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딴지곰 겜덕연구소] 하얗게 불태웠어.. 불꽃처럼 살다 스러져간 명작 게임사들!
(해당 기사는 지난 2021년 2월 4일 네이버 포스트 게임동아 꿀딴지곰 겜덕연구소를 통해서 먼저 소개된 기사입니다.)
안녕하세요! [꿀딴지곰 겜덕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조기자입니다. 이번에도 지식인에서 고전게임 전문 답변가로 활동하고 계신 꿀딴지곰님을 모셨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한 때 세상을 평정하듯 호령했으나 시대의 흐름을 넘어서지 못하고 스러져간 명작 게임사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추억의 게임사들!]
조기자 : 안녕하세요 교수님, 오늘은 다소 씁쓸한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이제는 다시 게임을 출시할 수 없는, 추억으로만 존재하는 게임사들을 살펴보는 시간이니까요.
한 때 세상을 주도할 정도로, 불꽃같은 열정으로 치열하게 게임 개발을 했으나, 끝내 하얗게 불태우고 사라져버린 게임 개발사들.. 정말 많지요.
꿀딴지곰 : 그렇습니다. 게임을 좋아한다고 자부하시는 분들 중에서는 각자 본인이 꼽는 최고의 게임 리스트 하나씩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게임이 갑자기 개발사의 파산으로 사라진다면? 혹은 합병으로 인해 완전히 다른 장르의 게임으로 전락해 버린다면?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수준이겠죠.
불꽃처럼 시대를 풍미한 게임을 선보이고도 자금의 압박 혹은 트랜드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해 기억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게임사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들 게임사들이 과연 어떤 과정 속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는지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 5대 게임사의 거짓말 같은 몰락- THQ!]
꿀딴지곰 : 크리스마스 시즌이 한창이던 2012년 12월 20일, 전세계 게이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로 2010년 세계 5대 게임사로 이름을 날리던 THQ가 파산 신청을 한 것이죠.
조기자 : 크으... ‘WWE 스맥다운’, ‘세인츠로우’, ‘컴퍼니오브히어로즈’, ‘홈월드’, ‘다크사이더스’, ‘워해머 던오브워’ 시리즈까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히트 게임을 소유한 THQ의 파산 신청은 게이머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던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꿀딴지곰 : 1989년에 설립된 THQ는 ‘Toy Head Quarters’(장난감 본부 지구)에서 이름이 유래했을 만큼 장난감 제작 회사에서 출발한 회사였습니다. 이내 게임 개발을 주력 사업으로 결정한 THQ는 디즈니와 픽사와 같은 유명 제작사에서 라이선스를 확보해 게임을 개발하는 식으로 성장을 이뤄가기 시작하게 되죠.
조기자 : 이 THQ가 게이머들에게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프로레슬링의 판권을 획득하여 ‘WWE 시리즈’를 선보이면서 부터 아닌가요?
꿀딴지곰 : 네. THQ가 프로레슬링 게임의 명가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레슬링 장르 외에도 RTS 장르의 명작 ‘컴퍼니오브히어로즈’, 혁신적인 액션으로 주목 받은 ‘레드 플래닛’, 막장 GTA로 잘 알려진 독특한 오픈월드 게임 ‘세인츠로우’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선보이며 THQ는 전세계 15개 이상의 게임 스튜디오를 지닌 거대 게임사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특히, 지난 2002년 12월 THQ 코리아를 설립하면서 국내 게이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죠.
꿀딴지곰 : 더욱이 ‘워해머40K 던오브워’의 소설 판권을 획득하며 제작한 ‘워해머40K: 던오브워’ 시리즈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새로운 프렌차이즈로 자리잡기도 했으며, 아동용 게임 사업 역시 활발히 진행하는 등 THQ는 그야말로 ‘돈을 찍어내는’ 회사로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죠.
꿀딴지곰 : 하지만, 너무도 커져 버린 기업의 고질병인 기업병이 회사 전체를 강타하며 점차 내부 분위기가 경직되기 시작했고,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개발된 게임들의 수익이 저조해지면서 서서히 THQ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게 됩니다.
