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야기를 바꾸는 선택의 순간들. 트라이앵글 스트래티지
택틱스 오우거,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 더 최신(?) 게임이라고 하면 삼국지 조조전, 슈퍼로봇대전, 파이어 엠블렘 등으로 대표되는 SRPG 장르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선물이 등장했다.
스퀘어에닉스에서 최근 발매한 닌텐도 스위치용 게임인 ‘트라이앵글 스트래티지’는 일본 고전 RPG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RPG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옥토패스 트래블러’, ‘브레이블리 디폴트2’ 개발진이 참여한 SRPG다.
요즘은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르가 주를 이루고 있다보니, 한턴 한턴 장기나 바둑 같은 느낌으로 진행되는 SRPG 장르를 지루하게 느끼는 이들이 많지만, SRPG의 짜임새 있는 전략의 묘미에 푹 빠진 마니아들도 적지 않다. ‘트라이앵글 스트래티지’도 처음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SPRG 명작으로 평가받는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독특한 그래픽 때문에 고전 SRPG 팬들의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이 게임은 노젤리아라는 대륙에 존재하는 그린부르크, 에스프로스트, 성 하이샌드 교국이 암투를 벌이는 배경 아래, 주인공 세레노아 월호트 가문이 역경을 헤쳐나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귀여운 그래픽과 달리 세레노아 월호트와 프레데리카 에스프로스트의 정략 결혼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앞으로 묵직한 스토리가 전개됨을 암시하며, 실제로 소금과 철을 독차지하기 위한 각국 지도자들이 암투와 배신, 그리고 종교를 무기로 삼아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는 성 하이샌드 교국 등 무거운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 슈퍼패미콤 시절 추억의 도트 그래픽을 떠올리게 만드는 HD-2D 그래픽으로 인해 심지어 적들까지도 귀엽게 묘사되어 있지만, 이야기의 분위기는 암울한 전개로 유명한 인기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못지않다.
이야기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 이후 전개가 달라지는 신념의 저울이다. 30년 전 암철 대전 시절 영웅이었던 아버지 시몬이 지병으로 쓰러지면서 갑작스럽게 영주가 된 세레노아는 위기 상황이 닥치면 자신의 믿는 사람들과 함께 다수결 투표를 통해 이후 미래를 결정한다.
플레이어가 마음대로 분기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플레이어와 다른 생각을 가진 가신들을 설득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취득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상황에 따라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각종 정보를 활용해서 가신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긴 하지만, 진행 과정에서 나오는 다양한 대화의 선택, 그리고 플레이 성향에 따라 BENEFIT(이득), FREEDOM(자유), MORAL(도덕) 중 특정 성향 수치가 쌓이게 되면, 아예 설득이 안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BENEFIT(이득), FREEDOM(자유), MORAL(도덕)은 어떤 수치를 집중적으로 올리는가에 따라 후반부 스토리가 나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회차 플레이를 유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20장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 스토리가 다소 짧다고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다회차 플레이를 통해 진엔딩까지 보는 것을 생각하면 분량이 짧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전체적인 게임의 흐름은 스토리 컷신, RPG 파트에서 정보 수집, 전투 순으로 이어진다. 먼저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에 대한 정보를 모아서 투표를 통해 방향을 결정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전투가 진행되는 순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투표를 위해 정보를 모으는 RPG 파트의 비중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한참 동안 비주얼 노벨을 감상하다가, 마지막에만 잠깐 전투가 진행되는 느낌이 들 수도 있어, 이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계속 대화 버튼을 누르는 과정이 다소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전투는 아군과의 협동 공격, 고저차로 인한 대미지 변화, 속성 마법으로 인한 지형 상태 변화 등 SRPG 전략 요소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얼음 마법을 써서 지형을 얼리고, 여기에 화염 마법을 써서 물 웅덩이를 만든 다음에, 번개 마법으로 대미지를 극대화시키는 응용 플레이도 된다.
다만, 아군을 성장시켜도 적들은 항상 물량으로 압도하기 때문에 높은 난이도로 진행할 경우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파이어 엠블렘처럼 한번 죽으면 아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공격 범위에 아군이 포함되도 아군은 대미지를 받지 않기 때문에, 미끼를 하나 던져놓고 적을 모은 다음에 범위 마법을 집중시키거나, 함정을 발동시키는 등의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도저히 진행이 안된다고 느낄 때는 대기소에서 진행할 수 있는 모의전을 통해 레벨을 올려서 다시 도전할 수도 있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와 비교하면 전직이 이미 정해져 있고, 장비도 장신구 정도로 매우 간소화되어 있어서, 캐릭터를 육성하는 재미는 다소 부족하긴 하다. 아무래도 스토리 중심의 게임이다보니 캐릭터성을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서 전직 부분을 의도적으로 간소화시킨 것일 수도 있고, 단순히 개발비나 개발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대신 스토리 분기에 따라 획득할 수 있는 캐릭터가 달라지기 때문에, 다회차 플레이를 통해 다양한 특성을 지닌 캐릭터들을 수집해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재미가 있다. 전직의 다양성을 통해 자신만의 부대를 만드는 재미까지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타 SRPG와 비교했을 때 전투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적당한 타협이라고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트라이앵글 스트래티지는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나 택틱스 오우거 같은 고전 SRPG를 추억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고, 만들어진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간소화된 캐릭터 육성 등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기는 하나, 이전보다 훨씬 향상된 그래픽과 명작들과 비교해도 그리 뒤지지 않은 완성도 높은 스토리, 그리고 이용자의 개입에 따라 달라지는 멀티엔딩 등 칭찬할만한 요소들이 더 많다. 요즘처럼 대작들이 쏟아지고 있는 시기에 클래식한 SRPG가 주목받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어떤 대작보다도 알차고, 행복한 시간을 선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