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신 까마귀에서 느끼는 젤다의 감성? 예상치 못한 수작 '데스도어'
잡몹 따윈 존재하지 않는 보스전 릴레이, 그리고 너도 한방, 나도 한방이라는 강렬한 전투로 많은 팬을 확보한 타이탄 소울의 개발사 애시드 너브(acid nerve)가 새로운 신작 데스도어를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데스도어는 영혼을 수확하기 위해 여러 세계를 여행하는 사신 까마귀의 모험을 그린 액션 어드벤처 게임으로, 전작의 강점이었던 보스전 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스토리, 매력적인 세계를 탐험하는 재미까지 더해, 인디 게임 시장에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출시되자마자 호평이 이어지면서 이미 메타스코어도 80점대를 넘어섰으며, 다크 소울과 젤다의 전설의 강점을 섞어놓은 듯한 게임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전작인 타이탄 소울은 인상적인 도트 그래픽과 긴장감 넘치는 보스전의 매력으로 호평을 받긴 했지만,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는 빈약한 스토리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게임이었다. 개발사에서 이 점을 의식했는지 이번 작품은 시작부터 스토리에 힘을 팍 준 느낌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무려 칼을 들고 다니는 까마귀이며, 직업은 죽음을 거부한 강력한 이들의 영혼을 회수해야 하는 사신이다. 첫 등장부터 신입 티를 팍팍내는 어리버리한 까마귀는 일에 찌들어 있는 공무원 까마귀의 지시를 받고 저승과 인간계를 연결하는 문을 통과해서 여러 세계를 여행하게 되며, 지시받은 영혼들을 하나씩 수집하면서 이 세계에 감춰진 비밀에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된다.
개성적인 스토리의 매력을 더욱 끌어 올려 주는 것은, 각각의 세계마다 다른 개성을 담고 있는 매력적인 3D 그래픽이다. 전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눈으로 봐도 인상적인 그래픽이지만, 전작을 경험한 사람들은 더욱 깜짝 놀라게 될 것 같다. 인디 게임에서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게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이 첫 번째 3D 그래픽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항아리 저택에서 바닥에 비치는 사물들의 모습이나, 쓸쓸함만이 가득한 명계의 모습, 대미지를 입으면서 서서히 금이 가는 몬스터들의 모습 등 게임 곳곳에서 개발팀의 디자인 센스를 느낄 수 있다.
전작의 최고 강점이었던 전투는 3D로 변한 이번 작에서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기본적으로 HP가 적고, 적들의 한방이 강력하다보니, 순식간에 사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아슬아슬한 한계까지 치고, 빠져야 하는 긴장감 넘치는 전투가 다크소울을 연상시킨다.
특히, 보스전만 존재했던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이동과정에서 졸개들과 계속 만나게 되는데, 수가 많다보니 오히려 보스보다 더 어렵다고 느껴질 정도다. 퍼즐을 풀어 목적지까지 가는 단축 길을 열지 못하면 계속 졸개들을 반복해서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플레이 내내 ‘사망’이라는 강렬한 문구를 계속 보게 된다. 그나마 중간 중간 배치된 단지에 씨앗을 심어서 나오는 꽃을 섭취해 체력을 회복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나, 전투 중에 마음대로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게 아니다보니, 계속 자신의 느린 반응 속도를 탓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죽어도 그때까지 획득한 몬스터들의 영혼이 누적되기 때문에, 계속 죽으면서 캐릭터를 강화시키다보면 언젠가는 깨지긴 한다.
보스전 역시 매우 인상적이다. 보스들은 전작 타이탄 소울과 마찬가지로 매우 다양한 패턴으로 까마귀를 압박해오며, 3D로 표현된 거대한 보스들의 모습이 전작보다 더 위압감을 느끼게 만든다. 초반에는 달랑 4칸 밖에 안되는 HP 때문에, 한 대도 안 맞을 각오로 적의 패턴을 파악해야 하며, 패턴 중간에 약간씩 빈틈이 보일 때마다 아슬아슬한 한계까지 때리다가 다시 구르기로 거리를 벌리는 것에서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근접 무기 뿐만 아니라, 화살, 마법 등 보조 능력을 적절히 활용하도록 만든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화살, 불꽃 마법, 폭탄, 갈고리, 이렇게 4가지로 구성된 보조 능력들은 사실 전투보다는 밑에서 설명할 퍼즐을 푸는 용도로 더 많이 쓰이기는 하지만, 전투에서도 갈고리를 적에게 걸어서 거리를 단숨에 줄이는 등 적절한 타이밍에 쓰면 굉장히 효과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적을 불태워서 계속 대미지를 입히는 불꽃 마법의 강화판을 얻은 다음에, 근접전이 힘든 적들을 이전보다 쉽게 깨기도 했다.
전작의 보스전이 워낙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이번 작 역시 보스전이 먼저 주목을 받고 있지만, 퍼즐 부분의 완성도도 대단히 뛰어나다. 죽으면 정해진 위치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소울 라이크 장르에 가깝기 때문에, 단축 길을 여는 것이 게임의 핵심 콘텐츠인데, 단축 길을 여는 방법이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과 각종 퍼즐들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지만, 나중에 보조 능력을 하나씩 획득하게 되면, 폭탄 마법으로 길을 막고 있는 돌덩이를 파괴하거나, 불꽃 마법으로 횃불에 불을 붙여서 문을 열기도 하고, 갈고리를 써서 끊어진 길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특히, 여러 지역에서 소중한 HP와 마력 최대치를 올려주는 조각을 주는 사당을 찾을 수 있는데, 정말 잘 숨겨져 있어서 찾기도 힘들고, 보조 능력이 없으면 아예 갈 수 없는 곳들도 많다. 이렇게 숨겨진 곳들을 찾아내서 퍼즐을 풀고 사당에 도달하는 과정이 마치 초창기 젤다의 전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솔직히 자신의 컨트롤 실력을 계속 탓하게 만드는 게임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이번 작 역시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플레이를 했지만, 기대 이상의 완성도 때문에,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플레이를 하게 됐다. 이전에 인디 게임으로 출발했다가 이제는 대형 게임으로 자리잡은 오리와 눈먼숲 시리즈를 플레이한 후 이 시리즈만한 완성도를 갖춘 인디 게임은 다시 보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에 못지 않은 보석을 찾아낸 기분이다.
물론, 중간 중간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게 만드는 인디 게임 특유의 불친절함과, 너무 가혹하게 컨트롤을 요구하는 게임 플레이에 화가 날 때도 있긴 하지만, 이 게임이 가진 장점은 그 모든 짜증까지 이 게임의 개성이라고 인정하게 만들만큼 매력적이다.
타이탄 소울에서 긴장감 넘치는 보스전을 만드는 실력을 과시했고, 이번에 데스 도어로 퍼즐도 잘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애시드 너브가 다음에는 또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