디즈니, 픽사 등 엄청난 라이선스 비용을 제공해야 하는 게임이 대다수였던 THQ의 특성상 많은 판매를 기록해야 했지만 이들 게임의 수익이 점차 감소하면서 매출은 높지만 이득이 없는 상황에 처한 겁니다.
조기자 : 음.. 아이피 쪽에 돈주고 카카오에 뜯기고.. 일은 열심히 하지만 영업이익이 적은 선데이토즈 같은 느낌도 드는군요.
꿀딴지곰 : 순수익 감소의 타격이 큰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야심차게 판매한 게임 콘트롤러 ‘uDraw’의 실패는 THQ의 하락세를 더욱 가속화 시킨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조기자 : 음;; 제발 잘 하던 거나 해야...
꿀딴지곰 : 2010년에 판매를 시작한 ‘uDraw’는 PS3, Xbox 360, 닌텐도 Wii 등 무려 3개의 게임기에 호환되는 것은 물론, 그림을 그리는 테블릿과 게임 조작을 동시에 지원하는 게임 컨트롤러였습니다. 아동과 저학년 게이머를 타겟으로 한 것이 분명한 이 기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닌텐도 Wii 용으로 무려 100만 대가 팔려 나가며 THQ의 고위진들을 고무시켰고, 곧바로 PS3, Xbox360 버전의 출시를 이어가게 만들었죠.
그러나 성인 게이머들이 대다수였던 PS3와 Xbox360에서 아동용으로 만든 컨트롤러에 관심을 보이는 이는 거의 없었고, ‘uDraw’ 전용 게임이 3개 게임기 합쳐 10개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조기자 : 흘흘. 결국 게임기의 핵심은 소프트이거늘..
꿀딴지곰 : 전용 게임을 개발해야만 진가를 발휘하던 ‘uDraw’를 게임 개발사들이 외면하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uDraw’는 무려 140만 대의 재고가 쌓이며 THQ의 재앙으로 떠오르게 되었죠. 결국 THQ는 판매를 중지하게 되었으며, 이는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실패 중 하나로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한 해에 8억 달러(한화 9,240억 원) 이상의 수익을 거두던 THQ도 이러한 손해를 감당할 수는 없었고요, 투자 실패와 연이은 게임들의 수익 저조는 곧 회사에 엄청난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2012년 2월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THQ는 자금 확보를 위해 회사의 프렌차이즈 게임의 판권과 스튜디오를 외부에 매각하기 시작하는데요, 2010년 12월 THQ 코리아가 철수한 것에 이어 게임 시리즈의 판권과 스튜디오를 외부에 매각하며 회생을 노리는 방식을 썼죠.
조기자 : 저도 기억납니다. 한창 스튜디오 매각이 가속화되던 2012년에 THQ 게임들이 인터넷 묶음 판매 사이트 ‘험블 번들’에 세트로 덤핑 판매되는 것은 물론, 스팀 연말 세일에 워해머의 전 시리즈가 9.99달러에 판매되는 등 게이머들 또한 THQ의 몰락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었었거든요...
꿀딴지곰 :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THQ는 2013년 1월 3일 결국 나스닥에 상장 폐지되며, ‘던오브워’, ‘컴퍼니오브히어로즈’를 개발한 렐릭 게임즈를 ‘세가’에, WWE 판권을 ‘테이크투’에 넘기는 등 산하 스튜디오가 경매에 판매되며 20년이 넘는 회사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말게 됩니다.
조기자 : 개인적으로도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합니다. 당시 THQ 코리아 지사장님과 가끔 삼각지에 맛있는 중국집 찾아가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말이죠;
꿀딴지곰 : 한 때 세계를 호령하며 글로벌 5대 게임사로까지 불리우던 THQ.. 정말 하얗게 불태운 회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어드벤처와 스타워즈 게임의 명가 - 루카스아츠]
꿀딴지곰 : 자아. 두 번째로 소개할 게임사는 루카스아츠 입니다. 이 루카스아츠 만큼 올드 게이머(30세 이상)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회사도 드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판당고, 원숭이섬의 비밀 등 지금도 회자되는 명작 어드벤처 게임을 비롯해 남자들의 로망이 듬뿍 담긴 스타워즈 시리즈를 선보이며 당당히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회사이기 때문이죠.
