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 히스토리] 바람의 나라가 지나간 20년의 발자취

[게임동아 조영준 기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세월이 지나면 그만큼 시대도 변한다는 격언과 같이 점차 빠르고 자칫 흐름을 놓치면 뒤처지는 시대로 점차 흘러가고 있는 것이 사실.

바람의나라히스토리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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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무려 20년간 서비스를 이어온 게임이 있다. 바로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온라인게임의 큰 형님 바람의 나라가 그 주인공. 1996년 당시 PC 통신의 발달로 텍스트로 게임을 즐기는 '머드' 게임이 붐이 일 무렵 텍스트에 그래픽을 도입함으로써 '머그' 게임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바람의 나라는 국내 온라인게임 대중화를 이끌어낸 것은 물론, 넥슨이라는 회사를 국내 게임 산업의 핵심 회사로 성장시키는데 대들보와 같은 역할을 했다.

특히, 바람의 나라의 발자취는 온라인게임을 바탕으로 게임 강국으로 발돋움한 한국 게임산업의 흐름과도 일치하며, 바람의 나라는 그때 그 시절 모습을 간직한 채 여전히 게이머들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초창기 바람의 나라는 그야말로 "어 그림이 움직이네? 수준에 불과했다. 더욱이 1996년에는 전체 접속자 리스트가 우측 상단에 표시됐다. 동시접속자 수가 고작 9명에 불과할 정도로 아는 사람만 아는 게임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

특히, 당시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온라인게임이다 보니 모뎀을 활용해 게임을 즐겨야 했으며, 실제로 게임을 즐기다 전화비가 많이 나와 부모님에게 '등짝 스매시'를 당하는 게이머들도 부지기수였다.

바람의나라히스토리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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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초반 사냥터에서 몬스터가 부족할 경우 채팅을 통해 "넥슨은 다람쥐를 뿌려라!"를 외치며 게이들끼리 경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학교에서 오로지 오른손만을 사용하는 캐릭터를 따라 하며 '백호난무!'를 장난처럼 따라 하는 등 90~200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게이머들에게 '바람의 나라'는 게임 그 이상으로 특별한 존재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1996년부터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서비스를 이어온 만큼 그동안 달성한 기록 역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2016년 기준 '바람의나라' 누적 가입자 수는 약 2,300만 명으로,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약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또한, 서비스 당시 정액제 방식으로 운영되던 '바람의나라'가 2005년 전면 무료화로 전환한 뒤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수직상승 하면서 최고동시접속자 수 13만 명을 기록한 바 있다.

당시 서비스 9년이 지난 장수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기록을 수립하며 국내 온라인게임의 맏형으로서 굳건함을 드러냈다. 이후 2011년에는 서비스 15주년과 함께 '세계 최장수 상용화 그래픽 MMORPG'로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사례를 만들어냈다. 이는 아직까지도 매년 갱신되고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바람의나라히스토리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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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서비스 기간만큼 게임 내 방대한 콘텐츠의 수치도 눈에 띈다. 캐릭터가 사용하는 스킬 개수만 무려 1만 3,847개에 달하며, 아이템은 2만 560개, 맵의 수는 2만 9,804개. 어지간한 MMORPG 2~3개를 합쳐 놓은 것보다 많은 콘텐츠의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길드, 혈맹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온라인게임이 핵심 콘텐츠 커뮤니티의 경우 지난 20년간 약 20여 개의 생성된 문파(길드)만 1만 719개에 달해 오랜 기간 동안의 게임이 서비스되는 원동력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한 것도 '바람의나라'의 서비스 20년을 뒷받침한 원동력 중 하나다. 지난 20년간 넥슨은 매년 평균 5회의 주요 업데이트와 약 100회의 이벤트, 50회의 보조 콘텐츠 추가 및 개편을 바람의 나라에 진행했다. 여기에 2~3년 단위로 인트로 버전을 바꾸는 등 오랜 시간 서비스를 이어오면서 자칫 낡은 게임으로 보일 수 있는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바람의나라히스토리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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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게임의 큰 형님으로 불리는 바람이 나라인 만큼 각종 사건 사고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2001년 유리 서버에서 벌어진 '봉촌동 해킹' 사건이다. 당시 온라인게임에서는 관리자가 캐릭터를 생성해 여러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게임을 관리했고, 이 캐릭터를 관리자들이 돌아가면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유리 서버의 관리자 캐릭터가 바로 봉촌동이었다.

