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배우지 못한 자는 떠나고, 게임은 남았다" '배틀필드5'
'Uneducated People'(배우지 못한 사람들)
2018년 올해 전세계 게임 업계에서 가장 뜨거웠던 논란으로 지목된 단어다. 배틀필드5의 개발사 다이스의 전 대표를 지낸 인물이자 EA의 CDO(수석 디자이너)였던 패트릭 쇠더랜드의 이 발언은 그야말로 전세계 게이머들을 들쑤셔 놓았다.
이 단어가 배틀필드5에 미친 영향은 실로 어마무시하다. 최근 미국의 영화, 만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엔터테인먼트 전 분야에서 급증하고 있는 변질된 PC(Political Correctness / 정치적 올바름)운동 논란이 게임으로 번지는 효과를 낳았고, EA의 간판 게임이자 오랜 시간 FPS 마니아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배틀필드 시리즈의 최신작이 전세계 게이머들에게 "배우지 못한 우리는 이 게임 못하겠다" 는 비아냥이 속출하는 등 시리즈의 명성이 그야말로 땅에 떨어졌으니 말이다.
배틀필드가 어떤 게임인가? 2002년 '배틀필드 1942'가 출시된 이후 매년 FPS 시장의 새로운 기술과 시스템을 선보이고, 라이벌인 콜오브듀티와 함께 경쟁하듯 몇 백만 장 이상을 팔아대던 게임이 바로 배틀필드다.
더욱이 현대전을 다룬 배틀필드4에 이어 1차 세계 대전이라는 이색적인 전쟁을 다룬 전작 '배틀필드1'에서는 연합국과 주축국이라는 대결 양상에서 벗어나 영국,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 제국까지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 대전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생생한 전장을 선보여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렇듯 시리즈 중에서도 손꼽힐 만한 성공을 거둔 전작에 이어 'FPS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2차 세계 대전으로 돌아간 배틀필드5가 이렇게 되리라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것도 게임의 개발을 총괄하는 핵심 직책에 있던 인물의 입에서 나온 어이없을 정도로 경솔하고, 무의미하며, 게임의 평가에 그 어떤 긍정적인 효과도 주지 못할 그 한번의 '발언' 때문에 말이다.
사실 이 리뷰를 작성하면서 본 기자의 마음은 그 어느때 보다 복잡했다. 기자이기 전에 한 명의 게이머로서 "우리가 만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사지마라"는 모욕에 가까운 발언까지 들먹인 이 게임이 얼마나 대단한지 눈으로 보고 싶을 뿐이었지만, 막상 실제로 플레이를 해본 이후엔 이렇게까지 비난받을 게임이 아닌 것을 확인했기 때문.
비록 '그 발언'으로 게임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졌을지라도, 배틀필드5는 전 유럽을 무대로 벌어진 거대한 전장과 처절했던 그때의 분위기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있었고, 그랜드오퍼레이션 등의 멀티플레이 모드를 2차 세계대전에서도 어색하지 않게 잘 버무려 기존 2차 세계 대전을 다룬 게임 중에서도 손꼽힐 만한 수작인 것은 분명했다.