이 루카스아츠는 루카스필름의 대표 조지 루카스가 1982년 3월 창립한 ‘루카스필름 게임즈’로부터 시작되는데요, 전세계적으로 대히트를 기록한 '스타워즈'를 보유한 루카스 필름은 이내 게임 쪽에도 관심을 보였고, 특히 어드벤처 게임에 주목했었죠.
당시 PC 성능으로는 스토리를 중시한 어드벤처 게임이 제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꿀딴지곰 : 어드벤처 게임 시대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게임 ‘공포의 저택’을 비롯해 얼마 전 HD 리마스터로 큰 화제를 불러온 불후의 명작 ‘그림판당고’와 어드벤처 게임의 정수로 불리는 ‘원숭이섬의 비밀’ 시리즈 등 유머와 스토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을 연이어 히트 시키며 ‘루카스필름 게임즈’는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게임사로 성장하게 되지요.
꿀딴지곰 : 이후 1991년, '루카스필름 게임즈'는 자회사로 독립하면서 ‘루카스아츠’가 되었는데요, 이후 스타워즈 판권을 적극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으며, ‘X-wing’, ‘타이 파이터’ 등의 작품으로 연이은 성공을 기록합니다.
조기자 : 그렇죠. 2000년대 들어 어드벤처 게임 출시 중단을 발표하며 전세계 게이머들을 경악시키기도 했지만, 이내 RPG, 액션 등의 장르에 집중하면서 ‘스타워즈 구공화국기사단’, ‘제다이나이츠’, ‘스타워즈 배틀프론트’ 등 수작을 출시해내더라구요. 그때가 되어서야 많은 게이머들이 어드벤처는 접었어도 역시나 게임 명가 맞구나.. 라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었죠.
꿀딴지곰 : 그렇습니다. 스타워즈 게임의 인기는 대단했고, 체질 개선도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을만 했으니까요. 이후 '루카스아츠'는 2011년 구공화국 기사단에서 호흡을 맞춘 바이오웨어와 공동으로 개발한 ‘스타워즈: 구공화국기사단‘ 온라인을 선보인 것에 이어, 차세대 게임기와 변화한 트렌드에 맞춘 게임을 준비 중이었는데요, 돌연 큰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모회사인 루카스 필름이 디즈니에 인수된 것이죠.
꿀딴지곰 : 2013년, 디즈니는 결국 ‘루카스아츠’에서 개발 중이던 게임들을 하나 하나 정리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심지어 2013년 4월 3일! 공식적인 스튜디오 폐쇄를 발표하며 100여 명의 개발자를 모두 해고해버리고 맙니다. 이는 전세계 게이머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고, 사실상 이때 게임 사업부가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조기자 : 전세계 게이머들을 경악시킨 사건.. 이렇게 루카스아츠가 허무하게 사라져 버릴 줄은 아무도 몰랐겠죠.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 이후로 각 게임의 판권은 흩어져버린 거죠?
꿀딴지곰 : 그렇죠. 현재 스타워즈의 게임 판권은 각 회사들로 흩어진 상황이죠 뭐. ㅎㅎ
그래도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지난 2004년에 루카스아츠의 어드벤처 게임 출시 중단에 항의하며 퇴사한 개발자들이 그뒤 설립한 게임사 ‘텔테일 게임즈’가 2012년 어드벤처 게임 ‘워킹데드’를 선보이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는 것입니다.
꿀딴지곰 : 특히 이 워킹데드는 잘 짜여진 각본과 몰입도 높은 영상미, 그리고 게이머들의 선택에 따라 변화하는 스토리로 2012년 각종 상을 휩쓸었으며, 어드벤처 게임의 부활을 알린 게임으로 평가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루카스아츠는 사라졌지만, 어드벤처 시대의 신호탄을 쏜 루카스아츠의 개발진들이 만든 회사가 어드벤처 게임의 부활을 알린 작품을 선보였다는 건 매우 흥미로운 점이죠. 명작 개발사의 DNA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증명한 셈입니다.
