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스토리] 엔씨소프트 연대기 8화 : 캐주얼 게임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다

[게임동아에서는 2015년을 맞이하여 게임 기업의 탄생부터 성숙기까지 더한 연대기형 특집 '기업스토리'를 진행합니다. 첫 번째로 선정된 회사는 엔씨소프트로, 엔씨소프트의 과거와 현재를 비롯하여 정치, 인사, 경제 등 가능한 폭넓은 분야를 토대로 다루어볼 계획입니다. - 기사 내 대화는 당시의 상황을 유추해 각색한 것으로 현실과 다소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

7화에서 다루었던 '리니지2' 바츠 해방전쟁을 바라보는 엔씨소프트 개발팀과 사업팀은 서로의 관점이 달랐다.

개발팀에서는 '리니지2'를 개발하면서 전작인 '리니지'의 정치적 커뮤니티 기능, 즉 다이나믹한 정치적 상황이 '리니지2' 내에서 제대로 구현되어 돌아간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사업팀 입장에서는 특정 고객들이 다수의 고객들에게 불편함을 초래하는 모습이 장기화되자 우려를 느꼈던 것이다.

게임이 오래 유지되려면 절대 다수가 쾌적하게 플레이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후 엔씨소프트에서는 서비스 부분에 비중을 더 두어 조금씩 '바츠해방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패치에 신경을 써 갔다고 한다.

엔씨소프트 신규 CI
이미지
엔씨소프트 신규 CI 이미지

한편, 바츠 해방전쟁이 일어나는 시기를 전후해서 엔씨소프트는 대내외적으로 역동적인 변화 앞에 서 있었다.

가장 역동적인 변화는 '리니지' 시리즈에 집중되어 있는 수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캐주얼 게임을 개발하거나 퍼블리싱을 시도하기 시작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즉, 체질 개선이다.

처음부터 엔씨소프트가 캐주얼 게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던 것은 아니었다. 엔씨소프트 내부에서도 캐주얼 게임 시장 진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었는데, MMORPG의 명가로 커온 엔씨소프트 입장에서 잘하는 것을 계속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론과 새로운 '시장 진입'론이 상충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엔씨 캐주얼
엔씨 캐주얼

반면에 당시는 캐주얼 게임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엔씨소프트는 결국 캐주얼 게임 시장에 진입하는 쪽으로 정책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리니지2'를 서비스한 시점에 국내 캐주얼 게임 시장은 굉장히 매력적인 시장으로 변모해 있었다.

초창기에 MMORPG와 같은 정액제를 시도했다가 고전을 면치 못했던 캐주얼 게임 서비스사들은 부분 유료화 시스템을 채택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했다.

눈여겨 보지도 않았던 넷마블, 넥슨 등이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확 치고 올라오고, 캐주얼 게임의 게임 시장 내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엔씨소프트의 고민도 깊어 졌다. 당연히 주주들 또한 신작 개발에 대한 요구를 높이면서 경영진의 고민을 크게 만들었다.

여기에 엔씨소프트 내부의 개발자 사이에서도 캐주얼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니즈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MMORPG는 5년 이상 개발해야 했고, 또 백억 단위의 돈이 들어가는 대형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1~2년이면 개발이 가능한 캐주얼 게임들은 일부 엔씨소프트 개발자들의 마음 속에 불을 지폈다.

또, 어린 시절 콘솔 게임을 주로 플레이 해왔던 개발자들도 대거 캐주얼 게임을 개발하고 싶어 했고, '리니지2'를 총괄 했던 김형진 과장(현재 상무)과 같은 거물급 인재들 마저 캐주얼 게임을 개발하겠다고 나서는 등 개발 니즈가 높아졌다.

이렇게 회사에서의 캐주얼 게임에 대한 니즈와 사회적 경험에 맞추어 대대적인 캐주얼 게임 팀이 구성되면서 엔씨소프트 내부에도 '대 캐주얼 게임 시대'가 펼쳐지게 된다.

엔씨 캐주얼 게임
엔씨 캐주얼 게임

내부 캐주얼 게임 개발팀은 배재현 부사장이 담당했고, 외부 퍼블리싱은 신민균 상무가 담당을 했었는데, 캐주얼 게임을 다루는 엔씨포털(가제 : 향후 플레이엔씨가 됨)의 구도가 잡혔고 처음 진행은 내부 개발 먼저 진행됐다.

엔씨소프트 내에서는 많은 캐주얼 게임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횡스크롤 '던전앤파이터'와 비슷한 컨셉의 게임도 있었고 '퍼즐팝' '토이스트라이커' 등의 게임들도 있었다.

퍼블리싱도 활발해지면서 'SP잼''사커퓨리''던전러너' 등의 게임들이 영입되었고, 출시는 되었지만 큰 인기를 끌진 못했다.

엔씨 김택진
엔씨 김택진

"엔씨소프트는 명품 게임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다. 그 수준 이상의 궤도에 오르지 않으면 서비스하지 않는 것이 원칙."

캐주얼 게임이 굉장히 많이 만들어지는 반면, 김택진 대표는 게임을 출시할 때 '엔씨소프트 테이스트'를 주장했다. 퀄리티나 시장성이 일정 궤도 이상이 되지 않으면 서비스를 하지 않는 방침을 명확히 했던 것.

실제로 김택진 대표를 포함한 상층부에 의해 엔씨소프트 내부에서 개발중이던 캐주얼 게임들은 번번히 커트라인을 넘지 못하고 탈락했고, 2~3번 탈락한 후 팀이 접히기 일쑤였다.

"이 정도면 꽤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회사에서는 출시할 수 없다고 했죠. 내가 만든 게임인데... 개발자라면 당연히 쓴 소리를 들어도 고객에게 먼저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까요."

특히 개발자들은 당시 시장에서는 조금 어설프더라도 빨리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엔씨소프트 내부에서 서비스 되지 못한 몇몇 게임은 한참 후에 비슷한 컨셉의 게임이 다른 회사에서 대박을 터뜨렸다며 더욱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2년 동안 엔씨소프트는 내부에서 십수 개의 캐주얼 게임들을 진행했지만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당시 엔씨소프트의 개발자들은 1인 개발을 해보거나 소규모 팀에서 아마추어 시대를 거쳤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큰 개발 조직의 기획자나 개발자들은 오히려 경험부족을 뼈저리게 느꼈지요. 게임의 모든 부분을 알아야 된다는 부분에서 갭이 있었던 것이죠."

이렇게 여러 가지 실패를 맛본 엔씨소프트는 2006년에 이르러서야 캐주얼 게임 시장에 대해 이해도를 높이며 비로소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하게 된다.

- 9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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