이번 배틀필드5의 핵심 콘텐츠라 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 모드는 2차 세계 대전 중 가장 격렬하게 진행됐던 유명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그랜드 오퍼레이션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로테르담 전투'(로테르담 습격)와 노르웨이의 침공으로 시작된 '나르비크 전투'(노르웨이의 몰락), 독일의 프랑스 침공을 다룬 '프랑스 공방전' 등 2차 세계 대전 초반 치열하게 벌어진 전투를 다룬 맵이 곳곳에서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그랜드 오퍼레이션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배틀액스 작전'과 '프랑스 공방전'은 주축군인 독일군에게 포위된 영국군을 살리기 위한 전투 등 컨셉에 맞춘 전투가 총 4일 간 진행되며, 하마다, 비행장 등 여러 맵을 하루에 하나씩 플레이하게 된다. 이 두 미션은 4일간 진행되는 만큼 전날의 전투 결과와 상황이 다음 날에도 영향을 미치며, 총 64인에 이르는 게이머들이 지속적으로 맞붙는 그야말로 거대한 전쟁이 펼쳐지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랜드오퍼레이션의 전투가 대부분 2차 세계대전 극초반 전투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이후에는 미국의 대대적인 반격이 본격화된 '마켓 가든' 전투나, 독일의 마지막 반격이 시작된 벌지 전투 등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많은 스토리를 담은 전장이 펼쳐질 것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최대 64인의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컨퀘스트'나, 진영을 구축해 고지를 탈환하는 '브레이크스루', 보병 전용 멀티 대전인 '도미네이션'과 '팀데스매치' 등 총 6종에 이르는 다양한 멀티플레이를 통해 진지하게 전투에 임할 수도 가볍게 한판을 즐길 수 있는 재미를 제공한다.
이렇듯 유럽 곳곳에서 벌어지는 배틀필드5의 전투는 게이머들의 분대 협동 플레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배틀필드5의 병과는 돌격, 의무, 보급, 정찰병 등 총 4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이중 의무병의 비중이 눈에 띄게 커져 4인 플레이 시 반드시 필요한 병과로 자리 잡았다.
의무병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냐 하면 기껏 상대를 처치했음에도 의무병이 회복을 진행해 상대를 살려내기 일쑤였고, 이 때문에 저격을 맡은 정찰병은 완벽하게 헤드샷을 노리지 않으면 킬 스코어를 올리기 힘든 정도였다. 물론, 곧바로 상대를 처치하지 않고, 의무병이 오는 것을 노려 두 명을 동시에 잡는 방법도 있지만, 이번 배틀필드5에서 보병은 게이머의 피지컬이 아무리 높다 한들 전작들처럼 혼자서 슈퍼 캐리를 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 마저도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이번 배틀필드5가 추구한 분대 단위 중심의 전투 시스템에도 큰 연관이 있다. 사실 배틀필드는 2편을 제외하고는 개인의 실력 이른바 피지컬이 매우 중요한 게임이었으나, 전작인 배틀필드1부터 분대 전투를 강조하는 모습으로 서서히 변모해왔다.
특히, 이번 작품의 경우 보병은 정말 수준급의 능력을 지닌 게이머가 아닌 이상 혼자서 무엇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기 시스템과 아이템으로 구성되어 있어 1인 플레이보다 협동을 거의 강제적으로 요구하는 느낌이었다.
더욱이 부분 파괴, 지형지물 파괴 등을 포기하고 선택한 광원효과가 매우 극대화되어 밤에 벌어지는 전투나, 안개, 햇빛이 작렬하는 사막 등에서는 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피아식별이 어려웠으며, 이 때문에 저격의 명중률은 다른 FPS 게임보다 현저히 낮아질 정도였다.
실제로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혼자서 무쌍을 찍는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고, 전차는 '탑승장비 파괴자'로 전직한 돌격보병의 후미 공격에 매우 쉽게 파괴되며, 비행기 역시 일정 고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보병들의 대공사격에 파괴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뜨는 순간 게이머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모습은 아니었다.
이 흐름이 개발사인 다이스의 의지인지 아니면 EA가 꿈꾸는 모습인지는 정확이 파악할 수 없으나, 게이머들의 실력보다 타인과의 협동을 거의 강제하는 LOL 등의 MOBA와 같은 모습과 유사해지는 FPS 전투에 대해 게이머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배틀필드5의 싱글 플레이는 거의 이벤트 전투에 가까웠다. 배틀필드5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콜오브듀티의 최신작 블랙옵스4의 경우 싱글 모드가 없어질 만큼 밀리터리 FPS 게임에서 싱글 모드는 튜토리얼에 가까울 정도로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고, 싱글 플레이는 복잡해지고 있는 게임의 시스템과 콘텐츠에 적응하는 일종의 첫 관문을 배우는 역할로 축소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배틀필드5의 싱글 플레이의 경우 얼마 전 추가된 '최후의 티거 전차'까지 총 4편으로 이뤄진 시나리오에서 은행털이범의 전쟁을 다룬 '국기없는 싸움'이나, '망각의 용사들'의 퀄리티는 평작에 속했지만, 두 번째 시나리오 '노르뤼스'는 정말 FPS 제작자들이 만든 것이 맞는지 의심될 수준이었다.