[어드벤처의 명가, 복귀를 꿈꾸는 전설의 회사- 시에라]
꿀딴지곰 : 이제는 '그런 회사가 있었나?' 할 정도로 가물가물 해졌지만, 80 ~90년대를 게임으로 불태운 게이머들에게 시에라 엔터테인먼트는 게임회사 그 이상의 존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도 회자되는 전설의 게임 ‘미스터리 하우스’와 ‘킹스 퀘스트’, ‘시저’ 시리즈를 제작한 개발사이기 때문이죠.
조기자 : 그렇죠. 적어도 PC로 하이텔이나 나우누리를 즐기며, 어드벤처 게임에 빠져들었던 중년 게이머분들께 시에라의 위상은 각별했다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그래픽을 자랑하던 시에라 게임을 즐길 때의 감동은 쉽사리 잊혀지지않는 추억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꿀딴지곰 : 1979년 켄 & 로버타 윌리엄스 부부에 의해 창립한 시에라는 처음에는 온라인 시스템즈라는 이름의 작은 회사였습니다. 그러다 회사의 이름을 자신들의 사는 집 뒤에 위치한 시에라 산의 이름을 따 ‘시에라 온라인’으로 바꾼 이들은 아내 ‘로버타’가 집에서 개발한 어드벤처 게임 ‘미스터리 하우스’가 엄청난 흥행을 거두면서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에 착수하게 되는데요,
꿀딴지곰 : 이 ‘미스터리 하우스’는 단순 텍스트로 이뤄진 기존의 게임에 그래픽이라는 요소를 더한 혁신적인 게임이었는데, 지금 보면 '이게 무슨 그래픽이냐' 할 정도지만, 당시에는 게임에 영상을 더한 기념비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게임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애플 컴퓨터를 사실상 혼자서 개발하다시피 한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이 직접 이들에게 “우리가 개발한 애플 II 컴퓨터로 이런 게임을 하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편지를 보낼 정도였지요.
꿀딴지곰 : 이후 ‘타임 존’, ‘판타즈마고리아’, ‘로라 보우’ 시리즈 등 굵직굵직한 게임들이 아내인 로버타의 주도 아래 개발되면서 명성을 쌓아온 ‘시에라 온라인’은 점차 어드벤처 게임의 명가로 자리잡기 시작하게 됩니다.
특히 시에라 온라인은 1984년 ‘킹스 퀘스트’를 선보이면서 게임업계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게 되는데요, 이 ‘킹스 퀘스트’는 그림과 텍스트로 행동을 결정하던 기존의 게임들과는 달리 캐릭터를 직접 움직여 문제를 해결하는, 굉장히 혁신적인 게임이었습니다.
마치 글로 모든 것을 결정하던 머그게임에서 캐릭터가 움직이며 상호작용하는 최초의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가 등장한 것처럼 .. 게임의 역사에 있어 큰 충격을 던져준 것이죠.
꿀딴지곰 : 이는 시에라가 굉장히 진취적인 회사여서 가능했다고 보는데요, 수장인 로버타가 최초의 여성 개발자인 것을 비롯해 회사 내부에 여성 개발자의 비율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사실상 게임업계에 여성 개발자의 역사가 바로 이 시에라에서 시작된 셈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조기자 : 그렇군요. 오히려 상상력이나 감성적인 면에서 훨씬 장점이 있었을 수도 있겠는데요?
꿀딴지곰 :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에라의 어드벤처 게임은 라이벌인 ‘루카스아츠’에 비해 상당히 섬세하거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게임이 많았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래리 시리즈’로 미국식 화장실 개그와 온갖 성적인 표현+농담으로 가득한 이 게임은 무려 20년 동안 성인 어드벤처 게임의 바이블로 군림하기도 했습니다.
조기자 : 래리 시리즈.. 성인 게임이라는 점도 포함해서... 국내에서도 나름의 매니아층이 있는 게임이었죠.. (-_);; 5부터였나 VGA 전용으로 바뀌어서 허큘리스 유저들을 슬프게 했던..;
꿀딴지곰 : 하지만 이러한 영광의 80~90년대를 지나, 본격적인 그래픽 게임들과 액션 장르가 인기를 얻으면서 시에라의 시대도 서서히 저물기 시작합니다.
