개념은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카드’와 같이 굉장히 오래된 방식 중 하나였다. 이러한 캐릭터 카드에 특징을 가진 카드를 만들어 ‘덱’을 구성하고 이 ‘덱’을 통해 대결을 펼치는 방식을 고안한 이는 게임계의 인물이 아닌 미국의 수학자 리처드 가필드(Richard Garfield)였다.
당시 박사과정을 밞고 있던 리처드는 1993년 다양한 TRPG를 판매하던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를 방문해 자신이 고안한 게임을 판매하려고 했지만, 인쇄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하지만 리처드의 게임은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의 사장이었던 ‘피터 에킨슨’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TRPG의 모든 요소를 구현하기 보다는 리처드가 고안한 ‘카드 덱을 통한 대결'을 메인으로 게임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고, 우여곡절 끝에 출시된 게임이 바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세계 수 백만의 팬을 거느린 게임이자, 세계 최초의 TCG, 원조 ‘유희왕’으로 불리는 ‘매직더개더링’이다.
‘매직더개더링’의 묘미는 바로 절묘한 밸런스를 지닌 수 천 종의 카드에 있다. 수학자인 리처드는 수 백 가지의 조합을 통해 승부를 가리는 ‘포커’와 같이 카드 배틀 게임에는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에 카드를 사용하는 비용을 지불하고(코스트와 마나 시스템), 서로 물리고 물리는 관계를 지닌 5종의 색으로 카드를 나눔으로써 다양한 조합을 가진 ‘카드 덱’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서로간의 명확한 장점과 단점을 지닌 5가지 색을 바탕으로 다양한 카드를 지닌 ‘덱’을 통해 일정 가격(마나)을 지불하고 카드를 선보여 상대와 대결을 벌인다’는 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TCG’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TRPG를 만들던 회사에 불과했던 ‘위자드 오브 더 코스트’가 1997년 ‘D&D’의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택티컬 스튜디오 룰스’(Tactical Studies Rules)를 인수할 정도로 성장시키기에 이른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위자드 오브 더 코스트’는 ‘리처드 가필드’가 고안한 아이디어에 대한 특허를 냈는데, 그것은 바로 ‘카드를 덱으로 만든다’는 개념에 대한 특허였다는 것이다. 이는 카드를 통해 대결을 펼치는 모든 게임에 적용되는 것으로,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카드 덱’을 활용한 게임의 경우 ‘위자드 오브 더 코스트’와 ‘리처드 가필드’에게 로열티를 내야 하기에 이른다.(물론 특허 인정 기간은 20년까지기 때문에 1990년대 중반에 등재된 이 특허는 몇 년 후 유효기간이 풀리게 된다.)
이렇듯 ‘매직더개더링’은 그 특유의 게임성으로 전세계에 카드 배틀 게임의 문을 활짝 열었고, 1994년과 1995년 사이 수 많은 유사 게임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더욱이 사실상 TCG의 저작권을 지니고 있던 ‘위자드 오브 더 코스트’가 미국의 ‘해즈브로’에 1999년 3억2,500만 달러(한화 약 3천 615억)에 인수되면서 포켓몬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하며 TCG는 저변을 더욱 넓혀 나가기 시작한다.
이렇듯 TCG는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얻었지만, 인쇄된 종이카드를 통해 대결을 펼치는 보드게임 형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즐길 수 있는 게이머가 제안되는 ‘장소의 한계’가 명확한 장르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명 콘텐츠와 캐릭터만 있으면 제작할 수 있는 이 장르의 가능성을 꿰뚫어 본 게임사들은 이내 PC, 콘솔 그리고 온라인에 TCG를 접목시키기 시작했고, 2000년 이후 TCG는 온라인 게임 시장을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에 등장하기에 이른다.
다음 히스토리에서는 콘솔, 온라인부터 모바일에 진출한 TCG의 요소를 도입한 게임에 대한 소개를 이어가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