나치의 노르웨이 침공에 맞서 비밀리에 잠입한 어머니를 구출하기 위한 여전사 솔베이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시나리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게 지금 2차 세계 대전인가, 미국 드라마 세트장인가?"라는 눈을 의심케 하는 신파와 연출로 가득차 있었다. 이중에서도 스키로 차를 따돌리거나 절벽에 떨어져도 살아남고, 나치에 포위되어도 무쌍을 찍으며 살아나는 두 모녀의 '람보' 급 활약을 보노라면 커뮤니티에서 화재가 된 모 만화의 평가처럼 '노르웨이 여자 닌자'가 따로 없을 정도로 플레이 내내 실소가 멈추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노르뤼스'가 4개의 시나리오 중 가장 많은 이벤트와 가장 긴 분량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으로, 기획부터 연출 모든 것이 2차 세계대전이라는 분위기가 맞지 않는 이러한 시나리오에 왜 이리 많은 공을 들였는지 의문이다. 만약 정식 고증이 아닌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루거나 SF 컨셉의 작품이라면 납득할 수도 있겠지만, 정통 FPS를 대표하는 배틀필드 같은 작품에서 이런 시나리오를 선보인 이유를 개발자에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이처럼 배틀필드5는 다소 부족한 싱글 플레이를 지니고 있지만, 게임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의 경우 그 동안의 게임에서 볼 수 없었던 거대하고, 전장 한복판에 서있는 미력한 개인이 느끼는 전쟁의 분위기를 제대로 담아낸 모습이었다.
더욱이 지금까지 공개된 캠페인이 대부분 2차 세계대전 초반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봤을 때 이후에는 미군의 참전과 소련의 레닌그라드 전투 등 세계 역사를 바꾼 굵직한 전투가 추가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며, 나치의 유럽 정복으로 시작된 초반부터 미국의 참전, 소련과의 치열했던 동부전선에 이르는 방대한 2차 세계대전 전체를 다루겠다는 큰 포부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꿈은 높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이러한 포부가 무색하게 배틀필드5의 첫 발걸음은 삐끗한 수준을 넘어 완전히 진흙탕에 빠진 모습이다.
본 기자가 플레이해 본 배틀필드5는 분명 나름의 색을 지닌 수작이었고, 세간의 평가대로 역대 배틀필드 시리즈 중 최악의 평가를 받을 만한 게임이 아니었지만, 얼마전 많은 게이머들을 분노케 했던 '반 값 세일'에서 확인할 수 있듯 배틀필드5는 아직도 쇠더버그의 '그 발언'으로 촉발된 논란에 단단히 박힌 미운털이 빠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배틀필드5의 개발비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게임의 퀄리티와 규모, 향후 계획을 유추해 볼 때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갔고, 또 앞으로도 추가될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이렇듯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갔고, 또 수 천 명의 직원들이 피땀 흘려 만든 작품이 고작 한 인물의 섣부른 발언 때문에 시작부터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과연 누가 배우지 못한 사람일까?
하지만 이 논란 속에 쇠더버그는 떠났고, 게임은 그대로 남았다. 앞으로 이 배틀필드5가 이 논란을 극복할 만한 엄청난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을지 아니면, 이대로 입 때문에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 게임으로 남을지 학력이 부족한 본 기자는 모르겠으나 이 것 하나는 확실할 것 같다. 앞으로 게이머들의 속을 뒤집어 놓을 개발자들의 발언은 줄어들 것이란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