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일생을 돌아보다. 감성 힐링 게임 ‘어라이즈 어 심플 스토리’
“여기 한 노인이 있습니다. 일생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그에게 한가지 아쉬움이 남았는지 낯선 곳에서 다시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런데 왠지 오래 전 기억을 되살려주는 그리움이 느껴지네요.”
보는 순간 뇌 속에서 출발 비디오 여행이 자동 재생이 될 것 같은 인디 게임이 하나 출시됐다. 최근 디지털터치를 통해 닌텐도 스위치 버전으로 발매된 피콜로 스튜디오의 신작 ‘어 라이즈 어 심플 스토리’가 그 주인공이다.
잘 알려진 게임이 아니다보니 이전에 PC로 발매됐을 때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이번에 발매된 닌텐도 스위치용 데피니티브 에디션의 스크린샷을 우연히 본 순간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그래픽에 홀딱 반해서 홀린 듯이 게임을 시작하게 됐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게임은 주인공인 할아버지의 화장식 장면에서 시작해 과거에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통 죽기 직전에 주마등이 스쳐 지나간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게임이다.
어디 나라를 구한 것도 아닌 평범한 남자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죽음까지 이르는 과정을 그대로 담았으니, 악마와 싸워 세상을 구하는 것이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로 영웅들이 가득한 게임 소재로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개발진들은 시간을 조절하는 참신한 퍼즐과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그래픽과 음악을 세련되게 버무리면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함을 특별한 경험으로 바꿔주고 있다. 마치 옆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듯한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 시대를 추억하게 만드는 특별한 소품들과 에피소드로 전국민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오랜 세월로 인해 감정을 잃은 듯 무뚝뚝하게 표정이 인상적인 노인이 이 게임에서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 과정은 일반적인 어드벤처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점프와 갈고리 밧줄을 통해 각종 장애물을 해결하면서 목적지까지 도달하게 되는데, 엄청난 적들이 등장하거나, 엄청난 순발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니 액션성을 중시 여기는 이들에게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플레이 도중에 막힌 길이 등장할 때 시간을 조절해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방식은 기존 어드벤처 게임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색다른 재미다. 과거에도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에서 실수를 했을 때 그 전으로 되돌아가는 시간 조절을 선보이긴 했지만, 이 게임은 단순히 실수를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계절까지 바꿔가면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시간을 빠르게 흘러가도록 해서 눈이 쌓이면 그 전에 올라갈 수 없었던 곳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거나, 정해진 패턴으로 돌아다니는 꿀벌이 근처에 다가올 때까지 시간을 되돌려서, 갈고리 밧줄로 꿀벌에 걸고 목적지로 이동하는 식이다. 순식간에 무너지는 암벽 위로 올라가야 할때는 무너진 상태로 만들어서 올라간 후, 다시 무너지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서 위로 올라갈 수도 있다.
미니 맵이나 목적지 가이드가 전혀 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진행이 막히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천천히 시간을 앞으로, 뒤로 이동시키면서 천천히 생각하면 해결책을 찾게 된다.
또한 단순히 목적지만 찾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이 일생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억들의 환영이 곳곳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그 때의 장면을 가볍게 스케치한 기억의 환영을 찾으면서 플레이를 하다보면 더욱 더 노인의 일생에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감성 힐링 게임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따듯한 그래픽과 음악은 다소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는 스토리와 참신한 시간 조절 퍼즐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즐거운 추억만이 가득한 어린 시절은 꽃잎 위를 뛰어다니거나, 연을 타고 하늘을 나는 등 따뜻한 감성만 담았고,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면서는 각종 위기가 닥치면서, 절벽이 무너지거나, 불길이 앞을 막는 등 암울한 화면이 계속된다. 예전에 감동 깊게 봤던 픽사의 유명 애니메이션 ‘업’을 떠올리게 만드는 연출이 게임 내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한 언급을 할 수는 없지만, 중간에 주인공의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을 겪는 시기가 나오는데, 대사 한마디 없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움직임 하나 하나가 심장을 후벼판다.
음악 역시 대사 한마디 없는 주인공의 감정 상태를 대신해서 알려준다. 기쁠 때는 환희로 가득찬 음악이 흘러나오고, 슬퍼할 때는 한없이 우울한 음악이 우중충한 위험지대를 더욱 더 위험하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사람의 마음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가슴 깊은 곳까지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BGM이다.
전체적으로 게임 플레이 분량이 짧은 편이고, 시점의 답답함으로 인해 자주 낙사가 발생하는 등 좋은 점만큼이나 아쉬운 부분도 많은 게임이긴 하다. 하지만 잠시나마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감성 힐링 게임으로는 이만한 게임이 없어 보인다.