비록 90년대 중반까지 ‘폴리스 퀘스트’, ‘스페이스 퀘스트’, ‘가브리엘 나이트’ 등의 명작 게임을 선보이며 회사가 성장하기는 했지만, 이후 침체에 빠지기 시작했고 이내 여러 장르의 게임 유통에 손을 뻗게 되죠. 바로 이 시기 시에라가 배급을 담당한 게임이 바로 전설의 게임 ‘하프라이프’와 ‘홈월드’인데요, 벨브와 렐릭 게임즈라는 두 게임업계의 거물이 시에라를 통해 데뷔한 것은 또 하나의 재미난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겠군요.
꿀딴지곰 : 이후.. 경영이 어려워진 시에라는 비벤디에게 회사의 지분을 매각하게 되고, 이후 비벤디가 블리자드-액티비전으로 편입되고 다시 두 회사가 분리되면서 이내 시에라는 액티비전의 산하 스튜디오로 편입되게 됩니다. 어드벤처의 명가 시에라 온라인이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죠.
하지만 이 시에라 온라인이 이렇게 끝나진 않았습니다. 지난 2013년에 시에라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신작 게임의 소식을 알렸으며, 2015년에 ‘킹스 퀘스트’의 최신작을 선보였죠. 국내에서도 PSN 플러스 무료 게임으로 이 리메이크 버전을 접하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list=UUnZbJ3Kg1LWDJBmBmLmRC6w&v=MeV3PBY5Efg&feature=emb_logo
꿀딴지곰 : 이처럼, 시에라는 지금도 많은 게이머들의 추억 속에서 최고의 게임사이며, 언제든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죠. 앞으로도 새로운 명작 어드벤처 게임이 탄생할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 ^^
[누군가에게는 세계 최고의 게임사 '엘프']
꿀딴지곰 : 지난 2016년 3월 1일, 국내 커뮤니티를 발칵 뒤집어 놓은 소식이 전해졌었습니다. 바로 일본의 게임 개발사 엘프가 홈페이지를 통해 3월 31일 공식적인 폐업을 선언한 것 때문이었죠.
이 소식은 여러 웹진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여러 블로그에서 과거 엘프를 추억하는 포스팅이 이어졌고, 과거 자신이 구매했던 게임을 소개하는 게시물이 큰 화제가 되는 등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게 됩니다.
스퀘어에닉스나 세가, 코나미, 반다이와 같은 수백억 원을 벌어들이는 게임사도 아니고, 수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게임 시리즈를 개발한 회사도 아닌, 일개 '19세 등급 게임' 이른바 '에로게'(야겜)을 개발하는 개발사의 폐업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얻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꿀딴지곰 : 사실..엘프는 어찌 보면 한국과 전혀 인연이 없는 회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9세 게임의 출시가 거의 불가능한 한국 심의 규정상 엘프의 게임들은 정식 출시된 사례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며, 그 마저도 다량의 장면이 삭제된 전연령 버전만이 유통을 통해 들어왔거든요.
하지만 90년대와 2000년대에 저작권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고 게이머들의 인식 마저 흐렸던 시절, 당시 피끊는 청춘기를 보내던 당시의 20~30대 게이머들에게 엘프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게임사로 불리웠습니다. 인지도 높은 어둠의 게임사라고 보는게 더 편하겠군요. :)
꿀딴지곰 : 엘프의 시작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의 유명 에로게 개발사에서 독립한 이들이 창립한 엘프는 당시 일본에 만연한 에로게 게임들과 차별화를 꾀하는 독특한 컨셉의 게임을 개발하는 것을 모토로 한 회사였죠.
당시 일본에서 에로게 게임을 보는 시각은 지금의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요, 에로게 게임에 대한 단속과 심의가 굉장히 높은 수준이었고, 게임 자체도 단순 파격적인 설정의 저 퀄리티 게임이 대다수라 음지에서 즐기는 게임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꿀딴지곰 : 이러한 상황에서 엘프는 치밀한 설정을 지닌 판타지 RPG와 에로게를 접목시킨 게임을 자신들의 첫 작품으로 선보이게 되니.. 이 작품이 바로 '드래곤나이트' 입니다.