그러던 중 관리자 중 하나였던 '주몽'이 다른 관리자인 '세류'에게 봉천동 캐릭터의 비밀번호를 전달하다 실수로 관리자 '세류'가 아니라 일반 아이디를 가진 '셰류'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 봉천동의 비번과 아이디를 받은 '세류'라는 게이머는 초보 사냥터에 고렙 몬스터를 풀고, 당시 최고급 아이템으로 분류되던 용무기, 황금류의 아이템을 마을 곳곳에 마구마구 뿌려대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전체 채팅을 할 수 있는 '사자후'로 봉천동의 비밀번호를 공개하기에 이른다.

때문에 수백 수천의 게이머들이 봉촌동으로 온갖 아이템을 뿌려대니 유리 서버는 그야말로 망하기 일보 직전 상황에 이른다. 뒤늦게 이를 확인한 관리자들은 긴급히 점검에 들어갔고, 이에 바람의 나라 최초의 '빽섭'(서버의 상황을 일정 시간 이전으로 돌리는 행위)을 진행하기에 이른다.

그 후 '세류' 아이디를 사용하던 게이머는 넥슨에게 형사고소를 당했으며, 이후 바람의 나라 관리자 아이디 앞에는 GM이 표시되는 것이 의무화되고, 이는 모든 넥슨 게임과 다른 온라인게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의 게임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고 모든 온라인게임이 반면교사로 삼은 셈이다.

바람의나라히스토리02
바람의나라히스토리02

아울러 2015년 벌어진 바람의 나라 팬카페 사건은 그야말로 여성가족부가 게임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촌극이었다. 바람의 나라 공식 팬카페가 무려 1주일간 접속이 차단된 사건으로, 당시 바람의 나라 공식 팬카페의 이름은 'game風『바람의나라』'(이하 게임풍)이었는데, 이를 여성가족부에서 프리서버로 오인해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불법 사이트로 신고했고, 이것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접속 차단시켜 버린 것이었다.

이는 카페에 게재된 주소가 오래된 것에서 불러온 오해로, 네이버 채널링으로 나뉘기 이전 공식 주소를 사용하고 있던 '게임풍'과 새로운 바람의 나라의 사이트의 주소가 달라 이를 프리서버로 오인해 버린 것이다. 과연 여성가족부가 게임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또 게임관리위는 어떻게 일처리를 하고 있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울러 2010년 대규모 핵게이머 영정사건, 2011년 노넥 아이디 사건, 2014년 벌어진 용무기 복사사건 등 바람의 나라는 온갖 사건에 휘말렸지만, 그때마다 게이머들의 노력과 넥슨의 대처를 통해 문제를 봉합할 수 있었다.

특히, PC통신 붐과 함께 생겨난 젊은 게이머들의 통신 비속어를 필터링하기 위한 욕설 방지시스템, 인터넷 시절 초창기에는 없던 '비밀번호 찾기' 기능 등 이러한 바람의 나라의 사건 사고와 이에 대한 대처는 후발 주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서비스 이전부터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는 등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바람의나라히스토리03
바람의나라히스토리03

올해로 20년 앞으로의 30년을 꿈꾸고 있는 바람의 나라. 넥슨은 지난 7월 10일 바람의 나라의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20주년 기념 간담회를 진행하고, 그동안 바람의 나라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발전 계획을 밝혀 많은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과연 바람의 나라가 앞으로 20년, 30년간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이어가 그들이 말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하는" 게임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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