1989년 11월 발매된 '드래곤나이트'는 당시 유행하던 횡스크롤 RPG에 에로게를 접목시켜 일개 하청 개발사였던 엘프를 일약 중소 개발사로 도약시킨 작품으로, 던전 깊숙한 곳으로 적을 물리치며 그곳에 감금된 미소녀들을 풀어준다는 설정을 통해 지금의 수 많은 던전 RPG에 영감을 준 게임이기도 했습니다.
꿀딴지곰 : 더욱이 인물들 간의 시나리오와 다양한 아이템, 캐릭터의 성장 콘텐츠까지 도입된 '드래곤나이트'는 게임 그 자체만으로도 수작이었으며, FM TOWNS, X68000 등의 다양한 플랫폼으로 이식되어 일본을 넘어 미국, 유럽 등지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조기자 : 저도 현역 시절에는 이 게임이 19세 이상인지 몰랐습니다. 원작보다 많은 부분 수정되어 있었거든요. 실제로 몇몇 국가에서는 이 게임이 19세 게임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고, 무리하게 삭제한 콘텐츠 덕에 많은 버그가 발생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네요. 그럼에도 인기가 많았다는 것은 게임 자체가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꿀딴지곰 : 흐흐. 실제로 게임만 놓고 봐도 명작이죠.
그리고 이러한 흥행에 힘입어 새로운 차기작의 개발에 매진한 엘프는 1992년 또 하나의 수작을 내놓게 되니.. 이 작품이 바로 국내 게이머들에게 '이것이 연애다!'라는 감정을 일깨워 준 게임이자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에게 '레전드'의 칭호가 아깝지 않은 명작으로 불리는 작품 '동급생' 입니다.
꿀딴지곰 : 아직까지도 '전설이 아닌 레전드' 급의 작품으로 분류될 정도로 인정받는 '동급생'은 각 캐릭터별로 다른 공략 루트를 부여하고, 남성들의 취향에 따라 연상, 연하 심지어 커리어 우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여성을 등장시켜 이성 간의 연애라는 큰 틀에 어드벤처와 시뮬레이션 요소를 도입한 혁신적인 게임이었습니다.
'로도스도 전기' 등의 인기 애니메이션의 작화를 맡은 바 있는 '타케이 마사키'가 참전하고, 엘프는 이들 캐릭터 하나하나에 모두 스토리를 입힌 것은 물론, 원화에 최대한 가까운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 당시 '16색' 이었던 하드웨어의 한계를 극복해 낸 엄청난 그래픽을 연출해냈습니다. 당시의 게임 그래픽이 일일이 손으로 찍어내는 도트 그래픽인 점을 감안할 때 당시 게이머들에게는 충격적인 수준의 비주얼이었다고 할 수 있죠.
조기자 : 눈이 높아질만큼 높아진 지금봐도 나쁘지 않은 그래픽이니.. 당시 기준으로 보면 천지가 개벽할 수준이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꿀딴지곰 : '동급생' 이후 국내 게이머들의 관심은 엘프의 다른 작품에 집중됐고, 이에 '노노무라병원사람들'(1996년 발매), '유작 시리즈'(1995년 발매)와 같은 게임들도 덩달아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엘프는 '애자매', '하급생',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소녀 YU-NO' 등의 히트작을 쏟아내며 영광의 90년대를 보내게 되는데요, 이러한 엘프의 부흥도 영원하진 않았습니다. 2000년대 들어 급격히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조기자 : 갑작스러운 매출 저조.. 이유가 뭔가요?
꿀딴지곰 : 뭐.. 2000년대 이전에는 X68000이나 FM타운즈 등 일본 고유의 PC들이 격돌하던 시기였고,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에로게에 대한 제재도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가 되면서 당시 게임시장의 플랫폼이 통합되어 갔고, 때문에 19세 게임에 대한 제재의 상승과 함께 설자리가 점점 좁아졌습니다. 다양한 기기에 마음껏 에로 게임을 선보임으로써 수익을 거뒀던 엘프에게 있어선 심각한 타격이 아닐 수 없었죠.
조기자 : 아하 시대적인 변화가 있었군요. 광범위하게 유통될 수 있는 시기의 몰락. 하지만 게임 내용을 보면 제재가 가해지는 게 맞다고 보여집니다.
꿀딴지곰 : 그러다보니.. 엘프는 자사의 게임을 반프레스토, NEC 애비뉴 등의 유통사를 통해 출시하기 시작했는데... 이마저도 판매가 신통치 않자, 이전 작품들을 리메이크하여 선보이는 식으로 노선을 바꾸게 되는데요, 문제는 이들 리메이크 게임을 출시하면서 유통사에게 게임의 판권까지 같이 넘겼다는 것입니다.
꿀딴지곰 : 실제로 동급생과 드래곤나이트 등 엘프하면 떠오르는 게임 중 상당수는 그때 반프레스토나 NEC 애비뉴로 넘어가버렸구요,이들 게임의 판권을 넘긴 이후 만든 신작들 역시 크게 주목받지 못하면서 엘프의 규모는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더욱이 2014년 엘프의 핵심 멤버들과 함께 산하 게임사 '실키즈'의 멤버들이 '실키즈 플러스'라는 독립 회사를 세우며 사실상 성장 동력원을 잃어버렸고, 2015년 10월 발매된 '마로의 환자는 가텐계 3'라는 게임의 엔딩 크래딧에 Thank you for the last 27 years(27년간 정말로 감사했습니다)라는 문구가 삽입되면서 회사가 문을 닫는 것이 아니냐는 루머가 퍼지기 시작하죠.
꿀딴지곰 : 그리고.. 마침내. 2016년 3월 1일. 엘프는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회사의 폐업을 공식적으로 선언함으로써 루머는 곧 사실로 밝혀지게 됩니다.
조기자 : ㅠ_ㅠ 폐업 소식을 듣고 썩 좋은 기분은 아니더군요. 마음 한 편에 있던 추억이 하나 사라지는 느낌이었으니까요. 90년대, 20-30대 PC 게이머들 중에 이 엘프사로부터 자유로웠던 남성 게이머들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19세 이상 표현도 분명히 있었지만, 게임성도 타 게임을 압도하는 수준이었던 명작 게임사 엘프. 비록 세월에 쓸려 사라졌지만, 추억은 여전히 한아름인 것 같습니다.
꿀딴지곰 : 자아.. 오늘은 여기까지. 조기자님 오늘 이렇게 게임사 4곳을 살펴봤는데, 어떠셨는지요?
조기자 : 흐. 너무 좋았습니다. 어린시절 저희의 마음 속에 영원할 것 같던 게임사들이 어떻게 발전해서 어떻게 흥하다 어떻게 저버렸는지 정리가 되어 좋았습니다. 역시나 그들 개발사는 사라졌어도, 게임은 여전히 남아있으니.. 슬퍼하기만 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교수님.
꿀딴지곰 : 네 조기자님, 건강이 최고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고, 건강 관리하셔서 다음주에도 밝은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조기자 : 네에 교수님.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주에 뵙지요. 이렇게 이번 시간에는 '불꽃처럼 불태우다 하얗게 스러져간 명작 게임사들’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는데요, 혹시나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조기자 (igelau@donga.com)나 어릴적 추억의 고전게임 이름이 궁금할때 꿀딴지곰 지식인 질문하기http://kin.naver.com/profile/valmoonk 로 문의주시면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꿀딴지곰 소개 :
레트로 게임의 세계란 '알면 알수록 넓고 깊다'며 더욱 매진해야겠다는 레트로 게임 전문가. 10년째 지식인에서 사람들의 잊어버린 게임에 대한 추억을 찾아주고 있는 전문 앤서러이자 굉장한 수준의 레트로 게임 헌터이기도 하다.
조기자 소개 :
먼산을 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나니 레트로 게임에 빠지게 되었다는 게임기자. MSX부터 시작해 과거 추억을 가진 게임물이라면 닥치는대로 분석하고 관심을 가지며, 레트로 게임의 저변 확대를 위해 레트로 장터나 네오팀 활동 등을 하고 있다. 다양한 레트로 게임 개조를 취미삼아 진행중이며 버추어파이터 쪽에서는 igelau로 알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